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체제’ 부상..북핵 협상틀 변화 주목

북핵 논의의 한복판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지난주 북한과 고위급 대화에 나섰던 스티븐 보즈워스 특사가 6자회담 재개시 비핵화와 더불어 평화체제를 논의 테이블에 올리겠다는 입장을 시사한 것이다.


보즈워스 특사는 16일(워싱턴 현지시간) 국무부 브리핑에서 “한반도 평화협정은 9.19 공동성명에 포함돼 있다”고 전제하고 “6자회담이 재개되면 비핵화, 새 평화체제.평화협정, 에너지.경제지원, 관계정상화, 동북아 안보질서 구축 등 요소들의 전반적인 배열(sequencing) 문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특히 “(북한과) 평화협정 협상에 들어가기 위한 조건들에 대해 논의했다”고 소개하고 “남북한, 미국, 중국 4개국이 평화협정 협상에 직접 관련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논의의 주체도 명확히 했다.


보즈워스 특사의 언급은 원칙적으로 9.19 공동성명의 내용을 재확인했다고 볼 수 있다. 성명은 ‘직접 관련된 당사국들은 적절한 (6자회담과는 다른) 별도포럼에서 한반도 평화체제에 관한 협상을 개최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그의 발언이 갖는 함의는 자못 크다. 그동안 비핵화 논의에 파묻혀 실질적 논의가 형성되지 못했던 평화체제 문제가 본격적인 이슈화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다.


특히 비핵화 논의의 진전에 앞서 평화체제가 거론되는 것 자체에 강한 거부감을 보이던 미국의 입장이 신축적으로 변화한 점은 북.미간에 일정한 ‘양해’가 형성됐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울러 북핵논의의 새틀짜기가 모색되는 시점이라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보즈워스 특사가 주요의제에 대해 ‘전반적인 배열’을 언급하고 나온 것은 결국 협상의 프레임워크(골격)를 재편하겠다는 뜻을 시사하는 것이어서 경우에 따라서는 평화체제가 핵심의제화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주목할 점은 평화체제 이슈가 앞으로 어디로 튈 지 모르는 불가측한 ‘판도라의 상자’와 같다는 점이다. 비핵화 이슈보다 훨씬 긴 연혁을 갖고 있는데다 논의구조나 이해관계가 훨씬 복잡한 이슈라는게 외교가의 지적이다.


지난 1997년 12월부터 1999년 8월까지 6차례에 걸쳐 남.북.미.중 사이에서 개최된 ‘한반도 평화체제에 관한 4자회담’이 무위에 그친 것은 이 같은 논의의 어려움을 잘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평화체제를 바라보는 북.미의 시각차가 너무 크다는게 외교가의 지적이다. 1974년 3월 북.미 평화협정 체결을 처음으로 제안했던 북한은 비핵화에 앞서 평화체제 구축이 중요하다는 논리를 펴며 ▲주한미군 철수 ▲북.미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한국은 정치적.군사적 신뢰조치를 우선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북.미 양국이 6자회담 재개시 평화체제를 논의하는데 ‘양해’를 하기는 했으나 당장 어떻게 논의를 끌고가느냐에서 부터 양측의 입장이 충돌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특히 비핵화 논의와의 선후관계를 둘러싸고 입장차가 표면화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평화협정을 비핵화에 앞서 최우선 의제로 끌어올리자는 입장이지만 미국은 비핵화 논의가 진전을 볼 때 평화협정을 논의한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스탠스에는 한국 정부의 강력한 입김이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평화체제 이슈는 북핵 논의를 빨아들이는 ‘블랙홀’과 같은 성격이어서 평화체제 논의가 우선시될 경우 북핵 해결이 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강한 우려를 내보이고 있다.


정부 소식통은 17일 “지금은 북핵 해결에 집중해야 할 때”라며 “평화체제는 비핵화가 일정하게 성과를 본 이후에, 그것도 6자회담과는 별도의 논의 틀에서 다뤄져야할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외교가 일각에서는 북.미간의 입장차가 크기는 하지만 6자회담이 재개될 경우 비핵화와 평화협정 논의가 일정하게 ‘병행’되는 협상 틀이 짜여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이 이번 북.미대화에서 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공식적으로 시인하고 나옴에 따라 이 문제가 비핵화 논의의 주요 의제로 부상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동안 미국은 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핵폐기의 범위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북한은 공식석상에서 그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아왔다.


그러나 북한은 지난 9월4일 유엔 안보리 의장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우라늄 농축시험이 성공적으로 진행돼 결속단계에 들어섰다”고 발표하면서 `우라늄 카드’를 공식화했다. 자연스럽게 우라늄 농축 문제가 현안이 된 것이다.


보즈워스 특사는 국무부 브리핑에서 “북한은 비핵화를 위한 6자회담이 재개되면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문제가 의제가 될 것이라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고 말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6자회담의 기본 형식은 유지되겠으나 의제와 협상의 틀에는 근본적으로 새판짜기가 불가피해졌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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