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벡 국제위기감시기구(ICG) 동북아사무소장은 3일 베이징에서 진행중인 제4차 6자회담이 성공하더라도 “북한은 지속적으로 워싱턴에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야만 1~2년 걸리게 될 양국 관계정상화도 앞당길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워싱턴과 도쿄를 방문, 미.일 정부관리 및 연구소 관계자들을 만나 북핵 문제 등을 논의하고 돌아온 벡 소장은 이날 회견에서 “6자회담이 결렬 또는 타결돼도 북한이 적극적인 대화 의지를 보이지 않으면 딕 체니 부통령 등 매파들이 상황을 장악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벡 소장은 이어 “이렇게 되면 부시 대통령의 대북정책도 ‘인내심 고갈’ 조짐을 보여온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나 체니 부통령의 영향을 받게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음은 벡 소장과의 일문일답.
— 4차회담이 타결돼도 북한의 향후 협상 의지가 중요하다고 했는데.
▲그렇다. 이번 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크리스토퍼 힐 미 수석대표(국무부 아태담당 차관보) 등 대화파들의 입지가 강화돼 핵문제 해결에 큰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
하지만 4차회담의 성공만으로 모든 게 끝나는 게 아니다. 미국의 대화파들이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을 누르고 득세하기 위해서는 북한이 지속적으로 긍정적인 신호를 워싱턴에 보내야하며, 이렇게 해야 적어도 1-2년 걸리게 될 양국 관계정상화 시기도 앞당길 수 있다.
— 라이스 국무장관이 인내심을 잃어가고 있다고 했는데. 6자회담이 실패로 끝난다면 라이스 장관도 강경파들의 주장에 동조할 가능서이 있나.
▲가능성이 있다. 최근 ‘북한과 회담을 위한 회담을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등 여러 차례 인내심을 잃어가고 있다는 신호(signs)를 내비친 바 있지 않나.
— 힐 차관보의 대화 주도 방식에 대해 체니 부통령 부하들이 말을 안 들을 수도 있다고 밝힌 바 있는데.
▲체니 부통령을 비롯한 강경파들은 힐 차관보의 문제 해결 방식에 불만을 갖고 있으면서도 (경제제재 돌입시 등) 한국과 중국 등이 잘 동조하지 않는 등 한계상황을 인식, 말을 하고 싶으면서도 차마 못하는 상황 같다.
그러나 북한이 자꾸 협상을 결렬시키는 식으로 나와 대화파의 입지가 약화된다면 체니 부통령 측근 등 강경파들의 목소리가 커질 수 밖에 없다.
— 부시 대통령 정부는 4차 회담 실패시 UN 안보리로 북핵문제를 회부, 이를 통하거나 다른 수단으로의 경제제재에 돌입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그래서 지금이 아주 중요한 시기다. 특히 부시 대통령이 1일 (대북 강경파인) 존 볼턴 유엔대사 지명자를 의회 승인 없이 임명을 강행한 점을 상기시켜볼 필요가 있다. 북한도 이런 상황을 면밀히 인식, 성의가 담긴 성명서를 내놓아야한다.
— 라이스 국무장관과 힐 차관보가 주도권을 가지고 협상을 통해 딕 체니와 네오콘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힐 차관보가 북한과 적극적으로 양자협상을 갖는 등 적극적으로 임해온 만큼 협상타결이 된다면 네오콘들을 상대로 중요한 정치적 승리를 얻게 돼 향후 협상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다. 다만, 이번에 실패한다면 힐을 비롯한 협상파들의 입지가 약화될 수 밖에 없다.
— 4차협상이 결렬된다면 어떤 상황이 예상되나?
▲안보리를 통한 경제제재나 대량살상무기금지방지구상(PSI) 발동 등도 예상되지만 두 가지 모두 중국이 지원하지 않는 한 성공하기 힘들다. 이런 점에서 체니 부통령을 비롯한 강경파 인사들이 ‘유구무언’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대화파들은 협상이 결렬돼도 대화를 다시 시도할 것이나 백악관은 아직 마음을 못 정한 것 같다.
