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암 4기. 지난 1996년 탈북해 한국에 정착한 뒤 줄곧 북한민주화운동에 앞장서왔던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에게 내려진 진단명이다. 떼어내지 못한 암덩어리는 여전히 그를 괴롭히고 있지만, 그는 ‘북한 주민들에게 닿는 정보의 흐름을 끊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매일 대북방송 현장에 나서고 있다.
최근 미국의 협력단체를 통해 지원을 받아 조직을 개편하고 12월부터는 기존 1시간의 대북방송 송출 시간을 4시간으로 늘릴 계획이라는 김 대표. 그를 지난 27일 서울 강서구 자유북한방송 제작 현장에서 만났다.
주변 사람들의 걱정과 달리 스스로는 ‘다 나은 것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며 싱긋 웃어보이던 그는 대화가 무르익자 이내 매서운 눈빛을 하더니 북한인권 문제의 심각성과 외부정보 유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 대표는 “3대가 세습되고 수용소가 돌아가는 말도 안 되는 북한의 체제가 유지될 수 있는 핵심 요소는 외부정보 차단”이라며 “북한 주민들에게는 한국의 일상사도 큰 뉴스가 될 수 있고, 사진 한 장이 경천동지할 인식의 변화를 줄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북한 주민들의 마음에 닿을 수 있는 대북방송 프로그램을 만들고 피드백을 받아서 북한 내부에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일에 주력할 생각”이라며 “이런 과정을 통해 앞으로도 북한의 열악한 인권상황을 알리는 일에 매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음은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와의 인터뷰 일문일답.
-암 투병으로 적지 않은 시간을 고생했다고 들었다. 현재 상태는 어떤가.
“많이 나았다. 작년 3월 말에 뇌수술을 하고 그 이후에 다 나은 줄 알았는데 폐에서부터 전이된 것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지금 의학적으로는 폐암 4기다. 지금 뇌는 괜찮고, 폐는 수술할 수 없는 상태라고 해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 많은 분들이 걱정을 해주고 있는데 저 개인적으로는 ‘다 낫지 않았나?’ 이런 생각을 가지고 일하고 있다.”
-투병생활에 그동안 자유북한방송을 제대로 운영하기 어려웠을 텐데.
“우리 방송은 시작할 때부터 미국의 수잔 솔티 디펜스포럼 대표와 함께 했다. 그 분이 저희 방송의 명예위원장이다. 내가 쓰러졌을 때 사실은 그쪽이 더 분발하고 지원해줘서 아팠던 기간에도 1시간 대북방송을 계속 진행했다. 아시겠지만 방송하려면 전파임대료가 있어야 하고 최소한의 사무실 운영비, 직원 월급이 필요한데 그것을 미국 쪽에서 100% 부담해줬다. 아파서 쓰러지면서도 그래도 방송은 이어가니 한쪽으로는 안도하기도 했다. 대북방송을 시작할 때 처음부터 이야기한 게 있다. 노무현 정부가 안 하겠다고 하니 탈북자인 우리들이라도 하자고. 하자는 말 속에는 남한 사람들이 지금껏 북한 주민들에게 알려주던 내부 소식이나 정보의 맥을, 흐름을 끊지 말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하루에 10분 방송해도 좋다’, ‘이 방송이 노무현 정부가 포기한 대북방송의 맥을 잇는다는 생각으로 하자’고 했고 그때부터 쭉 해왔다. 아플 때 주변에서 다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미국에서 지원해줘서 하루 1시간 방송은 계속 할 수 있었다.”
-건강이 조금 나아지자마자 바로 현장으로 복귀했다. 아직 완전히 회복되기 전인데, 서둘러 온 이유가 있을까.
