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원했지만 돌아오는 건 ‘도발’ 뿐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의 첫 남북정상회담에서 ‘6·15공동선언’이 발표 된 지 10년이 지났다. 


6·15선언은 남북한 정상이 한반도 긴장 완화 및 평화 통일 기반 조성을 위해 남북간 경제·사회·문화 교류를 확대하기로 합의한 선언이다. 그렇다면 6·15선언 발표 후 10년이 지난 2010년, 한반도에는 평화가 어느 정도로 안착되었을까?


영국의 한 기관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의 평화 지수는 전 세계 149개국 가운데 139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에 비해 8계단이나 하락한 수치라고 한다.


실제로 북한은 지금도 핵개발 문제로 국제사회와 갈등을 빚고 있고, 남한에 대한 군사적 도발을 지속하는 등 한반도를 넘어서 전 세계적인 위협 국가로 인식되고 있다.


6·15선언을 통한 북한에 대한 ‘유화적 접근’이 실패로 끝났음이 판명난 것이다. 일부에서는 6·15선언이 남북교류와 협력에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한반도 평화 증진에 기여한 점을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천안함 격침 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북한 정권의 본질은 변하지 않고 있다.



특히 야당 등 햇볕정책 옹호자들은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기 형성된 남북간 화해 무드가 이명박 정부의 대북 대결정책으로 인해 무너졌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북한이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기에도 서해교전, 연평해전 등 도발을 지속했고 두 차례 핵실험을 실시하는 등 한반도 안보를 위협해 왔다는 점에서 이러한 주장은 설득력을 잃는다.


그럼에도 6·15선언이 남북관계의 새로운 장을 마련하고, 남북교류의 양적인 증대를 가져온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당시 남북 양측은 경의선과 동해선 철도, 도로 연결을 위한 조치에 합의해 2003년에는 도로 통행을 2007년에는 경의선 철로 운행을 시작했다.



2000년에는 4억2천500만 달러에 불과했던 남북교역 규모가 2007년에는 4배가 넘는 17억 9천700만 달러로 커졌다.



남북왕래인원도 2000년 7천986명에서 2007년 15만9천214명으로 늘었다. 선박 운항은 2000년 2천74회에서 2007년 1만1천891회로 항공기 운항은 19회에서 153회로 늘어났다. 2000∼2007년 8년간 총 1만3천593명의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지기도 했다.



6·15선언이 낳은 가장 대표적인 남북경협 사례는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이다.



금강산 관광의 경우 누적 관광객이 195만 6천명으로 남북간 인적, 물적 교류에 기여했다. 강원도 지역의 관광 사업 발전과 지역 경제 발전에도 도움이 됐다는 평가다.


남한의 기술과 자본, 북한의 값싼 노동력을 결합한 개성공단도 생산액이 1천491만 달러(2005년)에서 2009년 2억5천647만 달러(2009)로 증가했을 정도로 최근까지도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금강산 관광은 2008년 관광객 총격 사건으로 중단된 상태고, 개성공단 사업도 북한의 일방적 조치와 군사적 위협 등으로 인해 불안정한 운영 상황을 보이고 있다.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은 애초 경협 활성화로 인한 남북관계 개선, 한반도 긴장 완화, 북한의 개혁개방 확대 등을 목표로 했지만 북한 주민에 대한 접근은 철저히 차단된 채 북한 정권의 체제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악용됐다는 지적이다.  


결국 6·15선언을 통해 남북간 교류가 양적으로는 증가했을지는 몰라도 이를 통해 한반도의 긴장이 완화되거나 남북관계가 발전하는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북한의 잇단 도발적 움직임은 한반도 평화를 염원하는 남측의 염원을 북한이 의도적으로 이용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또한 6·15선언 이후 대북정책과 관련한 남남갈등이 더욱 격화되며 남한 사회의 불안정성도 커졌다.


특히 6·15선언은 남한 내에서 소멸 직전에 처했던 친북단체들이 조직적인 활동을 재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줬다.



전국연합(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등 재야 단체들을 중심으로 이뤄졌던 친북·반미운동이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노동계와 시민운동 단체들을 흡수하며 대중화의 길을 걸게 된 것이다.  



사회 곳곳에 포진해있던 친북 성향의 단체들은 ‘6·15 공동선언 이행’을 내세워 세를 확대했다. 이들은 2001년부터 매년 6·15공동선언을 기념하는 크고 작은 남·북 공동행사를 개최하며 여타의 좌파 대중단체를 결집시켰다.


좌파 단체를 중심으로 한 시위 중심의 파행적 활동은 한국사회 내 건전한 토론 기능을 마비시키고, 북한에 대한 접근을 양 극단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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