— 군사적 공격이나 한반도 주변의 무력증강 가능성은.
▲무력증강이야 이미 스텔스기 배치 문제가 확인된 만큼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군사공격은 이라크 문제에 발목을 잡혀 있는 상황에서 현실적이지 않다.
워싱턴의 일부 인사들은 북한 문제가 이라크보다 10배는 복잡한 것으로 보고 있다. 네오콘들이나 부시 대통령도 이런 점을 감안해 협상파들에게 한 번 더 맡겨본 것 같다.
— 일종의 명분 쌓기로도 볼 수 있는 것인가.
▲북한하고 협상이 잘 안돼도 해결하고 싶은 마음을 보여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경제제제나 PSI 발동 등 강경책 구사에 어려움이 있다.
— 북핵문제 해결 전망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여전히 점치기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은 아직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자신의 모습을 무샤라프(파키스탄 대통령) 또는 카다피(리비아 대통령) 중 어떤 인물로 그리고 있는지 궁금해하고 있다.
무샤라프는 핵실험 후 수 년간 제재를 받았으나 결국 핵을 갖게됐지만 카다피는 개발 단계에서 이를 포기한 상황을 면밀히 분석해왔을 것이다.
— 볼턴의 유엔대사 임명이 북한의 ‘전략적 결단’에 영향을 주겠는가.
▲최근 북한의 태도와 관련해 주목되는 것이 지난 주 미국에서 열린 북한인권의 날 행사였다. 과거에는 이런 문제에 대해 격렬한 비난을 퍼붓던 북한이 이번에는 이렇다할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지난 3월 부시 대통령이 볼턴 국무부 차관을 유엔대사로 지명했을 때만해도 혹평을 했는데 이번에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점도 고무적인 것으로 본다. 북핵 해결 의지가 없다면 얼마든지 4차회담 결렬의 핑계가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 북.미간 신뢰관계 증진 필요성을 강조했는데.
▲1∼3차회담보다 구체적인 내용이 담긴 공동성명이 4차회담에서 발표돼 북.미간 신뢰가 제고된다면 북핵해결 목표를 향해 중요한 이정표를 세우는 것이다.
반대로 4차회담이 무위로 끝나 상호 비방전이 재개된다면 작은 일로도 큰 사건으로 비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이 수 차례 ‘선제공격 의사 없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또 서해교전 같은 사건이 발생하거나 양측 공군기간 충돌 등이 일어난다면 설사 우발적인 일이라도 예상치 못한 큰 사건으로 비화될 수 있다는 게 문제다.
— 중국이 제시한 제4차 수정안에 ‘북한의 핵폐기 및 검증과 북미관계 정상화 추진’이 포함됐다. 또, 관계정상화는 북.미간 양자회담으로 추진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는 데.
▲북.미관계 정상화를 추진한다해도 적어도 1-2년이 걸릴 수 있다. 또 미국은 핵문제 해결 외에 인권문제가 어느 정도 개선되고 미사일 문제도 납득할만한 수준에서 해결돼야 적극적으로 관계 정상화에 나설 것이다. 핵폐기만으로는 어려울 것이다.
— 김계관 북한측 수석대표는 4차회담 개막식 기조연설에서 “먼저 북미관계 정상화를 한 후에 핵폐기를 하겠다”고 주장했는데.
▲북한이 계속 이렇게 주장한다면 6자회담은 실패할 수 밖에 없다. 미국 정부 인사들이 이를 수용할만큼 유연성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
이런 점을 감안해 볼 때 북한은 미국과의 정상화에 앞서 한국 등으로부터 에너지 지원 등을 먼저 받아 경제난을 해소해가면서 대미관계 정상화에 나서는 것이 현명하다고 본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