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ㆍ미 동맹, 이승만ㆍ박정희때도 충돌 많았다”

한국과 미국의 동맹관계는 현재 뿐만 아니라 과거 이승만, 박정희 정권 때도 한국의 민족주의와 미국의 전략적 정책 목표가 서로 달라 충돌하는 등 어려움이 많았기 때문에 과거를 황금기로 보는 것은 현재의 동맹 관계를 수선하는데 길을 가로 막는 신화에 불과하다고 한미 관계 전문가인 대니얼 스나이더가 12일 밝혔다.

전 주한 미국 대사였던 리처드 스나이더의 아들이자 현재 스탠퍼드 쇼렌스타인 아시아 태평양 연구소 부소장을 맡고 있는 그는 이날 워싱턴 포스트에 ’한미 관계: 신화와 현실’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기고, 이같이 지적했다.

그는 현재 한미 동맹이 반미 감정, 주한 미군 역할, 대북접근 시각차 등으로 신뢰의 위기를 겪듯이 과거에도 한국의 민족주의와 미국의 전략적 정책 목표는 종종 부딪쳐왔고 북한을 둘러싼 이견도 반복적으로 발생해왔으며, 또한 반미 감정은 수십년간 한국인 삶의 한 특징이 되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이승만 전대통령은 미국의 후원자들과 종종 불화를 겪었으며 미국은 이 전대통령이 한국전 이후에 북한과의 전쟁을 도발할까 우려했었다는 것.

박정희 전대통령의 경우 대북 정책, 경제적 목표, 인권 및 민주주의를 놓고 충돌을 빚었다는 것.

특히 박 전대통령은 한국민들이 이미 1970년대 실패한 베트남전, 주한미군 철군으로 한미 동맹의 영구성에 회의를 품던 가운데 계엄령, 유신, 야당인사 투옥으로 미국의 압력에 도전했다는 것.

미국에 버림 받을까 두려워했던 박 전대통령은 역시 중국이 미국과의 관계 개선 후 자기를 팔아 넘길까 우려했던 북한의 김일성 전 주석에게 손을 뻗쳤으며, 1972년 남북 간 고위 대화중에는 강국들이 한국의 통일에 장애가 된다는 점을 뚜렷하게 공유하는 믿음이 있었다는 것.

특히 박 전대통령은 리처드 닉슨 전 미 대통령이 2개 미 보병사단 중 하나를 철수한 후인 1971년 핵무기를 비밀리에 개발하려 했으며, 미국 관리들은 젊은 미 중앙정보국(CIA) 요원이 조잡한 수준의 핵탄두 설계도를 증거물로 가져왔을 때 한국의 핵무기 개발 노력의 심각성에 경악했다는 것.

그는 지난 1975년 아버지인 스나이더 주한 대사가 워싱턴에 “한국은 더 이상 피후견국이 아니며 핵 잠재력을 포함, 완전한 자위의 야망을 가진 중간 수준의 강국으로 가고 있다”는 내용의 1급 비밀을 전문으로 보냈었다고 증언했다.

당시 스나이더 대사는 한미 관계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 일본과의 관계와 유사한 새로운 동반자 관계로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는 것.

이와 함께 스나이더 대사는 은밀하고도 강력한 외교를 통해 박 전대통령에게 전체 안보 동맹관계가 위험에 처했다고 경고한 후에야 핵 개발 포기를 설득시킬 수 있었다는 것.

그는 1979년 박 전대통령을 암살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 미국의 사주에 따라 실행한 것이라고 허위 주장을 폈음에도 한국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이를 믿고 있으며, 한미 동맹의 위기는 광주 사태로 절정에 달했었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한미 관계가 황금기라는 신화가 현재의 관계가 공통 이익의 기반이 부족하다거나 오늘날 직면하는 어려움이 심각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고 전제한 뒤 “한미 양국은 노무현 대통령의 워싱턴 방문에 맞춰 현재의 균열 상태가 아닌 견고하고 상호적이며, 궁극적으로는 의존의 족쇄를 푸는 장기적 관계의 기반을 정의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워싱턴=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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