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중국, 누가 먼저 통일될 것인가?

      
1. 체제경쟁    


중국과 대만의 관계가 개선되고 한국과 북한의 관계가 경색되는 상황에서 중국이 한국보다 먼저 통일될 것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이것이 옳은 인식일까?


한국 중국 베트남의 전형적인 3개의 분단국은 분단을 극복했거나 극복하는 과정이 서로 다르다. 베트남은 전쟁으로 평정되었고, 중국은 ‘두 개의 주권에 의한 하나의 중국’으로 사실상 분단을 극복했다고 할 수 있으며, 한국은 진정한 의미의 민족통일을 향하여 역사가 진행되고 있다.


우선 베트남의 경우를 보면 비극적인 원리주의적 퇴행현상을 볼 수 있다. 분단은 분리의 이유가 없으나 사회적 통합력이 결여된 사회가 정치세력들의 권력투쟁에 동원되어 분리된 것이고, 권력영합성으로 인해 적대성을 피할 수 없다. (지난 칼럼 바로가기) 따라서 권력을 상실한 경쟁세력이 제거될 때만 정치적 안정이 실현될 수 있으므로 협상에 의한 통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사회적 통합력이 결여된 폐쇄체제에서 정치적 반대가 국가적 반역이 되는 것은 필연적 현상이다. 이러한 분단국가들은 체제경쟁을 통해 국민의 통합력을 성장시키지 않고, 분단 당시의 후진상태에서 분단을 극복하려 하면 정치세력들의 권력투쟁에 백성이 동원되어 희생당하는 전쟁을 피할 수 없다. (당사자들의 주관적 의사가 어떠하든 협상통일론은 전쟁통일론의 터 닦기 이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전쟁을 통해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평정하더라도 이것은 분단의 극복이 될 수는 있지만 민족통일이 될 수는 없다. 민족통일이란 ‘사회통합의 구심력이 되는 정부의 단일화’라 할 수 있으므로, 통합역량이 없는 분단사회가 전쟁을 통해 평정되는 것은 지배력의 확장이지, 사회적 통합이 될 수 없고 민족통일도 될 수 없는 것이다. ‘통일전쟁’이란 ‘함께 살기 위한 상호살육’이고 따라서 ‘함께 살기 위한 전쟁’은 민족통일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민족주의의 핵심은 사회의 개방에 의한 사회적 상호작용들의 통합이라 할 수 있으므로, 민족주의 실현을 위한 최우선적 조건은 외세의 배제가 아니라 폐쇄적 원리주의의 극복이라고 할 수 있다. 언제 어디서나 민족주의는 사회의 개방과 함께 시작하고, 폐쇄적 원리주의의 지배는 제국주의의 지배보다 더 반민족적이고 반인민적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의 김씨 조선은 일제하 조선보다 더 반인민적이고 반민족적이다).


따라서 1975년 민족주의를 빙자하여 원리주의가 베트남을 평정한 것은 베트남 민족주의의 종말이라 할 수 있다. 베트남은 그 이후 어느 정도 개방체제로 전환되었지만 원리주의가 배타적 지배를 확립하는 것은 인민 주체성의 소멸인 것이다.


2. 통합장 : 각자 체제 정체성 확립으로 권력영합성(權力零合性, zero sum) 극복


분단은 전쟁에 의한 평정을 피하고 체제경쟁이 진행되면 체제경쟁의 진행형태에 따라 분단극복의 형태가 상이하게 결정된다. 체제경쟁은 생산력 경쟁이고, 생산력 경쟁은 구성원의 참여확대 경쟁이며, 국민참여를 확대시키는 개방체제와 인민을 격리 통제하는 폐쇄체제의 경쟁결과는 자명하다. 개방계는 세계화를 타고 발전하고 폐쇄계는 세계를 적대하고 인민의 주체성을 제거하여 원리주의자들의 주체적 지배를 추구하는 인민주의에 의하여 쇠퇴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의 양안(兩岸)과 같이 인구가 많은 쪽이 폐쇄계인 경우, 폐쇄계가 원리주의의 실패를 확인하고 자력에 의해서 개방계로 전환되면, 두 사회는 각자 정체성을 확립하여 권력영합성을 극복함으로써 서로 개방하여 경제적‧사회적 통합을 추구할 수 있다.


