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5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을 알리는 축제의 날이다. 하지만, 북한만은 예외다.
해마다, 북한은 예수가 아닌 김정일 생모인 김정숙의 생일(24일, 101주년)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올해도 그 축하 열기는 대단했다. 24일에는 김정숙이 태어난 함경북도 회령시를 비롯해 대표적인 기념관인 신파혁명사적지 등 그녀의 동상이 세워진 지방당, 정권기관, 근로단체, 공장, 기업소, 농장, 학교, 조선인민군 부대 등 전역에서 그녀의 투쟁업적을 기념하는 다채로운 정치문화사업이 진행되었다. 뿐만아니라 스위스, 파키스탄, 나이지리라, 인도, 영국, 독일, 방글라데시 등 각국의 백두산위인국제칭송위원회 및 주체사상연구소에서도 다양한 정치문화행사가 진행되었다고 한다.
25일자 노동신문은 이와 관련된 기사들을 쏟아냈다. ‘대성산혁명렬사릉에 모신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의 동상에 화한 진정’, ‘각지에 모신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의 동상에 꽃바구니 진정’,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의 동상에 재중항일혁명렬사가족이 화한을 보내여왔다’, ‘백두산의 녀장군, 조선의 위대한 어머니’, ‘끝없이 흐르는 그리움의 대하’, ‘각지에서 청년학생들의 경축무도회 진행’, ‘전국녀맹일군들과 녀맹원들 회령고향집을 방문’ 등이다. 이들 기사들은 그녀의 일대기를 생생하게 소개하며 ‘항일 여성영웅’, ‘빨치산 여장군’, ‘백두산 여장군’, ‘조선의 위대한 어머니’로 앞다퉈 칭송하고 있다. ‘인류 마음 속에 영생하시는 걸출한 혁명가’와 ‘백두산의 녀장군, 조선의 위대한 어머니’ 기사에서는 김정숙을 ‘신묘한 유격전법’, ‘백발백중(신비한)의 사격술’의 소유자로 묘사했다. 일찍이 1991년에 출간된 <백두광명성 전설집(김정일 전설집> ‘백학봉에 내린 어린장수’에서는 김정숙이 어린 김정일에게 솔방울로 폭탄이 되게 하는 도술을 가리켜주고 구름을 타고 다닌다고 적시한 바 있다. 이처럼 북한에서의 김정숙 우상화도 영웅화를 훨씬 뛰어넘고 있다.
25일자, 노동신문의 김정숙 관련 모든 기사들의 공통점은 그녀를 ‘수령결사옹위의 전사(최고 화신)’로 내세우는 것이다. 여기서의 수령은 김일성을 가리킨다. 특이점은 몇 개의 기사에서는 김정숙의 ‘수령결사옹위 정신’을 김정은에까지 연결시킨다. 동시에 그 정신을 경제건설대진군의 선봉장으로 치환시켰다. 다시 말하면, 김정숙의 김일성에 대한 수령결사옹위 정신을 본받아 현재, 김정은에게 몸 바쳐 충성을 다하며 그 실천으로 경제건설에 앞장서는 청년영웅, 여성영웅이 되자는 결의들을 했다는 기사들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청년학생들은 위대한 태양의 해발이 되시여 수령결사옹위의 빛나는 전통을 마련하신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의 충정의 세계를 본받아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 동지를 결사보위하는 천겹만겹의 성새, 방패가 될 의지를 가다듬으며 춤률동을 이어나갔다.”, “<<김정은 장군 목숨으로 사수하리라>>의 노래로 끝난 무도회들은 절세위인들의 혁명생애와 불멸의 업적을 천추만대에 길이 빛내이며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의 두리에 굳게 뭉쳐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전원회의 결정관철을 위한 경제건설대진군의 앞장에서 조선청년의 기상과 위용을 떨쳐갈 억척불변의 신념과 의지를 힘있게 과시하였다.”(각지에서 청년학생들의 경축무도회 진행), “녀맹일군들과 녀맹원들은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의 투철한 수령결사옹위정신을 따라배워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를 충정다해 받들며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목표수행을 위한 증산돌격운동에서 조선녀성의 기개를 떨쳐갈 결의를 가다듬었다.”(전국녀맹일군들과 녀맹원들 회령고향집을 방문).
