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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2004. 12. 16.)
“한국의 젊은 세대들은 북한에 호의적이다. 이 때문에 ‘반공’을 외치는 기성세대들과 마찰을 빚고 있다. 한국이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것은 ‘남북문제’가 아니라 ‘남남(南南)문제’다.”
국제 위기에 대한 조언 단체인 국제위기감시기구(ICG)의 피터 벡 동북아시아 사무소장(38)은 16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지적했다.
벡 소장은 미국의 대표적인 신세대 한국문제 전문가로 워싱턴의 한국경제연구소(KEI) 연구실장으로 7년간 활동했다. 그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외교정책이 오른쪽으로 치우쳤다고 비판하며 스스로를 ‘한국의 386세대와 같은 미국의 진보주의자’라고 부른다.
그는 최근 ‘한국은 또 다른 별에서 온 형제를 어떻게 보는가(How the South Views its brother from Another Planet)’라는 보고서에서 한국의 젊은층이 왜 우호적인 북한관(觀)을 갖게 됐는지를 분석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올해 8월 ICG 한국사무소가 생긴 것은 한국도 ‘위기국가’라는 뜻인가.
“미국 부시 행정부로 인해 잠재적인 위기국가가 될 수 있다. 지금까지 유엔과 미국은 북한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니컬러스 에버슈타트 미국기업연구소(AEI) 선임연구원은 우익으로, 셀리그 해리슨 미국 국제정책연구소 아시아담당국장은 좌익으로 치우쳤다. 이 때문에 서울사무소를 설립해 균형 잡힌 한반도 시각을 제공하려 한다.”(벡 소장은 이날 인터뷰에서 ‘균형 잡힌(balanced)’이란 단어를 7번이나 사용했다.)
―보고서 제목에서 북한을 ‘다른 별에서 온 형제’로 표현한 게 독특한데….
“그 표현은 1980년대 영화에서 따왔다. 남북의 상황을 매우 잘 표현해 주지 않나.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북한을 형제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데올로기는 ‘완전히’ 다르다.”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을 어떻게 보나.
“김대중 대통령은 조건 없는 포용정책을 폈다. 노무현 정부는 국내 문제에 초점을 두면서 대북정책에 좀 더 균형을 갖춘 편이다. 반면 미국 행정부의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은 대북 강경론을 지지한다. 앞으로 노 대통령은 대북 관계에서 미국 강경파들의 입김을 막는 일에 치중해야 할 것이다. 특히 한국 국민의 대북 시각차를 없애는 일도 해야 한다. 현재 한국은 국가보안법 폐지를 놓고 극심하게 양분돼 있다. 개성공단과 같은 아이디어로 한국 국민의 의견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 비록 미국이 싫어하더라도 말이다.”
―미국은 핵 확산 금지 차원에서 대북 무력 사용도 언급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입장에서 전쟁은 곧 파멸을 의미한다. 한미 입장차를 어떻게 해소해야 하나.
“양국의 시각차 해소가 ICG의 핵심 업무다. 미국 네오콘들은 북한에 채찍(stick)만 강요하는 반면 한국은 당근(carrot)을 중시하지 않는가. 가장 중요한 점은 양국이 상대방의 처지를 이해하고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미관계는 악화되고 있는 형국인가.
“양국 정부의 정책은 근본적으로 대척점에 서 있다. 마치 흑과 백을 보는 것 같다. 한국은 북한을 지원하려 하지만 미국은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어느 쪽으로 가닥이 잡힐지는 모르겠지만 상당기간 한미 관계는 힘든 시기를 겪을 것이다.”
―부시 2기 행정부와 한국 정부의 갈등이 더 커질 것이라는 뜻인가.
“부시 대통령의 외교정책에 대해 개인적으로 반대한다. 특히 네오콘으로 가득 차 있는 제2기 행정부에 대해서는 걱정스럽다. 유럽, 중국, 러시아 등도 미국에 등을 돌리고 있다. 하지만 북한은 오히려 기회를 맞았다. 부시 행정부는 최근 대북 강경책이 제대로 먹혀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북한인권법 등 온건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 에번스 리비어 국무부 수석부차관보와 빅터 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담당보좌관 내정자도 온건파들이다. 이들은 북한과 협상을 원한다. 북한은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협상의 기회를 놓치면 북한으로 향한 미국의 창문이 영영 닫힐지도 모른다.”
―ICG의 활동은….
“비정부기구(NGO)로 유고슬라비아, 아프리카 등 위기 상황에 빠진 국가에서 분쟁 해결을 위한 조언을 하고 있다. 10년 전 유럽에서 설립됐고 본사는 벨기에 브뤼셀에 있다. 동북아시아에서는 올해 8월 서울에 첫 사무소가 개설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