“한국의 통일모델은 독일아닌 EU”

▲빈클러 총장<사진:조선일보>

<조선일보 2005-05-05>

“독일은 갑작스런 통일 과정에서 엄청난 경제적 비용을 지불했습니다. 한국은 유럽 통합처럼 단계적(step by step)으로 통일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독일 통일의 경제적 비용을 연구한 거시경제학자인 오스트리아 빈대 게오르그 빈클러(Georg Winckler) 총장은 “한국은 정치적인 통일은 이루더라도 경제적 통합은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독일 통일 직후인 1990년 분데스방크(독일중앙은행)에서 열린 동서독 화폐의 환율 결정 회의에 참여했던 그는 독일 통일보다는 유럽통합을 한국 통일의 모델로 제시했다.

지난달 800여개 유럽 대학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유럽대학연맹(EUA) 회장으로 취임한 그는 국제교류재단 초청으로 고려대 100주년 기념행사 참석과 서울대와 학술교류협정 체결을 위해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4일 그를 만나 한국의 통일과 대학개혁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당신은 독일 통일과정의 비용을 경제학적으로 연구했다. 분단국가로 남아 있는 한국이 독일 통일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가.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 정치인들은 기뻐한 나머지 경제적 측면은 간과했다. 통일이 그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콜 총리는 이번 기회를 놓치면 통일이 어려워진다고 조바심을 냈다. 통일 비용으로 독일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은 정치적 통일은 하더라도 경제적 통합은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야 한다.”

―독일 통일의 경제적 비용이 그렇게 막대한가.

“독일은 GDP(국내총생산)의 5~10%를 매년 지불하고 있다. 정치인들은 동독 사람들의 생활수준 향상을 위해 생산성을 앞지르는 단계까지 임금을 인상했다. 그 결과 실업률은 무려 20%까지 치솟았다.

공산주의 사회에서 완전고용을 이뤘던 동독 사람들은 오히려 불만이 커져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통일 이후에도 임금 인상은 생산성을 앞지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한국은 어느 정도 통일비용이 들 것으로 보나.

“한국은 1990년대 말 경제위기를 겪었지만 이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한국이 서독 역할을 맡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북한의 경제 수준은 통독 당시 동독보다 훨씬 떨어진다.

서독 인구는 동독의 4배였지만 한국 인구는 북한의 2배에 불과하다. 한국은 독일보다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할 것이다. 독일의 경험보다는 유럽 통합과정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유럽연합은 한꺼번에 이뤄지지 않았다.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등 동구권 국가들을 단계적으로 통합시켰다.”

―한국이 통일을 위해 준비해야 할 일은.

“북한이 매력적인 투자지가 되도록 해야 한다. 북한의 사회경제적 인프라를 구축하고 경제적 상황이 좋아지도록 해야 한다. 도로건설과 에너지산업, 병원과 학교 등 사회 인프라에 투자할 공공자금(public fund)을 마련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러나 하나의 국가는 이루면서도 당분간 두 개의 경제시스템을 운영하는 방법이 바람직하다.”

―요즘 한국은 대학 경쟁력이 화두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학은 산업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유럽에서도 뜨거운 주제다. 유럽 대학들은 국제적 표준보다는 나라마다 분파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관료주의의 그늘에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유럽 대학은 최근 국가 간, 대학 간 이동성(mobility)을 강화해 국제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빈 대학은 25~30%의 학생이 다른 나라 학생들이다. 연구자들의 이동성도 보장해 분파주의를 극복하면 국제적 압력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한국은 인문학 지원자가 해마다 줄고 있다.

“인문학은 삶을 살아가는 의미를 제공하는 학문이다. 이것이 대학의 역할이기도 하다. 단기적 효과와 이익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학은 사회가 어디로 가는지 장기적인 트렌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미국은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다문화(multi-cultural), 다언어(multi-lingual)인 유럽은 학문 다양성을 통해 국제 경쟁력을 확보하고자 한다.”

―유럽의 한국학 연구 현황은 어떤가.

“일부 대학은 연구가 증진되고 있지만 일부는 감소하고 있다. 결국은 재정문제다. 독일은 재정이 어려워 한국학 연구가 소홀해지고 있다. 빈 대학은 4월 1일자로 한국학 교수를 채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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