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협정은 김정일에게 ‘독이 든 사과’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미국대통령이 지난 7일 시드니 정상회담에서 북핵불능화 및 폐기의 수순에 발맞춰 한반도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키로 합의했다고 한다.

한·미 정상은 정상회담에서 작년 11월 하노이 정상회담 때 부시 대통령이 제기한 한반도 종전선언의 의미를 재확인하면서 북핵불능화의 진전에 따라 한반도 평화체제문제를 협의키로 했다.

부시 대통령은 “나의 목적은 평화조약(peace treaty)을 통해 한국전쟁을 종결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그 때문에 평화조약이냐 평화협정(peace agreement)이냐의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본질적 차이는 없는 것으로 현실적, 실무적 편의 때문에 평화협정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1950년부터 53년까지 진행된 한국전쟁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의미의 전쟁은 끝났지만 휴전협정 혹은 정전협정만 있었고 종전협정이 없었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니었고 따라서 이 전쟁을 끝내는 협정을 맺자는 이야기는 지난 20~30년 동안 주로 북한이나 남한 재야 쪽에서 줄기차게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1973년 1월 27일에 파리에서 체결된 ‘베트남전쟁 종결과 평화회복’이라는 이름의 베트남평화협정(=파리평화협정) 바로 2년 뒤에 남베트남이 패망하고 전국이 공산화된 악몽이 잊히지 않았고 평화협정이 미군철수를 더욱 강력히 요구할 빌미를 제공해줄 것으로 보였기 때문에 우파뿐만 아니라 중도파까지도 평화협정에 대해서는 부정적 인식이 강했다.

평화협정 체결로 한반도 안보 근본은 안 변해

그러나 지난 20여 년 동안 세상이 크게 바뀌었다. 국제공산주의운동은 완전히 패망했고 공산주의의 정치적 기반은 북한에서나 남한에서나 크게 약화되었다. 북한은 남북관계에서 사상적, 정치적 우위를 완전히 상실하고 정치범수용소나 보위부와 같은 공포탄압기관들을 동원하여 남한이나 기타 외국으로부터의 사상적 침투를 막아내는 데에만 급급하고 있는 실정이다.

극심한 경제침체도 개방을 통해 크게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북한사회의 정치적 체질이 약화되어 있기 때문에 겁이 나서 제대로 개방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 와서 평화협정 체결과 주한미군 철수를 연계시켜 생각하는 사람은 좌파의 극히 일부 그룹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으며, 심지어 북한도 내부적으로는 평화협정과 주한미군 철수가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전협정을 종전협정으로 바꾸는 것이 실질적으로 큰 의미는 없다. 종전이 된다고 해서 안보 부담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며 북한이 反개방정책을 바꾸지 않는다면 남북교류를 발전시키기도 어렵다.

대북원조는 일시적으로 꽤 늘어날 수도 있지만 북한의 본질적 자세변화가 없을 경우 다시 줄어들 가능성도 높다. 그리고 한국군이나 미군이 북한군을 공격할 때 법적으로 조금 더 번거로워지긴 했지만 정전협정 상태에서도 충분한 명분 없이 공격하는 것은 국제외교상 부담이 매우 크고 중국의 존재에 의한 부담은 정전상태에서나 종전상태에서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본질적 변화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리고 북한이 한국군이나 미군을 공격하는데 이런 법적인 것에 구애받을 리가 없고 북한의 경우 국내법의 부담이나 국내정치의 부담이 없기 때문에 더욱 상관이 없다.

북한 체제 변화 속도 가속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한의 일반 주민, 군인, 군간부들은 평화협정에 따른 심리적 영향을 적지 않게 받을 것으로 본다. 일각에서는 우리의 안보의식이나 안보태세에 큰 부정적 영향이 있을 것으로 말하지만 남한은 정치적으로 매우 안정되어 있고 정치적 저력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부정적 영향이 크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북한의 경우 정치적으로 매우 불안해질 수 있는 요소가 많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각 종 형태의 주민교육을 통해 평화협정의 의미를 축소하고 폄하하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이미 북한은 여러 가지 가능성을 고려한 치밀한 통제를 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다.

평화협정이 체결되더라도 북한은 주민과 군인 속에서 남북대결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집요하게 노력하겠지만 그러한 반역사적 발악은 아주 일시적으로만 효과가 있을 뿐이다.

한반도 안보상황의 변화는 조금씩 무너져가고 있는 북한체제의 변화속도를 빠르게 할 뿐이다. 외부지원의 확대로 인한 경제적 안정도 안보상황의 변화로 인해 생길 변화보다는 훨씬 덜 중요하다.

평화협정이 30년 전에 남한에 독이 든 사과였다면 지금은 김정일에게 독이 든 사과이다. 김정일은 이것이 독이 든 사과라는 것을 알면서도 후세인과 같은 처지가 될 가능성을 줄여줄 것이라고 생각하며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기에게는 충분한 해독제와 우수한 의사들과 우수한 병원시스템이 있다고 생각하며.

그러나 자기가 가진 해독제의 대부분이 불량이고 의사들이 무능하고 부패해 있으며 병원시스템은 자기 눈앞에서만 제대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을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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