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도 잊은 날 없었소”

“여보, 미안하오. 세월이 우리를 이렇게 갈라 놓았구려..”

8일 오전 적십자사 강원지사에 마련된 제3차 남북 이산가족 화상상봉장에서 북에 두고온 아내 노정숙(77)씨와 아들 엄기열(57)씨를 화면을 통해 만난 엄명섭(81.영월군) 할아버지는 반세기 동안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북강원도 철원군 고향땅에서 한국전쟁을 맞은 엄 할아버지는 전쟁 직후 국군으로 참전하는 바람에 북측 가족들과는 돌이킬 수 없는 생이별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이후 반세기의 세월이 흐른 현재 엄 할아버지는 남측에서 새로운 가정을 꾸려 6남매를 낳았으나 정작 꽃다운 나이에 헤어진 북측의 아내 노씨는 당시 10개월 된 아들 기열씨와 부모님을 모신 채 수절하며 기나긴 세월을 보냈다.

이 때문인지 엄 할아버지는 이날 북측 아내 노씨에게 “여보, 내가 죄를 많이 지었소. 내가 밉지 않소. 아들아, 아비 구실도 못해 그저 미안하구나. 미안해”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북측의 아내 노씨는 이 같은 남편의 마음을 이해하는 듯 “영감이 왜 미워요. 그렇지 않아요”라고 위로했으며 아들 기열씨는 “반세기 만에 아들의 인사를 받으세요”라며 큰 절을 올리며 부자의 정을 나눴다.

이어 기열씨는 한국전쟁 후 고향 땅을 밟지 못해 그리워 했을 아버지를 위해 북강원도 고향땅의 달라진 모습에 대해 비교적 상세히 설명했다.

또 1.4 후퇴 당시 고향 땅에서 열병으로 숨진 조부 등 북측 가족들의 소식을 전해 엄 할아버지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이에 엄 할아버지는 “하루도 잊은 날이 없었소. 행여 나로 인해 북측 가족들이 모진 고초를 겪은 것은 아닌지 걱정 많이 했었다”며 “그래도 오래 살다 보니까 이렇게나마 당신과 아들을 보게 됐으니 이젠 더는 여한이 없다”고 말했다.

엄 할아버지의 남측 아들 기준(53)씨는 “남측 어머니가 올해 돌아가셨는데 아마도 마지막 선물로 아버지와 북의 어머니를 만나게 해 주신 것 같다”며 “건강하시고 오래 오래 살아서 훗날 다시 만나면 극진히 모시겠다”고 전했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