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계리 핵실험장 폭파, 쇼는 맞지만 의미있는 쇼”

북한이 지난 24일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의 핵실험장을 폭파하는 행사를 진행했다. 그러나 여전히 이를 두고서는 엇갈린 반응이 나오고 있다. 한편에서는 “완전한 비핵화를 향한 첫 걸음”이라며 환영의 뜻을 밝히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보여주기식 위장 쇼”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 가운데 군사전문가인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쇼는 맞지만 의미있는 쇼”라며 “이번 핵실험장 폭파는 기술적으로 보면 의미가 없지만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평했다.

김 교수는 지난 28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위치한 연구실에서 데일리NK와 만나 이번 북한의 핵실험장 폭파에 대해 전문가로서의 견해를 밝혔다. 그는 아쉬운 부분도, 기술적으로 확인해야할 부분도 있지만,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의지를 보여줬다는 점에서는 분명 의미가 있다는 평가를 내렸다.

김 교수는 이번 행사에 대해 “기술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본다”며 “지금까지 상대를 속이고 시간을 끌었던 속임수로서의 쇼가 아니라, 오히려 핵을 포기할 의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이벤트이자 출발점으로서의 총성인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김 교수는 북한이 이번 폭파 행사 직후 성명을 통해 ‘핵실험장을 폐기했다’고 발표한 것과 관련, “이번에 북한이 한 것은 상당부분 폐기에 가까운 행동은 맞다”면서도 “엄밀하게 놓고 보면 폐기라는 단어를 쓰기가 조금 부족한 면은 있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완전한 의미의 ‘폐기’는 시설을 부수고 해체하는 것을 넘어 복원과 치유의 과정까지 포함돼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번 행사에서는 일단 복원과 치유의 과정이 없었기 때문에 엄밀히 따지면 ‘폐기’라는 용어를 사용하기에는 불충분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김 교수는 북한의 ‘완전한 핵 폐기’가 현실적으로 가능한지에 대해 “단정적으로 북한이 할 수 있다, 없다 하는 것은 우매하다고 본다”면서 “다만 비핵화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지금의 과정 자체를 긍정적인 마인드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중요한 것은 결국 북한의 비핵화라는 열차가 출발해 유예라는 역을 통과했고 폐기라는 역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라며 “그 기차가 출발했고, 그 방향(비핵화)을 향해 가고 있다는 점만은 우리가 인정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다음은 김 교수와의 일문일답.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 사진=데일리NK

-24일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의식이 있었다. 이것을 ‘폐기’로 볼 수 있을까.

“엄밀하게 놓고 보면 폐기라는 단어를 쓰기가 조금 부족한 면이 있다. 기술적인 면을 눈으로 확인한 게 아니라서 폐기라는 단어를 단정적으로 쓰기에는 아직까지 확인해야할 부분이 충분히 있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통상 핵 폐기를 이야기할 때는 복원이라는 것이 꼭 포함돼야 한다. 핵 시설을 부숴서 완전히 해체하는 것만이 폐기가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서 복원하고 치유하는 과정들이 포함돼야 완벽한 폐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기술적인 측면에서 보면 사실 이번에는 복원의 과정이 없기 때문에 명확하게 폐기라는 단어를 써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향후에 이것을 다시 사용하기 위해서는 거의 재건축을 해야하기 때문에, 그런 측면에서 보면 이번에 북한이 한 것은 상당부분 폐기에 가까운 행동, 행위는 맞다.”

-그렇다면 이번 핵실험장 폭파에 기술적인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다고 보는 것인가.