“그냥 하고 싶었다. 어떤 면에서는 내 인생을 걸었던 거니까. 예전에는 방송을 하면서 소위 좌파들에게 기습시위도 들어오고 몰렸던 적도 있었다. 그 때 털고 일어나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다시 용기 있게 방송을 했는데, 동시에 ‘이것은 어떻게 보면 나의 운명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아플 때도, 이제 죽었다 싶을 때도 방송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살아났으니 더 열심히 해야지 뭐 어쩌겠나(웃음). 그러던 참에 협력단체로 있는 미국 디펜스포럼을 통해서 국무부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문재인 정권 하에서 탈북자들이 다 코너에 몰리고 있는데, 미국에서 지원을 받으니 다른 단체들의 본이 돼야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하고 있다.”
-제작 인원이나 방송 시간, 금전적인 여건이 달라진 게 있나.
“확 달라졌다. 기존에는 국장, 여직원 1명 정도 있었고 간간이 후원으로 어렵게 운영했다. 그런데 지금은 10월 1일부터 국무부 지원이 확정돼서 인원을 보강했고 그래서 지금 10명 정도되는 직원들이 일하고 있다. 그리고 언론에도 나갔는데 총 예산 50만불 정도다. 또 4시간 대북방송을 하고 있는데 2시간 방송을 만들고 2시간을 재방송하는 방식으로 하고 있다. 아직 방송시간은 확정되지 않았다. 원래 10월 1일부터 하려고 했는데 사정이 있어서 12월 1일부터 하려고 내부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자유북한방송은 오로지 탈북민들의 힘으로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다. 어려운 점은 없나.
“당연히 있다. 시작할 때 다른 민간 대북방송들도 몇 개 있지 않았나. 근데 서로 다 특색들이 있더라. 우리는 시작부터 탈북자들이 모여서 하자고 했기 때문에 그것이 소위 우리만의 정체성이랄까. 그런데 특히 기술 문제에서, 하다못해 녹음 편집도 어렵다. 어려운 게 분명하다. 그럼에도 특색을 살려나가는 차원에서 탈북자들이 하고 있는데 나는 장점도 있다고 생각한다. 탈북자들이니까. 저들이 다 북한에서 라디오를 들었다고 하고 있다. 나부터도. 들으면서 어떤 게 부족하고 어떤 것을 했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들이 다 있기 때문에 맨 처음에 방송 시작할 때 모여서 그 회의를 했다. 그 때 만든 프로그램 중에 지금까지 하고 있는 프로그램도 있다. 그리고 이건 오래 전부터 생각했던 건데, 많이 서툴고 그래도 탈북자들한테는 진심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고향 사람들한테 진정으로 이야기한다, 무엇을 이야기해도 진짜로 한다는 거다. 늘 북한 선전방송에 맞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부족한 것은 지원도 받고 도와달라고도 하면서 하고 있다.”
-북한 내부 소식도 전하고 있지 않나. 현재 북한 주민들의 분위기는 어떤가.
“전체적으로 지금 북한 주민들은 고무돼 있다. 특히 소위 당의 노선을 받들고 충성하는 맹목적인 충성분자들은 많이 고무돼있다. 김정은 장군님을 믿고 따랐더니 정말 핵은 완성됐고 이제 공업강국만 만들면 된다. 그 속에는 분명히 김정은이 받아 낼 것이라는 생각이 있다고 본다. 그런데 반대로 그런 것은 다 허무하다는 사람들도 있다. 어쨌든 북한 전체를 통틀어서 보면 굉장히 고무돼있다. 북한 사회가 70여 년 동안 경제봉쇄 속에서 살았지 않나.
그런데 9월과 10월 강연자료들을 쭉 취합해 보다보면 9월부터 기조가 조금 바뀌고 있다. 지금 북한은 주민들에게 소위 장기전을 이야기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자력갱생으로 지금껏 먹고 살았는데 외부의 봉쇄가 뭐 그리 큰 문제냐. 그리고 미국 놈들은 결국 우리 체제를 변화시키려하지 우리를 지원해주려고 하지 않는다’는 거다. 그러면서 강조하는 게 자력갱생이다. 김정은이 암묵적으로 북한 주민들에게 헛된 약속을 하지 않았나. 그렇게 북한 주민들에게 환상을 부어줬다가 지금 살살 수위를 조절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셈이) 빠른 사람들은 당이 아니라 나를 믿고 산다고 하고 있다.