북한은 지난 4월 20일 당중앙위 제7기 제3차전원회의를 기점으로 <핵-경제 병진노선>에서 <경제건설총력집중> 노선으로 바꾸면서 현재까지 경제건설 및 발전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경제건설대진군’, ‘증산돌격운동’이라는 구호들을 내세우며 최대치의 노동력을 동원하고 있다.
12월의 매서운 추위는 아랑곳없이 북한 인민들은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이라는 구호 아래 건설현장, 노동현장에서 노력영웅, 근로영웅 경쟁에 치열하게 내몰리고 있다. 김정은 정권에 있어 김정숙 생일은 인민들의 노동력을 더 쥐어 짤 수 있는 호기이다. 앞서 언급한 바 있지만, 김정숙의 혁명정신을 본받아 경제건설대진군의 선봉장이 되자는 구호들이 북한 전역을 들끓고 있는 12월 말이다.
28일도 노동신문에는 ‘백두전역에 휘몰아치는 총공격전의 불길’(건설), ‘쌀로써 당을 받들자’(농업),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으로 생산에서 혁신을 일으키고 있다.’(공업), ‘과학기술의 위력으로 증산의 돌파구를’(광업), ‘인민사랑의 숭고한 뜻 전하는 일터’(경공업), ‘유훈관철전에로 이끄시는 나날에’(수산업), ‘한점의 불꽃을 온 나라에’(식품업), ‘물길굴건설속도를 높인 비결’(군부대) 등 수많은 기사를 내보내며 전방위적으로 노력동원하기에 여념이 없다.
동시에 북한은 노력동원의 ‘견인 추’ 역할을 하는 김씨 3대 부자에 대한 우상화 작업 속도도 절대 늦추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달 25일, 노동신문은 ‘절세위인들의 위대성을 전하는 도서들 출판’이라는 제목으로 2018년 한해에만 김씨 3부자의 업적을 기리는 위대성 도서들이 120여 종이나 출판되었다고 소개했다. 기사는 김일성-김정일뿐만 아니라 김정은 위대성 도서들에 대한 소개도 자세히 전했다. 조선로동당출판사에서는 김정은의 천출위인상을 수록한 회상실기집(<인민들속에서> 107권)을 내놓았고 금성청년출판사에서는 김정은의 위인적 풍모를 보여주는 <김일성-김정일주의청년운동사>(1권-6권)를 출판했다고 한다. 근로단체출판사에서는 김정은의 영도의 현명성을 서술한 <근로단체사업의 새로운 전성기를 펼쳐주시며>를, 문학예술출판사에서는 김일성의 <불멸의 력사>, 김정일의 <불멸의 향도>처럼 김정은의 인민에 대한 숭고한 사랑을 감명깊게 보여주는 장편소설(문예도서)들을 출판하였다고 한다. 그밖에 사회과학출판사, 공업출판사, 농업출판사 및 여러 출판사들에서도 <인류의 증언 위인 김정은>을 비롯한 위대성 도서들이 출간되었다고 소개했다. 이처럼, 김정은의 우상화 작업은 점점 더 그 강도를 높이고 있다.
그런데, 김정은 우상화 방법에 있어서 그 조부(김일성-김정일)와는 다른 독특한 특성이 있다. 특성이라기보다 큰 약점이다. 바로, 김정은의 출생에 관한 내용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김일성, 김정일만 해도 그 우상화의 출발점이 ‘신비로운 탄생’에서부터 비롯된다. 김일성은 <백두산전설집_김일성 전설집>(1987년)에서 백두산에 별이 떠올랐는데, 이는 장차 조선을 구할 성인이 내렸다는 뜻인데 그 별이 바로 김일성장군 별이라는 내용으로 그의 탄생을 신격화했다. 김정일에 대해서는 <백두광명성절 전설집>(1991년)에서 무려 여섯 번이나 김정일 탄생관련 전설을 수록하고 있다. 그 중, ‘하늘에서 내려온 열여섯 신선’에서는 열여섯 신선이 김정일이 태어난 백두산 귀틀집을 향해 큰절을 올렸고, 그들을 옹위하던 장수들은 칼을 붓으로 변하게 하여 주변나무마다 “조선아 백두광명성 탄생을 알리노라”라고 글을 썼다는 신화적 내용이 담겨있다. 뿐만 아니라, ‘3대 위인이 내린 성산’에서는 김일성, 김정숙, 김정일 탄생설화 내용이 나오면서 이들 셋을 3대 성인으로 칭하고 있다. 물론, 현재는 김정숙이 빠지고 김정은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아직까지 김정은 탄생을 신격화시키는 작업은 진행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위에 소개된 수많은 김정은 위대성 도서들도 김정은 탄생에 대해서는 전혀 적시하지 않았을 것이다.
