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도 ‘아시아민주주의 지원기관’ 만들 때 됐다

필자는 9월 19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제 2회 “아시아 민주화를 위한 세계 포럼” (World Forum for Democratization in Asia)에 참가했다.

DailyNK의 독자들은 이런 회의가 있었나 하고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렇다. 이 회의는 제2회라는 말에서 드러나듯이 시작된 지 얼마되지 않았다. 2년 전에 대만에서 제1회 회의가 있었고 이번 회의가 두 번째이다.

“아시아 민주화를 위한 세계 포럼”이란 명칭에서 잘 드러나듯이 이 회의는 아시아 민주주의를 위해 주로 NGO 활동가들이 모여 논의하는 자리이다. 참석자들은 아시아의 거의 모든 나라들이 망라된다. 필자는 1회 회의에도 참석하였기 때문에 이번 회의에 참가한 많은 참가자들과 이미 낯이 익다. 그래서 더욱 반갑다.

이 회의를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기관은 놀랍게도 대만이다. 대만민주기금회(TFD, Taiwan Foundation for Democracy)라는 곳이다. 대만 기금회는 주로 대만 정부로부터 예산을 받는다. 그러니 사실 대만 정부가 이 회의를 지원하고 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면 왜 대만에서 이런 큰 회의를 지원할지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대만민주기금회 사람들의 공식적인 답변은 말 그대로 아시아 민주주의의 진흥을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알다시피 대만은 국제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중국과 외교전쟁을 벌이고 있다. 과거 한국과 북한이 서로 그랬던 것처럼 중국은 대만과 국교를 맺고 있는 나라들과는 단교한다는 원칙을 세워놓고 있다. 그래서 현재 대만은 유엔 가입도 못하는 등 국제적으로 심각히 고립되어 있다.

이런 환경에서 대만은 국제 사회에서 생존할 수 있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했다. 때문에 대만은 아시아의 NGO들과 연대하면서 아래로부터 지원군을 확보하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 민주주의를 위한 세계 포럼”은 이런 전략의 일환이라고 필자는 해석한다.

대만 정부의 숨은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필자는 이 회의를 통해서 다양한 아시아 민주주의 활동가들과 사귀고 그 나라 상황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있다. 그런데 대만민주기금회(TFD)처럼 세계 여러 나라의 민주주의 관련 시민 단체를 지원하는 재단들은 미국이나 유럽에는 여러 개가 있다. 미국에는 미국민주주주의기금(National Endowment for Democracy)이 있고 유럽에도 영국의 Westerminster Foundation외에 여러 곳이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시아에는 대만밖에 없다.

한국 민주화 세력 세계로 눈 못 돌려

사실 아시아 대부분 국가들은 여전히 발전 도상국이기 때문에 타국 NGO들을 전문적으로 지원할 수 있을 정도의 여력을 가지고 있는 나라들은 많지 않다. 아시아에서 선진국 대열에 낄 수 있는 나라는 한국, 일본, 대만 정도이다. 그런데 일본의 대다수 국민들은 인권, 민주주의 같은 말에는 거의 관심이 없다.

이걸 부자병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겠으나 그것보다는 민주주의가 일본에 정착된 역사와 관련이 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일본에서 민주주의는 자국 시민 사회로부터 내재적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 2차 대전 패배 이후에 미국으로부터 외생적으로 이식된 것이다. 그래서 일본에 인권, 민주화 관련한 시민 단체들은 아주 약한 편이다.

그에 반해 한국과 대만은 아래로부터 민중의 힘(People’s Power)를 경험한 나라들이다. 대만은 1988년 계엄이 해제되었다. 그 이후 민주화 운동이 급속히 확산되어 95년경에 야당으로 정권 교체를 경험한다.

한국은 대만보다는 민주주의의 선배이다. 87년에 직선제 민주화 투쟁이 승리하여 이제 20년 정도의 알찬 민주주의 운영 역사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대만 보다는 한국이 아시아 민주주의의 지도국으로서 자격이 있지 않나 생각된다.

대만민주기금회 같은 활동은 사실 한국이 먼저 시작했어야 했다. 그런데 한국은 아쉽게도 87년 민주화 이후에 세계 바깥으로 눈을 돌리지 못하고 내부적으로만 에너지를 소진한 느낌이 있다.

사실 한국은 소위 386 세대라 불리는 강력한 민주화 활동가 풀이 존재한다. 이 세대는 한국의 민주주의 경험을 아시아와 세계에 전파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자산을 인류를 위해 쓰지 못한 것이다.

만약 87년 민주화 이후 아시아와 세계 민주화 고양을 위해 타국 NGO들도 지원하고 활동가들도 파견하는 일들을 꾸준히 했다면 어떠했을까 상상해본다. 10년 이상만 꾸준히 그런 활동을 전개했다면 지금 우리는 꽤 많은 나라 사람들과 교류를 가지고 네트워크를 형성해 있을 것이다.

한 나라 안에서도 그렇지만 국제 사회에서도 사람들끼리의 네트워크는 국가의 힘이고 자산이다. 우리와 동지적 관계를 가진 사람들의 네트워크가 아시아와 전 세계에 퍼져 있다면 그것의 유형, 무형의 가치는 계산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인적 네트워크는 국가가 활용할 수도 있고 기업이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노무현 정부는 386 정권이라 이름 붙을 정도로 민주주의 정신을 계승한 정권임에도 아시아와 세계로 민주주의를 확산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 못했다. 민주주의기념 사업회 활동에서 보듯이 오직 과거 민주화 투쟁을 기념하는, 좀더 직설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팔아먹는 일밖에 한 것이 없다.

이제 내년이면 한국에도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다. 필자는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우리도 아시아와 세계 민주주의를 위해 나름대로 기여하는 활동을 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한국에도 대만민주주의기금회 같은 기관을 구성하여 전 세계 민주주의 NGO들을 지원하고 또 한국의 과거 민주주의 활동가들을 체계적으로 훈련하여 전 세계에 파견하는 활동을 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이제 한국은 아시아 나아가 세계 민주주의의 지도적 국가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