“나는 사실 기술적 의미를 크게 부여하고 싶지 않다. 많은 전문가나 일부 언론에서 북한이 앞으로 핵 기술의 질적인 발전을 더 이상 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고 이야기하면서 북한의 미래 핵을 차단했다는 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북한은 이미 6번의 핵실험을 했지 않나. 핵실험을 더 이상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시뮬레이션 실험을 통해서도 충분히 기술적 발전을 할 수 있다는 점을 놓고 본다면 핵실험장 폐기에 기술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본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핵실험장 폭파에 대해 ‘보여주기 쇼’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핵실험장 폐기라는 것은 말 그대로 쇼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의미 없는 쇼인가.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쇼는 맞지만 의미있는 쇼다. ‘나 정말 핵을 포기할거야’라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이벤트로서의 쇼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상대를 속이고 시간을 끌었던 속임수로서의 쇼가 아니라, 오히려 핵을 포기할 의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이벤트이자 출발점으로서의 총성인 것이다. 이번 폭파는 행동적 차원에서 비핵화로 출발하는 신호를 울리는 총성과 같은 이벤트적인 차원의 행사였다고 생각한다.”

-비핵화에 대한 의지가 있다는 점을 보여준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 북한 스스로가 ‘단계적·동시적으로 가겠다’ ‘행동에 대한 보상은 받고 가겠다’라고 이야기했는데, 하나의 보상도 없이 한 것 아닌가. 하나의 보상도 없이 그들의 행동에 대해 진실성을 논하는 것은 너무 앞서가는 게 아닐까.”

-조금 전 답변에서 ‘우리가 확인해야할 부분이 충분히 있다’고 했다. 어떤 것인가.

“총 4개의 갱도가 있는데, 발표문을 보면 3개 갱도밖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번에는 2, 3, 4번 갱도를 부수고 철거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행사였던 것 같은데, 1번 갱도가 어떻게 됐는지는 확인이 안 된 부분이 있다. 1번 갱도도 폭파시키고 폐쇄하는 과정을 확인했는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또 2번 갱도의 경우에는 이미 핵실험을 5차례나 한 곳이기 때문에 이미 갱도가 상당부분 붕괴됐고, 사용이 불가능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 나머지 3, 4번 갱도는 아직 사용하지 않은 멀쩡한 갱도고, 이것을 어느 정도 깊이까지 뚫어놓은 것인지 모른다. 수평갱도일 수도 있고 수직갱도일 수도 있는데, 예를 들어 1km 정도로 뚫어놨다면 어느 정도 지점에서 폭파가 됐는지 알 수 없다. 100m 단위로 폭발물을 설치해 터뜨린 것인지, 아니면 중간에 폭발물 한 개 정도를 설치하고 폭파해서 굴착작업을 하면 다시 멀쩡하게 쓸 수 있는 것인지 그런 것을 모르는 것이다.”

-폭파 현장을 담은 사진을 봤을 텐데, 그 중에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나.

“이미 인공위성 사진으로 상당부분 밝혀졌기 때문에 특별한 것은 없었다. 다만 조금 아쉬운 점은 거기 있던 건물들이 어떤 건물들이고, 과거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밝혀지지 않은 것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 건물들이 다 쓸모 있는 건물이 아닐 것이다.(웃음) 어떤 것은 가짜로 만든 건물도 있고 실제로 쓰는 건물도 있을 것이다. 사실 부수기 전에 전문가들이 미리 들어갔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럼 북한이 어떻게 개발을 했는지 알 수 있는데, 그것을 하지 못했다는 게 아쉬웠다. 갱도를 폭파한 것도 나름대로 상당부분 의미가 있었지만, 주변시설 폭파 작업 이전에 용도를 미리 알았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다.”

-‘폐쇄’와 ‘폐기’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쉽게 설명해달라.

“폐쇄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곧 셧다운(shutdown), 클로징(closing)을 말한다. 문을 걸어 잠그고 못 들어가게 하면 그것이 폐쇄다. 폐기는 시설을 완전히 해체시키고, 불능화를 넘어 그것을 치유하고 복원하는 것까지 포함된다. 그런 면에서 폐쇄와 폐기는 완전히 차이가 나는데, 조금 혼동이 있었던 것 같다. 실험을 하지 않는 유예, 그 다음에 소위 동결이라고 이야기하는 폐쇄·봉인, 그리고 불능화(disabling), 이어 폐기(dismentlement)까지 이 모든 과정이 비핵화다. 비핵화는 전체의 과정을 이야기하지 단 하나의 이벤트나 사건이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 북한이 비핵화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 그렇다. 비핵화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 비핵화 과정에는 사찰과 검증도 포함되는 것인가.