중국은 인구 13억 명에 개인소득 3,000 달러이고 대만은 인구 2,000만 명에 개인소득 2만 달러이다. 거대한 중국이 조그만 대만에 편입될 수 없고 선진 대만이 후진 중국에 편입될 수 없다. 중국과 대만은 서로 주권을 존중하는 상호주의에 의해서만 개방할 수 있고 안정될 수 있다. 각자가 정치적 정체성을 확립하여 권력영합성을 극복한 이러한 분단관계 또는 분단공간을 통합장(統合場, field of integration)이라 부를 수 있다.


이러한 통합장은 각자의 정체성이 확립되어 권력영합성이 해소되었기 때문에 두 개의 주권을 안정시켜 사회적 통합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 없고 사실상 분단이 극복된 관계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통합장에서 정부단일화의 통일은 분단의 극복이라기보다 유럽의 통합(통일)과 같이 사회발전에 따라 나타나는 역사의 필연적 흐름으로써 실현되는 것이라 함이 더 옳을 것이다.


그러므로 분단관계에서 경제적‧사회적 통합은 정치적 통일을 이루는 전 단계 또는 조건이 아니라 정치적 통일을 대체하는 대안이라 할 수 있다.


3. 통일장 : 체제경쟁의 승패 확정으로 편입에 의한 영합성 극복 


(1)체제경쟁의 승패확정 : 공존불능의 생산력 격차


반면에 한반도와 같이 인구가 작은 쪽이 폐쇄계인 경우, 체제경쟁이 진행되어 생산력 격차가 일정한 정도를 넘어서면 폐쇄계는 개방할 수 없고 분계(分界)를 더욱 강화시켜 격차 확대를 가속화시켜 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도달하게 된다.


한국과 북한은 인구는 2대1 (4800만:2300만 명, 2008년)이나 총생산력은 100대1, 개인소득은 50대1에 이른다. 한국은행은 총생산이 38대1 (2008년), 1인당 소득이 18대1(2008년)이라고 하지만, 박재규 전 통일부장관은 “북한은 정확한 경제통계를 낼 여건이 안 돼 있다”  “통계상 북한의 1인당 소득이 지난해 800-900달러로 돼있지만, 나는 실제론 3분의1 수준인 300달러로 본다(연합뉴스, 2006년 1월 18일)고 했다.


한국은행 통계와 북한의 실제 생산력의 관계에 대해서는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의 논문  ‘북한국민소득 재평가’(『정세와 정책』, 2008년 3월호, 세종연구소)에 잘 설명되어 있다. 이에 의하면 한국은행의 통계는 북한의 생산을 한국의 물가로 계산하기 때문에 북한의 산업동향(추세)을 이해하는 데는 유용성이 있으나 북한의 생산력을 다른 나라와 비교하는 데는 신뢰성이 없다고 하며, 북한의 개인소득을 300-400 달러로 추정한다(김병연, ‘북한의 붕괴와 재건’, 『시대정신』 2009년 겨울호 참고)


북한의 개인소득을 400달러, 한국의 개인소득을 2만 달러라고 한다면 남북은 50대1이 되고 인구가 2대1이므로 총생산력은 100대1이 된다. 그리고 북한의 권력만능주의의 폐쇄적 원리주의 체제는 실패가 확정되었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북한주민의 입장에서 남측의 일방지원이 가능한 통일이 생존의 길이 되고, 북한정권은 분단의 유지가 생존의 길이 되어 주민과 정권은 생존의 조건이 상호모순의 관계가 된다.


그리하여 북한정권은 격차 확대를 가속시키지 않을 수 없는 소모적 선군(先軍, military first)에 의해서 주민들을 격리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생산력 경쟁을 통한 체제경쟁에서 소모적 선군체제로의 전환은 체제경쟁의 승패가 확정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승패확정의 의미 : 남북 적대관계에서 내부 적대관계로의 전환