내가 7월에 미국에 가서 상·하원의원도 여러 명 만나고 NSC 관계자들이나 아태지역 최고 전문가들도 만났다. 내가 아는 한 미국은 핵 1g까지 빼내야 제재를 푼다는 입장인 것 같다. 그러니까 김정은이 정말로 핵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면 미국은 대북제재를 풀지 않을 거라고 본다. 그리고 생각하기 싫지만 군사적 옵션까지도 나갈 수 있다는 게 미국 정치인들이 하는 말이다. 이 세상에 신용카드라는 것을 만들어낸 게 미국이라고 하더라. 그렇게 미국 사람들이 신용을 중요시하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을 만나기까지 했다. 김정은 입장에서는 할아버지 때부터 하고 싶었던 일을 한 거다. 많은 사람들이 트럼프 대통령이 함정에 빠졌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어떻게 보면 김정은이 더 깊이 빠졌을 수도 있다. 끌려 나갈 수밖에 없다. 뭐든지 옵션을 보여야 한다.
미국에서 지금 요구하는 건 핵 리스트다. 무조건. 그런데 북한은 절대로 안 내놓을 거다. 지금 노동신문에서 하는 얘기가 다 내놨다는 것 아닌가. 그런데 미국이 바보인가? 정말 다 내놓으라고 할 거다. 김정은이 제대로 반응하지 않으면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라도 김정은이 제대로 반응하든지, 아니면 문 닫아걸고 다시 들어가서 얻어맞든지 이 갈림길에 있다고 본다.”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은 있지만 그 가운데 인권 문제는 뒤로 밀려 있다. 여전히 북한 당국의 인권침해가 이어지고 있는데.
“인권문제는 핵 문제 이전에 해결돼야 하는 문제다. 인권문제가 해결됐다면 사실 핵 문제는 있을 수 없다. 이것은 예전에 황장엽 선생도 여러 번 하신 말씀이다. 북한 당국이 인권문제에서 해결해야 될 몇 가지 행동만 취하면, 예컨대 정치범수용소를 해체한다든가 국군포로를 보낸다든가 이런 아주 기본적인 문제들 해결하면 그 때는 전망이 확 보인다. 근데 그것을 안 하려고 하니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거다. 한 때 김정은을 국제형사재판소에 보내야 한다고 온 세상이 들끓었던 적이 있지 않았나. 당장 갈 뻔했다. 거기서 탈피하기 위해 김정은이 핵을 방패삼았는지도 모른다. 그만큼 북한 인권문제가 심각하다.
내가 최근에 온 탈북자에게 물어봤다. 지금도 생활총화 하냐고. 한다고 하더라. 어찌 보면 인권문제의 가장 기초적인 것일 수도 있다. 멀쩡한 사람들을 자아비판 시키지 않나. 이런 문제들이 반드시 해결돼야 하는데 핵에 가려서 자꾸만 가라앉고 있다. 물론 한국 정부가 먼저 나서야 하는데 안 하니까 미국이 그리고 유엔이 이야기하고 있지 않나. 그만큼 중요한 문제다. 그런데 이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문재인 정권은 보이콧하고 있다. 나는 탈북자들이나 북한인권단체들이 계속 들고 일어나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국민들이 정부를 일깨워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북한인권법 제정에 힘을 쏟았는데, 북한인권재단 출범은 사실상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누구보다 씁쓸한 마음이 들 것 같은데.