“전체 비핵화 과정 사이에 사찰과 검증이라는 것이 있다. 어떻게 보면 유예 단계 이전에 가장 먼저 있는 것이 사찰이다. 통상 사찰이 비핵화의 시작점이라고 많이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북한이 폐쇄·봉인 단계에 들어갔을까? 공식적으로는 들어가지 않았다. 유예는 했지만 이벤트로서 핵실험장 폐기 쇼를 보여줬다. 핵실험장 폭파는 기술적으로 보면 의미가 없다. 그러나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핵 개발에서 가장 의미 있는 행사가 핵실험이고, 가장 의미 있는 곳은 핵실험장이다. 그것을 완전히 없앤다는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그렇게 보면 이번에 왜 기술팀이 들어가지 않았는가에 대한 답이 나온다. 이 행사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것인데, 여기에 사칠단이 들어오면 꼬이게 된다. 상징적 행사의 의미가 퇴색되고 마치 사찰 국면으로 넘어가는 것처럼 되는 것이다.”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의지가 있다고 평가할만 하다고 보는 것인가.

“일단은 그렇다고 본다. 아까 말했듯이 비핵화라는 것이 하나의 이벤트가 아니라 과정이지 않나. 북한이 폐기로 갈 것이냐는 단정하기 어렵다고 본다. 그러나 나는 갈 것이라는 희망적인 생각을 한다. 하지만 단정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결국 북한의 비핵화라는 열차가 출발해서 유예라는 역을 통과했고, 곧 폐쇄라는 역에 들어선다는 것 아니겠나. 기차는 벌써 출발해 마지막에 도착해야하는 폐기라는 역으로 가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열차가 출발했다는 것조차도 인정하지도 않고 있다. 이미 출발해서 가고 있다는 것은 인정해야한다고 본다. 도착하는 문제는 별도의 문제다. 그런데 과연 이 기차가 혼자 갈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비핵화의 레일 중간이 끊어져있을 수도, 교각과 터널이 무너져있을 수도 있다.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의 깊은 불신의 골 때문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북한이 레일과 교각을 지어서 가기를 바랐던 게 지금의 우리다. ‘너 혼자 비핵화해’라고 무조건 요구했던 것이다.”

-북한이 폐기라는 종착역에 도착할 수 있도록 우리도 역할을 해야 한다는 말인데.

“북한이 왜 핵을 만들었나. 어쩌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합리적인 안보 우려일 수도 있다. 생존의 문제. 이것을 해결해주는 것이 레일을 만들고 교각을 놓는 과정이다. 그것 없이 도착하라고 하면 어느 누가 가겠나. 북한이 정말 잘 가고있다는 것을 국제사회나 미국에 이해시키는 보증인으로서의 역할은 우리 대한민국이 하는 것이다. 반대로 북한에 대해 국제사회와 미국이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보증인으로서의 역할도 우리가 하는 것이다. 나는 그 역할을 지금 우리가 하고 있다고 본다. 최근의 남북정상회담도 단순히 중재자나 가교로서의 역할이 아니라 길라잡이의 역할이었다고 본다. 북한과 국제사회·미국 양쪽에게 신뢰받는 보증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미국은 ‘완전한 비핵화’를 거론하고 있다. ‘완전하다’고 평가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가.