북한의 선군은 생산의 30% 정도를 군사우선 분배하여 소모하는 수세적인 현상이며 결코 경쟁적이거나 공세적인 현상이 아니다. 인류문명의 전환점이라 할 수 있는 1945년을 기점으로 하여 안보의 근본은 군사력에서 생산력으로 전환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인류가 본격적으로 원자력이라는 태양 외의 에너지원을 갖게 되었고, 세계의 반 이상이 식민지 또는 반식민지 상태에서 해방되었으며 진정한 의미에서 세계평화에 책임을 지는 세계패권국이 등장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체제개방조차 불가능하고 소모적 선군노선으로 주민을 격리시키고 한국과 격차를 확대시켜 가지 않을 수 없는 북한은 한국을 적대할 능력이 없다. 선군은 대결의 추구가 아니라 대결의 포기인 것이다. 그리고 한국은 남북격차를 극복하고 북한을 회생시키지 못하는 한 결코 안정될 수 없다. 


따라서 체제경쟁의 승패가 확정되어 상호적대나 불신이 존재할 여지가 없는 한반도에서는 남북의 적대관계가 북한 내부의 적대관계로 전환되어 남북의 대결성은 사실상 소멸했다고 할 수 있다. 실패한 북한체제는 선군에 따라 세계를 적대시하고 주민을 격리하는 에너지 소모체제로 전환되지 않을 수 없으므로, 선군에 의한 군사적 대치는 남북 간의 적대나 불신의 결과가 아니라 권력영합적 격차 구조의 본질적 구성요소이며, 또 실패체제가 존재하기 위한 필요조건인 것이다.(체제실패는 생산력 경쟁에서의 패배이지, ‘치안실패’가 아니다. ‘치안실패’는 체제실패가 아니라 체제붕괴이다).


(3)평양위기의 실체 : 소모적 선군에 의한 격차확대 


체제간의 적대구조가 실패체제 내부의 적대구조로 전환된 분단관계에서, 실패체제를 위협하는 것은 외부의 적대가 아니라 내부의 적대이다. 같은 동족으로 이루어지고 소득격차 50대1이 되는 두 체제가 개방하여 공존하는 현상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권력영합적 격차구조 속에서 실패체제가 개방하면 체제가 침식되는 것이 아니라 증발되어 버리는 것은, 누구나 빈곤과 억압보다 풍요와 자유를 선호한다는 사실만큼 자명하다.


생산력 경쟁의 세계화 속에서 생명의 불꽃이 꺼져가는 체제에 대해서 군사적으로 위협하는 주변국가는 없으며, 북한체제에 대한 외부의 위협은 한국이나 미국의 적대성이 아니라 오히려 한국의 일방적 지원가능성인 것이다. 생명의 에너지가 소진되어가는 체제가, 존재하지 않는 위협이나 대외적 이념투쟁을 위해 에너지를 소모시킬 수는 없다. 만약 북한이 개방가능하다면 소모적이고 자해적인 선군(핵)을 추구할 수가 없다. 다음의 사례들을 참고해보자.


“림진강 편집부는 2007년 10월 시장억제에 따른 주민들의 반향조사를 계획하였다. 이를 위해 기자 심의천이 11월 초순 평양에서 시민 곽달호, 정재필(둘 다 50대의 남성 사무원)을 만나 인터뷰하였다. 취재에 응한 세 명은 이전부터 서로 가까운 사이이다.


심의천:그럼 이젠 싸워 이겨서 ‘통일’하는 게 아니라 간단히 말하문, ‘한국이 조선(북)을 좀 먹어주었으면 좋겠다’ 기린 소리네.(지금의 북한에서는 당국이 사용하는 ‘남조선’, 민간에서 사용하던 ‘아래동네’라는 용어가 점점 사라져가고 주민들 속에 ‘한국’이라는 정식 호칭이 류포되고 있다:림진강 제2호 126쪽) …
정재필:하디만 기케락두(그렇게라도) 돼서 내주문(북한을 내어주면) 통일되갔디 뭐. 이제 야금야금, 이제 다 쳐들어 오문 통일이 된다! (한국은) 기리케락두 통일하자는 거디?!
심의천:그걸 원하나? 
곽달호:원하디 뭐, 백성덜(들)은!”  (림진강 제2호, 118쪽)


“북한의 지도자 김정일은, 이 벽(군사분계선) 없이는 자신의 이상한 체제(crazy regime)를 국민들의 의지로부터 보호할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또 수용소와 지뢰와 대규모 군대 없이는 북한이 마치 터진 댐처럼 남한 속으로 녹아들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프리드만).


