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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성적 경제난과 고립 위기에 선 북한, 과연 어떤 선택이 그 난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까?
답은 명확하다. 개혁·개방만이 살길이다. 그러나 북한의 김정일은 쉽게 그 길로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해가 거듭될수록 고립의 문이 높아지는 것 같다.
북한당국이 개혁개방을 거부하는 이유는 한국정부의 무원칙적 원조 때문이라고 제기한 미국의 아시아 정치경제 전문가 스테판 해거드와 마커스 놀랜드의 ‘북한의 선택’(매경출판)이 발간돼 주목된다.
한국정부의 원칙없는 원조가 세계식량계획(WFP)을 통한 인도주의적 활동의 효력을 떨어뜨리고, 장기적으로는 북한의 정권체제 유지에 일조할 수 있다고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책은 무엇보다 국제사회의 수많은 인도적 지원에도 불구하고 만성적인 기근이 지속되고 있는 북한의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북한의 기근을 단순히 1995년 홍수와 그 밖의 자연재해 때문으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두 저자는 실패한 경제 및 농업정책 뿐 아니라, 원조를 전용(轉用)해왔던 북한정권 자체에 근본적 책임이 있음을 강조한다.
책에 따르면 WFP를 비롯한 국제기구들은 기근이 시작된 1995년부터 2005년에 이르기까지 23억 달러가 넘는 원조를 북한에 쏟아 부었다. 하지만 북한의 정권은 제공된 총 원조의 무려 3분의 1에 달하는 양을 전용해왔다.
북한은 인도주의적 원조를 취약계층의 기근해소에 쓰는 대신, 군수용이나 상류층을 위한 사치품 수입 등에 할당했다.
뿐만 아니다. 북한당국은 WFP등의 국제기구들의 원조활동을 방해했고, 심지어 필사적으로 식량이 필요했던 지역에 대한 원조를 차단하기까지 했다. 원조에 상응해 WFP의 활동이 용이하게 이루어지도록 도와야 한다는 기본 의무사항도 줄곧 위배했다.
북한의 정권은 지역과 인력을 제한하고, 허가받지 않은 접촉을 막는 등 만족스러운 모니터링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두 저자는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에 원칙도 없이 무제한적으로 원조를 제공하는 한국의 정책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은 2004년까지 아무런 원칙이나 모니터링 과정 없이 북한에 원조를 계속했으며, 2005년 들어 북한이 최악의 식량위기에서 어느정도 벗어났을 때도 대량원조를 진행했다.
책은 북한에게 ‘최종적인 의지처’로 남아있는 한국정부 때문에 북한이 심한 간섭과 제약을 받아야 하는 다른 원조에 의존하지 않고, WFP의 기본적인 지시조차 따르지 않게 되는 것이라고 꼬집는다.
실제로 2005년 북한당국은 WFP와 북한내 민간원조단체의 모든 외국인 직원들의 철수를 요구했었다.
햇볕정책 아래 무제한적으로 추진된 한국의 원조정책은 결과적으로 투명한 원조 하에서 북한의 기근이 해소될 수 있는 국제기구의 원조시스템을 무력화시켰다. 기근 상황을 방치하고 있는 북한의 정권을 오히려 도와준 셈이다.
한편 두 저자는 북한에 대한 원조 프로그램에 결함이 있고 전용문제가 존재한다고 해서 원조 자체가 부정적인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원조의 최대 추정치(50%가 수혜 자격이 낮은 집단이나 군대로 전용됨)가 전용된다고 해도, 여전히 나머지 50%의 식량은 취약 집단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조만으로는 북한 기근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이에 대해 저자들이 탈북자 강철환 씨의 말은 인용해 제시한 근본적 해결책은 눈여겨볼 만하다.
“소의 발목을 묶어 놓으면 소는 굶어죽을 것이다. 소가 돌아다니도록 하면 풀을 찾아 뜯어 먹을 것이다.”
주민들에게 확고한 재산권을 부여하고 사적인 거래와 생산에 종사할 자유를 줘야한다는 의미다.
책은 이를통해 사회적 통제를 완화하고 자유롭고 개방적인 사회로서 개개인의 기본권리를 확립한다면, 북한주민들에게 스스로 기근 해결, 즉 생계유지에 나서게 하는 원동력을 줄 수 있다는 전망을 제시해준다.
신보라/대학생 웹진 바이트(www.i-bait.com)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