“트럼프가 인정하는, 트럼프가 만족할 수 있는 것이라고 표현하면 가장 쉬울 것 같다. 트럼프 개인이 인정도, 만족도 하지만 미국 국민과 전문가, 정치가들을 이해시키고 그들이 우려하는 것을 해소시키는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이 정도면 북한 핵무력은 없는 것 아닌가’라고 이해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트럼프가 이야기하는 것이 2020년 임기 내에 끝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기한 내에 하기 위해서는 콤팩트(compact)하게 하는 거다. 플루토늄 재처리를 못하게 하고, 우라늄 농축을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 두 가지를 못하면 앙꼬없는 찐빵과 같다. 핵무기는 플루토늄과 우라늄이 없으면 앙꼬(팥소) 없는 찐빵이다. 물론 여전히 날아올 미사일이 있고, 생화학무기를 탄두에 넣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지만, 핵심은 플루토늄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 문제다.

플루토늄은 땅을 판다고 나오지 않는다. 발전소, 원자로를 돌려야만 나올 수 있다. 원자력 발전소 돌리지 않으면 플루토늄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의 원자력 발전소만 확인하면 된다. 우라늄도 땅에서 건져서 그대로 핵탄두에 집어넣을 수 없다. 우라늄 235과 238이 있는데, 쓸 수 있는 것은 235다. 그것은 0.7% 밖에 추출할 수 없다. 이것을 90%로 만들어야만 무기로 쓸 수 있다. 우라늄 238을 날리고 235를 농축해서 비율을 늘려서 90%를 만드는 것이다. 그것에 많이 쓰는 방식이 원심분리기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 사진=데일리NK

-결국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핵탄두에 싣지 못하게 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설명인데.

“미국 입장에서 보면 사실 다른 시설은 별로 의미가 없다. 이 두 가지, 플루토늄 재처리와 우라늄을 농축하는 이 두 가지만 딱 끄집어내면 된다. 앙꼬 없는 찐빵을 만들면 된다. 핵은 사찰과 검증을 하면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얼마나 원자로를 돌렸는지 확인하고 핵실험에 얼마를 썼는지를 알면 세세한 단위까지 알 수 있다. 또 플루토늄 재처리 시설은 덩치가 크기 때문에 숨길 수가 없어 사찰과 검증이 편하다. 그러나 문제는 우라늄이다. 북한에 원심분리기가 얼마나 있는지, 언제부터 돌렸는지, 어디 있는지 확인이 안 되고 있다. 플루토늄의 경우에는 재처리 시설을 숨길 수가 없지만, 우라늄은 숨길 수가 있다. 원심분리기는 이 연구실 방에도 설치가 가능하다.”

-과연 북한이 깨끗하게 다 공개할까.

“바로 그 문제다. 깨끗하게 공개하게 되면 문제가 해결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경우에도 나중에 확인해 보니 공원 지하에 있었다는 것 아닌가. 학교 운동장, 실내체육관 크기만 해도 2000개 정도 설치할 수 있다는 것 아닌가. 그런데 나는 북한이 이 정도 됐으면 신고를 제대로 할 것이라고 믿고 싶어진다. 북한이 숨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장담할 수 없고, 그것이 확실하다는 것을 미국의 전문가나 국민들이 믿지 않을 수도 있다. 결국에는 신고하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공세적·공격적 검증이라고 한다. 신고한 곳 이외의 다른 곳을 사찰하고 검증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공세적 검증은 그 나라의 주권과 관련이 돼 있고 또 악의적으로도 사용될 수 있다. 공세적 검증을 핑계로 군사시설을 다 돌아다니면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공세적 검증은 북한도 민감하게 받아들일 것 같은데.

“그렇다고 해서 신고한 시설만 보여줄 수는 없다. 나는 그래서 북미 사이에 절충이 있었다고 본다. 사실 리비아 방식이 과거 우크라이나 혹은 남아공의 방식과 차이나는 점은 사찰 문제다. 우크라이나와 남아공의 경우에 IAEA만 사찰을 했다. 그런데 리비아는 IAEA와 미국, 영국이 같이 들어갔다. 그런 측면에서 리비아 방식이 북한에 적용 가능한 부분은 가장 빠르게 신속하게 했다는 속도의 문제와 검증의 문제인 것이다.”

-최근에 북한이 리비아식 방식을 언급한 존 볼턴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을 맹비난한 것도 그 절충의 과정에서 북미 간에 이견이 있었기 때문일까.

