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 속 폭탄 선언’ 북한은 지금…

재북 임시정부 요인 후손들의 성묘를 위한 북한 방문은 평온한 얼굴을 가진 평양이 외부인들을 얼마나 놀라게 할 수 있는가를 다시 한번 보여줬다.

지난달 30일 중국 선양을 경유한 성묘단의 입북과정과 4일까지 진행된 다양한 사적지 방문에서 보인 농촌이나 평양 도심의 평온함은 핵 시험 강행이라는 ’폭탄 선언’ 이후에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방북 첫날 선양을 출발한 비행기가 북한과 중국 간 국경인 압록강을 넘고 있다는 기내방송이 나온 뒤 10여 분이 지나자 까마득히 내려다 보이는 들판엔 황금빛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평양에 가까워 지면서는 벌판도 넓어지고 바둑판처럼 가지런한 논이나 아직까지 경지정리를 하지 않은 다락 논들이 구불구불 서로 껴안은 형상으로 정겨움까지 풍기고 있었다.

지난 7월 ’수마’의 생채기가 행여 보일까 두 눈을 크게 떠보았지만 평양 부근 논들은 강을 따라 부드러운 곡선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었고, 비행기가 순안공항을 향해 지상으로 내려올 때 창문 가득히 들어온 논에서도 수해의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나중에 평양 시내를 둘러보며 북측 안내원에게 ’상공 목격담’을 전하자 “평양이나 평양 인근은 별다른 수해를 입지 않았다”면서 “잘 알려진 대로 평안남도 양덕·신양·맹산군 등이 심하게 피해를 입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전체 피해 규모가 얼마인지는 알 수 없지만 텔레비전을 통해 ’백년만에 최악의 장마’라고 언급한 것은 그 만큼 피해가 심각하다는 것을 말해준다”며 “인명 피해는 크지 않지만 산간지방을 중심으로 무너지고 깨진 데는 많다”고 말했다.

1948년 남북 정당·사회단체 대표들이 연석회의를 열었던 대동강 가운데 쑥섬에 있는 사적들을 둘러보던 중 일부 잔디밭에는 홍수 때 뒤덮인 진흙이 말라 거북등처럼 갈라져 있어 대동강의 수위가 상당히 높아졌던 것을 짐작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평양에서 평안북도 향산군에 있는 묘향산구간이나 평양에서 남포시 서해갑문구간 등 평양을 벗어난 농촌지역에서는 그야말로 남한의 1970년대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햇볕에 그을린데다 변변치 못한 옷을 걸치고 농사일에 나서는 농부들의 남루한 행색은 차치하더라도 소가 끄는 달구지나 소를 이용한 쟁기질하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한창 가을걷이가 이뤄지고 있는 논에는 남한에서 널리 보급된 콤바인이나 트랙터와 같은 농기계는 가뭄에 콩 나듯 보였고 대부분 논에서 집단적으로 낫을 이용해 벼베기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들어왔다.

완만하게 경사진 산은 대부분 밭으로 일궈 식량난 해소에 나서다 보니 밭작물들을 이미 거둬들인 산등성이는 나무가 심어진 부분이 너무 좁아 마치 산이 누더기 옷을 입은 형상을 하고 있었다.

평양에서 묘향산을 가는 도로변 일부 구릉산 밑에 자리한 농촌마을에는 곳곳에 새로 지은 살림집들이 무리를 지어 너른 들판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어 넉넉함을 느끼게 해줬으나 낡고 벽면 도색이 제대로 되지 않은 주택들도 많았다.

버스를 타고 멀찌감치 바라 보는 이방인에게도 농촌 생활의 고달픔이 그대로 전해진 것과는 달리 평양 도심에서는 한적한 가운데 사회주의국가 나름의 활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시내 곳곳에 자리한 주요 문화공간인 인민대학습당, 김일성광장 등에서는 내년 4월에 열릴 예정인 아리랑 공연이나 10월10일 노동당 창건기념일 행사준비를 위해 집체 연습이 한창이었다.

매스게임 등 공연 연습을 위해 모인 청소년들은 자기들끼리 손과 발 등 몸 동작을 연습하다가도 쉬는 틈을 이용해 서로 장난을 치는 모습은 남한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청춘의 발랄함 그 자체였다.

지난 1일 일요일을 보내는 평양시민들의 표정에서는 미국이 규정한 ’악의 축’ 국가의 수도라는 느낌을 찾기가 어려웠다.

시내 한복판 평양고려호텔 맞은 편 약산식당에는 휴일을 맞아 외식을 즐기려는 가족단위 나들이객들이 수십 명씩 몰렸고, 길거리 곳곳에 설치된 간이음식 판매점에도 삼삼오오 짝을 지어 음식을 사먹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또한 시내 부근 대동강변이나 인공 저수지 등에는 휴일 ’강태공’들이 낚시를 즐기고 있었고 대동강 옥류교 인근에서는 뱃놀이를 하는 시민들도 줄을 이었다.

그러나 평양시내는 물론 농촌지역에도 내걸려 있는 ’공동 구호의 사상을 철저히 관철하자’, ’선군 혁명 강성 대국’, ’결사 옹위’,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 등 구호들은 이방인 눈에는 거슬려도 주민 생활에는 뗄 수 없는 좌우명이 돼 있었다.

주요 공공건물 외벽이나 내부에 내걸려 있는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진과 만수대 언덕의 김 주석 동상 등은 관광지나 사적지에서 안내원들이 외국인 앞에서 조차 서슴없이 ’경애하는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을 부르도록 하는 ’효험’을 발휘하고 있었다.

하지만 외부인의 눈에는 그런 효험의 한계들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었다.

북한의 핵 시험 강행 발표가 난 뒤 남북 간 민간 교류업무를 담당하는 민화협 관계자들의 얼굴에는 그늘이 드리워지고 있었다.

핵 시험이 정치·군사적 사안이긴 하지만 민간교류 분야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충분히 간파하고 ’핵시험=남북관계 악화’라는 등식을 쉽게 떠올리는 듯했다.

교양과 학습을 통해 다양한 현안 문제에 대해 주관이 뚜렷한 북한 사람들이 미사일 발사나 핵 시험 등에 대해 겉으론 말하지 않았지만 ’결의’와 ’우려’가 교차하는 표정까지 감춰지지는 않는 듯 보였다.

주민들의 살림집 조명은 밤이 깊어질 수록 희미해지는 반면 김 주석의 시신이 안치돼 있는 금수산기념궁전의 네온사인 불빛이나 주체사상탑 횃불의 광채는 더욱 빛을 발하는 상황이 언제까지 이어질 지에 대해 외부에서 궁금증이 커지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듯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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