“우리 보고 개방하라고 하는데, 동구가 무너지고 무사했던 공산당 지도자가 누가 있느냐. 우리가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뻗치니까 견디지, 개혁·개방을 했다면 벌써 망한 지도 오래됐을 것이다.”(김정일)


(4)북한회생의 조건 : 자치 편입에 의한 내부 모순의 극복


체제경쟁의 승패가 확정되어 체제간의 적대성이 실패체제의 내부 적대성으로 전환된 분단관계 또는 분단공간을 통일장(統一場, field of unification)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통일장에서 북한 위기의 실체는 단순재생산조차 불가능한 생산력이고, 그 핵심은 소모적 선군에 의해서 체제모순을 확대시켜가지 않을 수 없는 정권의 불안정이다. 권력영합적 분단이 유지되는 한 선군은 극복될 수 없고 파국을 향해 격차는 확대되어 가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공존이 불가능한 격차의 두 사회는 즉시통합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북한은 독립적인 정상국가가 될 수 없고 동시에 동독처럼 전면편입(흡수통일)될 수 없으므로, ‘자치편입’에 의해서 내부의 모순이 해소될 때만 개방될 수 있고 회생될 수 있다. 여기에서 ‘자치편입’이란 쉽게 말해 현재의 중국과 홍콩의 관계와 같은 일국양제(一國兩制) 개념이다.


자치편입에 의한 통일이 없는 한 북한의 개방이나 한반도의 평화는 어렵고, 파국을 향한 격차확대는 중단될 수 없으며, 한반도에서 평화와 개방과 통일은 동일한 현상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통합장은 통일 없는 통합이 안정조건이고, 통일장은 통합을 위한 통일이 안정조건인 것이다.


2007년 11월, 기자 심의천은 림진강 편집부의 요청에 따라 조선(북) 내부에서의 지도자관 정치관에 대하여 취재하였다. 이번 취재대상은 기자가 평시에 속심을 비교적 터놓군 하던 오랜 녀성 당일군이였다. …


비서: 옛날같은 사회주의 진영이 없기 때문에 개방하지 않으문 우린 질식해버리고 만다는 사실이 명백하지 않아요?
심의천: 그것을 간부 일반의 견해라구 봐두 될까요?
비서: 거저 다예요. 당간부든 행정간부든 다 그래요. 견해가 아니라 의견이예요. 누구나가 내놓쿠이, 말하게 돼요. 회의할 때두, 무슨 문제가 제기되두 “생활이 어렵다, 경제가 어렵다”, 이 말 나올 때마다 결국은 여기에 다 걸레요(걸려요).
심의천:개방이 기본인가요?
비서: 개방을 하자문 통일문제가 꼭 걸레들어요. 우리가 다른 사회주의 나라들과 달리 개방을 선뜻 못하고 있는 것은 저 남조선 때문이란 말이예요. 통일을 먼저 하구 개방한다는 건 세월없는 소리구, 그렇타구 미리 개방만 해버리문 우린 수습을 못해, 뻔하지뭐. 기니까 통일이 안돼서 긴다구 하는건데 … 통일이 안돼서 못산다는걸 첫째 문제루 놔야디요. 그 다음에 개방이디만. (림진강 2-181)


4. 분단극복의 3형태와 정책 : 평정, 통합, 통일


세 개의 분단은 각각 고유의 형태로 극복된다고 할 수 있다. 베트남은 민족주의를 빙자한 원리주의의 평정에 의해 민족주의가 말살됨으로써 분단이 종료되었다. 중국은 중국인들의 의식상 대만과 분단은 유지되고 있으나 개방에 의해서 하나의 중국이 실현되어 분단은 사실상 극복됐다고 볼 수 있다. 분단이 민족의 통일로 극복된 역사적 사례는 없지만 체제경쟁의 승패가 확정된 한반도는 주권 단일화의 통일에 의해서 사회적 통합이 실현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세 개의 분단극복 과정은 두 개의 분할극복 과정과 판이하게 대비된다.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분할극복 과정은 단일민족국가의 복구였기 때문에 분할의 종료와 동시에 하룻밤 새에 단일민족국가로 통일되었다. 하지만 한국 중국 베트남, 세 개의 분단은 단일민족국가로 바로 통일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사회발전 수준 차이 때문이지만 다른 것은 이뿐만 아니다. 정부 또는 정책수준의 차이 역시 다를 바 없다.