“볼턴이 말한 리비아 방식은 진짜 말 그대로 ‘선(先)핵폐기 후(後)보상’에 가까운 것이다. 미국의 조야나 정치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북한을 믿을 수 없으니, 선핵폐기 후보상이라는 논리로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비현실적이니, 트럼프는 ‘타결은 일괄타결을 하자’라는 것이다. 선핵폐기 후보상과 일괄타결은 똑같은 것이 아니다. 일괄타결이라는 것은 양쪽이 생각하는 것을 테이블에 다 올려놓고, 포괄적으로 협의하는 과정에서 뺄 것은 빼고 필요한 것만 바구니에 담는 것이다. 양쪽 다 담은 것에 대해 이견이 없어 한꺼번에 통으로 합의를 하는 것이 일괄타결이다.

핵심은 그중에 하나라도 이견이 생겨 한 쪽에서 하나라도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하면 타결 자체가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견 있는 것은 빼고 가는 것이 안 된다. 트럼프도 합의의 방식은 일괄타결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결국 선핵폐기 후보상이 아니라, 단계적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어느 정도 양보했다고 본다. 일괄타결이라는 합의의 방식과는 별도로 이행은 단계적으로 갈 수 있다는 점을 은근히 비췄다는 것이다. 북한이 이야기하는 단계적이면서 동시적인 조치를 수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은 단계적·순차적 보상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나.

“나는 단계적·순차적, 단계적·동시적이라는 두 가지가 중간에서 만나서 접점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이 디테일은 앞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인데, 지금 실무협의에서 이 문제와 검증 문제가 쟁점이 될 것이라고 본다. 심지어 리비아모델 조차도 선핵폐기 후보상이 아니었다. 핵 폐기를 시작한 후부터 보상조치에 대한 협의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단계적·순차적이라는 것은 말이 안 맞다. 김정은이 이번에 중국에 갔을 때 단계적·동보적이라고 이야기했다. 비핵화의 의미 있는 행동을 시작하는 것이 확인되면, 보상조치를 위한 협의와 노력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시작점은 다를지 모르지만 끝나는 것은 거의 비슷하게 끝난다. 단계적·동보적의 핵심은 의미 있는 행동, 상대를 믿게 하는 행동이 먼저 시작되면 그것으로 보상조치가 시작되는 것이다.”

-북미 모두 이 방안에 대해서는 접점을 가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인가.

“이런 접점이 맺어지면 가장 좋은 상황이라 본다. 핵심은 2020년이 End-State(최종상태)가 돼야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김정은은 2020년이 중요하지 않다. 김정은에게 중요한 것은 2018년, 올해다. 정치국회의도 하고 전원회의도 하면서 병진노선을 결속하고 경제로 가겠다고 이야기하고 인민에게 비핵화를 선포하지 않았나. 지금 인민들이 그냥 인민인가. 500만대 휴대폰을 손에 들고 500개의 장마당을 뛰어다니며 먹고 사는 인민들을 어떻게 통제 하냐는 것이다.

북한은 지금껏 미국이 무서워서 핵을 만들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인민이 무서워서 핵을 포기해야 하는 시점인 것이다. 핵을 포기하기 위해 핵을 만들었다고 해야할까. 지금까지는 외부적 위협의 문제, 생존의 문제 때문에 핵을 부여 쥐고 핵 포기의 딜레마에 빠졌다면, 이제는 부여잡은 핵을 놓아야 될 시점이다. 핵을 쥐고 있으면 잘 사느냐 못 사느냐, 이 영역의 변환점이 2018년이라는 것이다.

북한이 계속 강조하고 있는 것이 올해가 경제개발 5개년 전략의 3년차라는 것이다. 북한도 급한 것이다. 5개년 전략이 끝나는 2021년 5월에 인민들에게 뭔가를 보여주고 제8차 당대회를 통해 새로운 그림을 그려야 된다고 보면 이 시점은 정말 중요한 시점이다.”

