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 다그쳐 진짜 간첩인 줄 알았어요”

“안기부 직원들이 하도 다그치니까 우리도 ‘진짜 간첩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수지김 올케)

“안기부 직원들이 저녁만 되면 막 쳐들어 왔어요. 겨울 저녁만 되면 그 때 생각이 나서 겨울이 싫어요.”(수지김 둘째 동생)

8일 서울대 근대법학교육 백주년 기념관에서는 ‘수지김’ 사건과 관련해 수지김 유족들의 고통스러운 일상과 피해 사례가 소개됐다.

수지김(한국명 김옥분)씨는 1987년 1월 홍콩에서 남편에게 살해당했으나 당시 국가안전기획부는 사건을 조작, 수지김을 ‘미모의 여간첩’으로 몰았다.

졸지에 ‘간첩 가족’으로 낙인찍힌 김씨 유족들은 이때부터 고통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유족들은 “안기부에 끌려가 욕설과 구타를 당하고 밤샘 조사를 받았다. 안기부 직원들은 심지어 이혼을 강요하기도 했다. 감시와 도청은 기본이었다”고 털어놨다.

사건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자 이들은 주위에서 손가락질 받고 소외됐으며 잦은 이사, 가정 불화, 실직 등 십수년 동안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당했다.

서울대 법대 양현아 교수는 이날 교내 근대법학교육백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학술회의에서 “국가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낸 유족들의 변호를 맡았던 변호사의 의뢰를 받아 유족들과 심층 인터뷰를 했다”며 이들의 생생한 증언을 공개했다.

양 교수는 “당시 수사당국은 조작ㆍ은폐ㆍ재은폐 등을 자행해 멀쩡한 사람을 술집 종업원 출신 여간첩으로 만들고 유족들에겐 깊고 오랜 상처를 남겼다”며 “당시 언론과 사회도 이에 합세해 사회적 폭력을 휘둘렀다”고 말했다.

서울대 법대 한인섭 교수는 “이처럼 ‘수지김 사건’이나 ‘최종길 교수 의문사 사건’ 등 국가의 조직적인 불법행위가 저질러진 경우는 공소시효와 소멸시효 적용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교수는 “법은 ‘권리 위에 잠 자는 자를 보호하지 않는다’며 소멸시효 원칙을 두고 있지만 국가가 조직적ㆍ체계적 불법행위를 저질러 큰 피해를 입혔다면 소멸시효의 예외가 돼야 한다”며 ‘국가범죄 피해의 소멸시효 배제’ 입법을 촉구했다.

서울대 BK21 공익인권법연구센터가 연 이날 학술회의에는 서울대 법대 양현수 교수 등이 ‘재심ㆍ시효ㆍ인권’을 주제로 발표를 진행했으며 송호창 변호사 등이 참석해 토론을 벌였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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