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올림픽’ 김정은 ‘홀로서기’ 걸림돌 되나?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강원도 평창이 선정된 가운데 향후 북한의 대응에 관심이 모아진다.


한국의 올림픽 개최 역사와 북한의 권력승계 역사는 묘한 관계를 갖고 있다. 김정일이 1980년 제6차 당대회에서 후계자로 공식 선출된지 8년 후에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렸다. 김정은의 경우 지난해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사실상 후계자로 공식 등장한 지 8년 후에 평창 동계올림픽이 열리게 된다. 한국에서 올림픽이 다시 열리는 것도 30년, 북한의 후계자 등장도 30년이라는 공통점이다.


시간적으로 보면 김정일은 후계자로 공식 추대된지 1년 만에 한국의 올림픽 개최에 직면했다. 이 때문에 1980년대 김정일이 평양 현대화 및 김일성 우상화물 건축 등에 심혈을 기울인 것도 서울올림픽을 의식한 선택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1982년 김일성 탄생 70주년을 맞아 주체사상탑, 개선문 등이 세워졌으며, 1987년에는 류경호텔 착공식이 열렸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는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1984년 LA 올림픽 당시 소련과 미국이 서로 보이콧 해 올림픽 정신을 훼손시켰다는 비판에 대한 반사효과로 동서진영 국가들이 모두 참여했다. 덕분에 역대 최고 규모의 대회를 치르게 된 동시에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난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세계 전역에 알릴 수 있었다.


이러한 서울올림픽의 성과를 의식한 북한은 1989년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평양축전)을 개최했다.


당시 북한은 평양축전을 위해 광복거리, 능라도 5·1경기장, 평양국제영화회관, 동평양대극장, 평양교예극장 등을 신축했다. 하지만  경제적 타격은 컸다. 올림픽은 막대한 중계료 수입과 광고수입, 참가선수들과 관광객들이 유발하는 경제 효과가 있지만, 평양축전은 그런 상업적인 효과는 전혀 거두지 못한 채 순수 지출만 천문학적인 규모로 이뤄졌다.


막대한 건축비용 뿐 아니라 평양축전 참가자의 항공료, 체류비, 관광비와 같은 곳에도 돈을 쏟아부었다. 주민들에 대한 선물도 이어졌다. 밑빠진 돈에 물붓기 식이었던 평축에서 김정일을 살려준 것은 ‘임수경 효과’였다. 결과적으로 임수경의 방북이 김정일과 평축을 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축으로 김정일이 얻는 대외적 효과는 미비했지만 북한 내부는 들끓었다. 주민들은 처음보는 ‘남조선 여대생’에 온통 마음을 빼앗겼다. 북한 내부에서 평축의 흥행은 서울올림픽의 흥행에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했다.


그러나 평축이 끝나고 불과 1~2년만에 지방 도시에서는 주민들의 배급량이 줄었다. 1995년에는 평양의 배급이 중단됐고, 전국 각지에서 아사자가 속출했다. 故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는 생전에 “이 시기에 노동당원 50만명이 굶어죽었다”는 증언을 남기기도 했다.


현재 김정은의 처지는 과거 김정일 보다 더 열악하다. 일단 2012년 강성대국 건설의 성과로 선전하려 했던 평양 10만호 주택 건설 사업이 차질을 빚고 있고, 농업생산도 부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후계자가 등장했어도 대외원조가 절실한 상황이 반전되지 않고 있다. 등장 직후부터 체면을 구기고 있는 셈이다.


김정일의 건강상태나 나이를 고려하면 평창올림픽 개막이 다가올 수록 김정은의 홀로서기가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남한이 우리보다 훨씬 잘산다’는 의식이 북한 주민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있는 마당에 권력의 정통성을 좌우할 ‘대남 체제경쟁’에 그가 어떤 대응책을 꺼내들지 관심거리다.


북한의 경제상황을 놓고 볼 때 1989년 평축과 같은 ‘맞대응 행사’도 사실상 불가능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렇다면 김정은에게 남은 카드는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과 같은 군사적 모험주의 밖에 없지 않냐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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