분리상태가 오랫동안 유지된 한국 중국 독일의 통일정책을 비교하면 그 차이는 분명해진다. 독일은 분할관계였기 때문에 동서냉전이 유지되는 한 자력에 의해서는 결코 분할극복이 이루어질 수 없었다. 따라서 독일인들은 현명하게도 분할관계를 안정시킴으로써 민족내부의 적대성을 완화시키는 정책을 추구했고 그 결과 냉전이 붕괴되었을 때 혼란 없이 바로 통일되었다.


반면에 중국은 양안(兩岸)이 각자 체제정체성을 확립한 개방계이기 때문에 권력영합성이 극복되어, 비록 주권의 단일화는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사실상 분단이 극복되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서로 주권을 존중하는 상호주의를 추구하면 대만은 소모적 군비확충이 불필요하고, 양안의 관계와 미국‧대만의 관계는 지리상의 양안 거리와 태평양의 폭에 상응할 것이다.


중국과 홍콩은 일국양제(一國兩制)에 의해서, 그리고 중국과 대만은 양국일제(兩國一制)에 의해서 하나의 중국이 되는 것이고, 이것은 거대한 중국의 다양성에 의한 중화민족주의의 실현인 것이다.


그러나 베이징(北京)은 대만에 대하여 주권존중의 상호주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일국양제의 주권단일화를 추구한다. 그리하여 정치 군사적으로 양안의 관계와 미국‧대만의 관계를 지리상의 양안 거리와 태평양의 폭과 반대로 만든다.


후진 중국이 선진 대만에 대하여 일국양제를 추구하는 것은 민족통일의 추구가 아니라 불안정한 중국사회의 내부통합을 위해, 배타적 종족주의에 의해 대만의 동족을 희생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위대한 중화민족주의의 추구가 아니라 반민족적인 대중선동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반도는 북한의 편입(통일)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파국을 향한 격차확대를 피할 수 없고, 즉시통합될 수 없는 생산력의 격차로 인하여 북한의 자치가 보장되는 편입에 의해서 일국양제의 형태로 통일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한반도의 일국양제는 한국정부의 정책과 관계없이 필연적으로 진행되는 역사의 흐름이다. 중국과 같이 개방 가능한 통합장에서는 통일을 유보한 통합만 가능하고, 한반도와 같이 개방이 불가능한 통일장에서는 통일이 선행하지 않는 한 통합이 이루어질 수 없다. 중국의 ‘하나’는 사회의 하나이고 한국의 ‘하나’는 주권의 하나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통일방안(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체제경쟁의 승패가 확정된 남북관계에서 ‘통합을 통한 통일’이라는 무책임한 정책으로서 역사의 흐름에 역행하고 오히려 실패한 북한체제와 주민을 고사시키고 통일비용을 확대시키고 있다.


서독은 역사가 요구하는 제갈 길을 감으로써 통일의 과정을 순조롭게 하였지만 한국과 중국은 역사에 역행하는 정책에 의해서 희생과 혼란을 자초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과 중국이 서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과 ‘일국양제 통일방안’을 맞교환하면 동아시아는 즉시 평화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앞에서 제기한 문제에 답할 때가 되었다. ‘민족통일’을 단일한 주권을 가지고 사회적으로 통합된 민족주의의 완성이라 할 때, 민족통일은 당연히 한국이 가장 먼저 실현할 것이다. 한반도 역사의 필연성은 일국양제이고, 정부가 일국양제와 반대되는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유지하더라도 북한주민의 희생과 한국국민의 통일비용을 확대시킬 뿐 역사의 필연적 경로를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베트남은 원리주의적 지배세력이 극복되어 사회가 개방되고 통합되는 과정이 한반도가 일국양제를 거쳐 완전한 단일민족국가를 실현하는 것보다 빠를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중국은 두 개의 주권적 체계가 정체성을 확립함으로써, 주권의 단일화는 예측이 가능한 기간 내에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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