“인권재단 출범은 법을 제정할 때부터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그 때 지금 여당인 민주당이 결사반대를 했다. 그리고 사무총장직을 내놓으라거나, 상근직을 달라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했다. 그 때 자유한국당이 대책을 내놨어야 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었다. 여당이 대놓고 반대하니 논의가 아주 소극적으로 되고 있는 거다. 내가 미국에 가서 애드로이스 하원 외교위원장을 만났는데, 그 때 그가 ‘인권재단은 어떻게 되고 있냐’고 묻더라. 그래서 있는 그대로 사무실이 문을 닫았다고 말하니 참 황당해하더라. 그리고 그 다음날인가 의회에 가서 문재인 정권을 엄청 두들겨대는 말을 했다. 인권재단 문제는 지금 여당이 북한 주민들의 인권문제를 손톱만큼도 중요시하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본다. 본인들도 인권을 외치고 있고 같은 사람인데, 아니 사람을 중시한다는 문재인 정권 아닌가. 인권재단 예산이 100억이 삭감됐는데 나는 이것이 정상적 국가에서는 벌어질 수 없는 일이라고 본다.”
-우리가 흔히 정보 자유화라고 부르는데, 보다 근본적으로 북한 주민들이 외부정보를 마음껏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한 이유를 설명해달라.
“북한 체제, 3대가 세습되고 수용소가 돌아가는 말도 안 되는 체제가 유지될 수 있는 핵심 요소는 외부정보 차단이다.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어 놓는 것이다. 자체적으로 생산한 뉴스만 보도록 하고, 우상화 교육을 하고 있다. 이것을 뚫고 들어갈 옵션이 몇 개 안 된다. 단파 라디오와 대북전단, 중국을 통해 보내는 USB 정도다. 많지 않은데 사실 힘겹게 하고 있다. 우리뿐만 아니라 국민통일방송이나 탈북자단체들 다 힘들게 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정부가 하면 쉽다고 본다. 박근혜 정부 때도 소극적으로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정부가 마음먹고 하면 북한 사람들이 변할 수 있는 조건이 많다. 정권이 통제를 하니까 라디오도 마음대로 못 듣고 삐라도 마음대로 못 보고 갖다 바치거나 불태우고 있는 것이다.
사실 전단은 정부가 정말 더 깊이, 국경지역만이 아니라 더 깊이 보낼 수 있다. 나도 예전에 대형 애드벌룬에 띄워서 보낸 삐라를 황해북도에서 엄청 주워봤다. 그때는 ‘남조선 놈들 이거 미국 놈들 식민지로구나’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런데 지금은 북한 주민들의 정서가 그 때와는 완전히 달라졌다. 다만 정부가 할 리가 없으니 대북방송이나 탈북자단체들이라도 열심히 해서 북한 주민들 마음에 닿는 라디오 프로그램, 손에 닿는 전단을 만드는 것이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상사도 북한 사람들에게는 큰 뉴스가 될 수 있고, 사진 한 장이 북한 주민들에게 정말 경천동지할 인식의 변화를 줄 수 있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이나 목표가 궁금하다.
“우리가 피동적으로 쫓기는 면도 없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는 주어진 환경 속에서 더욱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북한 주민들 마음에 닿도록 하고, 저들의 피드백을 받아서 다시 또 북한 내부에 네트워크 형성하는 일에 주력할 생각이다. 또 지금 보이는 라디오로 ‘김정은의 사생활’이나 ‘탈북자가 보는 남조선’, ‘탈북자 대담’, ‘인민군 24시’ 이런 프로그램들을 찍어서 유튜브에 올려놓기도 하는데 사람이 적으니 힘은 들지만, 또 기재를 살 돈이 없어서 자신들의 카메라를 들고 와서 하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새롭게 시작을 했으니 국민들이 관심 가져주리라 생각한다.
유튜브는 철저히 남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 사람들이 김정은에 열광하고 환영단을 만드는 게 다 김정은이 얼마나 잔혹한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것을 알려야 한다. 그래서 유튜브는 남한 사람들, 라디오는 북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려고 한다. 라디오는 무엇보다 북한 사람들이 우리 방송에 반응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과거에 방송으로 전화번호를 알려줬는데 그 번호로 서로 동지가 돼 북한의 꽤 많은 자료들과 동영상이 넘어오기도 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앞으로도 북한의 열악한 인권 상황을 알리는 일에 매진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