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땀흘려 번 돈 뺏겨도 김정일 욕 왜 못하나?

북한에서 장마당 장사를 하면서 돈을 모아온 상인들이 11월 30일 전격 단행된 화폐교환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시장에서 장사로 근근히 살아가던 양강도 혜산시 김모 노인(62)은 “7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시장에 나가 살았다”며 “피 같은 돈이 하루 아침에 물거품이 되버려 너무 억울하고 원통하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했다. 


북한 내 한 소식통은 통화에서 “시장에서 쌀장사를 하던 누이가 쌀을 사려고 북한 돈 50만 원을 간수하고 있었는데 이번 화폐교환 때문에 장사 밑천을 송두리째 빼앗겨 앓아 누웠다”고 전했다.


북한에서 큰 돈을 만지는 부유층들은 계속되는 인플레와 1992년에 화폐교환 당시 현금을 빼앗긴 경험 때문에 달러나 중국 위안화를 보관하고 있어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농민이나 빈곤계층도 현금 보유량이 많지 않아 피해는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그러나 주로 상설시장에서 매대 장사를 하는 북한의 중산층들은 다량의 북한 화폐를 현금으로 보유해왔다. 전격적으로 진행된 화폐교환으로 인해 이들이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정부의 이와 같은 조치에 주민들은 자살이나 구화폐 방화, 당국에 대한 비난을 계속하고 있다. 물론 정치적인 의도가 드러나지 않게 하소연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함경북도 회령시 강안동에서 살면서 젓갈장사로 살아가던 60대 부부는 화폐교환 소식에 비관해 함께 목을 메고 자살했다. 평안북도 신의주 시장에서 화장품을 팔던 한 여인은 화폐교환소식에 격분해 당국을 비난하다가 보안원에게 잡혀갔다.


그러나 이러한 산발적인 저항도 화폐교환이 마무리 되가면서 서서히 진정되가는 분위기다. 북한 당국은 사회질서 유지를 위해 군부대까지 동원한 상태다.


북한 주민들이 실제 자기 재산을 강탈당하고도 당국에 대해 정치적 불만을 표시하거나 집단적인 저항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가장 큰 원인은 수십 년간 진행돼온 세뇌교육 때문이다. 남측 사람들은 가끔 이 세뇌교육의 무서움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북한은 갖가지 방법으로 김부자 우상화를 위한 끊임없는 사상공략을 진행해왔다. 즉 북한 주민들의 의식을 김일성 부자 중심으로 화석화 시키는 것이다. 북한에서 사는 공민은 누구나 김부자에 대한 충성을 공민의 권리와 임무로 간주하며 이는 곧 나라에 대해 충성할 것을 업으로 알고 살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교육이 사상을 지배하게 되면 아무리 굶주리고 폭력을 당하는 상황에도 누구에게 저항을 해야할지 알 수 없다. 저항의식 마저 제거된 것이다. 1990년대 중반 대아사 기간에 주민들이 떼죽음을 당하면서도 ‘장군님’ 건강 걱정을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뇌교육 외에 무자비한 탄압도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이다.  ‘요즘 살기가 왜 이리 힘드냐’는 한마디에도 국가에 대한 반항이라며 정치범 수용소에 감금하고 연좌제로 몰아 그 가족들까지 수용소 생활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평안북도 신의주시에서 진료소 소장으로 일하던 김모 씨는 1990년대 초 어느날 친구들과 마주앉아 술을 나누던 중 “요즘은 왜 이렇게 점점 더 살기가 힘들어지는지 모르겠다”고 한마디 한 것이 빌미로 되어 다음날 온 가족과 함께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 버렸다.


이번 화폐개혁을 실시하면서 북한 당국이 가장 우려한 것은 바로 내부 주민들의 강한 반발이었다. 북한 정부는 분노한 주민들의 소요시 이를 방지하기 위해 각종 통제 수단들을 총동원했다. 


화폐개혁을 공포한 11월 30일부터 개혁이 끝나는 다음날인 12월 7일까지를 특별경비기간으로 선포했다. 자신의 현금 상황이 정부에 알려질까 두려워 구화폐를 불에 태우는 주민들이 생길 것을 대비해 보안원들은 때도 시도 없이 집집마다 들이닥치고 있다. 


북한 주민들은 정부의 처사가 강도적인 행각인 줄 알면서도 바로 세뇌교육과 폭력, 연좌제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