-북한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두 가지다. 군사적 위협 해소와 체제 안전 보장. 군사적 위협이 사라졌다고 할 수 있는 가시적인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면, 그것은 남북미 종전선언일 것이다. 전쟁위협이 없다는 것. 말 그대로 정치적 이벤트지만, 북한에 그 이벤트를 주는 것이다. 그것을 통해서 그나마 군사적 위협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두 번째는 체제 안전인데, 결국 경제적인 문제다. 그렇다면 제재 문제가 가장 큰 것이다. 그런데 지금 제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나. 트럼프 혼자서 해결이 안 된다. UN도 관련돼 있고, 미국 의회도 관련돼 있다. 그렇다면 제재의 완전한 해제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게 보면 트럼프가 생각하는 2020년의 출구의 모습뿐만 아니라 김정은이 생각하는 2018년 입구의 모습까지 일괄타결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 비가역적인 불능화 조치로 종전선언과 제재의 틈을 만들어주는 것, 그리고 사찰과 검증이 들어가는 것이 2020년의 마지막이 될 가능성이 있다. 이런 것들이 일괄타결 방식으로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이 그림만 그려진다면 가장 멋진 그림이고 이것을 합의할 수 있다면 그 다음의 그림도 그릴 수 있다는 것이다. 2020년 북한이 완전히 핵 폐기를 했다고 하면 그 비슷한 시기에 평화협정이 맺어질 것이고 제재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북미 간 수교는 어느 시점에 이뤄질 것으로 전망하나.

“북미수교는 그 다음, 핵 폐기보다 조금 뒤에 수교가 따라갈 가능성이 많다고 본다. 그렇게 되어야만 제재가 해결되고 대규모 지원이 들어갈 수 있다. 미국의 민간자원이나 국제자본이 들어가려면 북한이 IMF에 가입하는 것이 핵심이다. 북한이 IMF에 가입해야만 미국의 민간 기업들이 안심하고 들어갈 수 있다. 보험이 되니까. 북한이 지금부터 준비해서 IMF 가입까지 3년이 걸린다고 보면 2021년 이후에 대량으로 미국의 자본이 들어갈 수 있고, 그 전에는 유연하게 중국과 한국의 자본이 들어갈 수 있다. 그것은 북한도 바라는 것이다.

개혁이 있고 개방이 있는데, 개혁과 개방 중에 개혁이 먼저 가야지 개방이 먼저 되면 정권이 망한다. 정치적으로 개혁을 하면서 인민들을 단결시키고 개방으로 가야지, 그것 없이 개방을 하는 순간 인민들의 수준이 높아진다. 시스템이 따라가지 못하면 인민들의 불만이 폭발하게 되고, 정권이 붕괴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그런 차원에서 개혁이 먼저 가는 것이다. 결국 통제할 수 있는 수준에서 외부 유입을 허용하는 것이다. 북한은 제한된 수혈을 받으며 개혁을 먼저 해서 단단하게 내부를 굳혀 놓고, 이후에 IMF에 가입하면 개방으로 가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 같다.”

-북한의 비핵화가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보나.

“나는 북한이 처음부터 신고를 깨끗하게 할 것이라고 본다. 감춰놓지 않을 것이라고. 그런데 지금까지 있었던 불신의 골이 깊고, 이번에 제대로 할 것이냐는 의문이 있다. 미국, 트럼프 입장에서는 믿고는 싶은데 내부 정치적으로 공격을 받을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2020년에 공화당 후보가 안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설득하기 위한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단정적으로 이 자리에서 북한이 비핵화를 할 수 있다, 없다 하는 것은 우매하다고 본다.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우리가 노력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기차가 출발했고 그 방향을 향해 가고 있다는 점만 인정하자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여러 가지 문제에서 북한도, 우리도, 국제사회도 노력해 폐기라는 종착역을 갈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비핵화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지금의 과정 자체를 긍정적인 마인드로 볼 필요가 있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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