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탈북자가 멧돼지보다 못한가?

오늘자 <한겨레신문> 섹션에 재미있는(?) 기사가 하나 실렸다. 제목인즉 “멧돼지에게도 난민지위 주자”. 도대체 뭔가 하고 보니 <생명체학대방지포럼> 대표인 박창길 성공회대 교수와의 인터뷰 기사였다.

기가 막혔다. 그들이 언제 한번 “탈북자에게 난민지위 주자”고 외쳐본 적 있던가. 물론 멧돼지에게 난민지위를 주자는 말은 희화(戱畵)적인 표현이리라. 하지만 신문 종잇장을 넘기며 이들에게는 탈북자가 멧돼지만도 못한 존재로 보이는지, 기가 차고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혔다.

기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멧돼지는 나쁘다. 밤중에 나타나 아파트 주민을 놀라게 하고 길 가던 무고한 시민을 다치게 했다. 경찰, 소방대, 경비원 아저씨들이 아무리 쫓아가도 고분고분 잡히지도…… (후략)” 최근 도심에 출현하여 인적 물적 피해를 입히고 있는 멧돼지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리고 기사는 이어진다. 박 교수의 발언을 인용하면서 “그런데 말이죠, 멧돼지에게도 일종의 난민지위를 부여하는 게 맞지 않을까 싶어요. 그들의 국가를 인정해야 합니다. 인간만이 이 땅의 주인은 아니잖습니까?”라고 말이다.

기자는 말한다. “지난번 복제 개 스너피 출현 때 동물단체들이 동물실험 반대 피켓을 들고 서울대 수의학과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수많은 기자들이 그들을 보았을 텐데 단 한 줄의 기사도 실리지 않은 것을 보고 충격이 컸다.” 물론 박 교수의 이야기다.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멧돼지는 밤중에 나타나 아파트 주민들을 놀라게 하고 무고한 시민을 다치게 하지만, 탈북자들은 밤중에 나타나 누군가를 놀라게 하고 무고한 시민을 다치게 하는 존재가 아니라고. 멧돼지에게 그들의 국가를 인정하고 그들 역시 이 땅의 주인이라면, 인간인 탈북자에게는 더더욱 그들이 살고 싶어하는 나라를 인정해주고 이 땅의 주인이라고 선포하여야 하지 않느냐고.

그리고 알아보고 싶다.

동물실험 반대피켓을 든 시위가 신문에 단 한 줄도 실리지 않은 것에 충격을 받았다면, 탈북자들의 참혹한 증언이 이어지고 공개처형 동영상까지 방영되어도 단 한 줄의 기사도 싣지 않은 신문들을 보고는 충격 받아 쓰러지지나 않았는지.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다. 도룡뇽과 한 비구니 승려의 생명을 소중히 여겨 천문학적 예산이 들어가는 국책사업이 삐꺽 하든 말든 생명에 대한 존엄(?)을 보여줬던 사람들이, 남북관계가 약간 삐꺽 하는 것에는 벌벌 떨며 2천만 동포의 인권에 입을 꼭 다물고 있다. 그들에게는 북한 동포가 도룡뇽이나 멧돼지보다 밉고 싫고 하찮게 보이나 보다.

생태주의자들과 싸우고 싶지 않고, 그들의 생각 가운데 일견 일리가 있는 부분도 있다. 그래서 이쯤하고 인권단체로 시선을 옮겨보자. 엊그제 일군의 자칭 ‘진보인권운동단체’들이 북한인권문제와 관련한 토론회를 열었다. 그날 <인권운동사랑방>의 상임활동가 김정아 씨가 발표한 발제문이 흥미롭다.

그는 ‘탈북자’라는 용어는 부적절하다고 ‘북 출신 이주자’라는 독창적 표현을 만들어내면서, 탈북자들에게 난민지위를 주자는 북한인권단체의 주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가난을 해결하기 위해 이주하는 이들을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북 체제의 대항자로 만들어 정치화시킨다”고.

생존을 위해 북한을 탈출한 사람들을 UNHCR(유엔난민고등판무관)의 규정상 난민으로 인정하는 것마저 ‘정치화’라고 발끈하는 김정아씨가 오늘 아침 <한겨레신문>을 보았다면 노발대발 하였을 것이다. 생존을 해결하기 위해 이주하는 멧돼지들을 ‘난민’으로 만들어 ‘정치화’하려 하고 있다고.

아, 대한민국! 이 무진장한 ‘자유의 나라’에는 참 특이하고 기막힌 균형감각을 가진 분들이 많다는 것을 오늘자 <한겨레신문>을 보고 새삼 느꼈다. 인간의 무지막지한 폭력과 편견, 차별에 맞서 싸우다 열사로 산화한 고(故) 멧돼지 전사들에게 삼가 조의를 표한다.

곽대중 논설위원 big@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