작년(2017.11)에 출간된 <김정은의 고사>(외문출판사)에서도 김정은 출생에 관한 내용은 쏙 빠졌다. 김정은의 20살 때 행적을 수록한 2004년이 가장 빠른 시기이다. 2014년에 나온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혁명활동 교수참고서>에서도 김정은 출생 관련 내용은 없다. 단지, 제1장에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 지니신 비범한 천품’에서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는 어린시절부터 비범한 예지와 예리한 통찰력을 지니고계시였다”라는 주제로 김정은이 3살 때부터 총을 쏜 것 과 자동차를 운전했다는 내용이 있다.
왜, 북한은 우상화 작업의 첫 단추를 꾀는 ‘신비로운 탄생’으로 김정은의 탄생설을 가공해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그의 생모 고용희의 존재 때문이다. 그녀가 재일교포출신이라는 사실이 김정은에게는 상당히 큰 아킬레스건이다(김정일 생일, 왜 아직도 공휴일도 아닌가/2017.12.29. 칼럼 참고). 김정일처럼 대놓고 그의 생모 김정숙을 내세워 신비로운 출생설로 자신을 가공하기에는 김정은에게는 큰 모험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김정은이 그의 생모 고용희 존재를 꽁꽁 숨기는 것 같지는 않다. 비록, 이름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고용희와 관련된 어린시절 이야기를 풀어내기 때문이다. 바로 위에서 소개한 작품에서 “경애하는 원수님(김정은)께서는 어린 시절부터 위대한 장군님(김정일)께서 매일 밤을 지새우며 일하시는 것을 수없이 목격하시였다…위대한 장군님께서 밤을 지새우실 때마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장군님께 이제는 새날이 밝아오는데 좀 쉬실 것을 간절하게 말씀드리군 하시였다. 어머님(고용희)께서도 위대한 장군님과 함께 늘 밤을 새우시었는데 장군님께 조금이라도 휴식하실 것을 절절하게 말씀드리시였다.” 라는 내용이 나온다. 여기서 김정은의 생모 고용희가 언급된다. 또 현지지도 간 김정일이 돌아오지 않아 김정은이 밤새도록 고용희와 기다렸다는 내용도 나온다. 떳떳하게 고용희의 이름을 밝히지는 않고 있지만 그녀 존재 자체를 없애지는 않았다. 김정일의 어린 시절 이야기에서 유독 김정숙 관련된 내용이 많이 나오는데 반해 김정은 어린 시절 이야기에서 그의 생모 고용희 관련 내용을 완전히 빼기는 큰 부담으로 작용된 듯 하다.
현재 북한에서 ‘조선의 위대한 어머니’는 여전히 김정숙에 한정되어 있다. 김정은 집권초기인 2012년에 당 간부들의 대상으로 고용희를 ‘평양의 어머니’로 소개한 바 있지만 그 이후 고용희에 대해서는 잠잠하다. 이 같은 여파로 김정은 우상화의 정점인 그의 생일(1.8)을 국가명절로 지정하는 것도 현실화되지 않는 것으로 짐작되기도 한다. 하지만, 위의 출판물, 김정은혁명활동 교수참고서(2014년)를 볼 때는 이미 내부적으로는 그의 생일을 국가명절로 정한 것 같기도 하다. “주체95년 1월 8일 이었다. 1월 8일은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탄생하신 민족최대의 명절이다.” 라는 문구가 나온다. 책을 집필한 작가의 견해로만 치부하기는 성급하다. 왜냐하면, 김정은의 지시 하에 이 책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2019년 내년 북한 달력에도 여전히 1월 8일은 공휴일로 표기되어 있지 않았다.
북한의 김정은 우상화 작업을 면밀히 살피면 현, 김정은 정권의 취약점이 무엇인지 파악이 된다. 그리고 왜, 김정은 정권이 과거 북핵위기국면을 조성했고, 현재는 평화공세와 대결구도라는 양면전략을 펼치고 있는지, 또 북한주민들을 노동현장에 쉼 없이 몰아넣고 있는지 알 것 같다. 계속해서 북한주민들에게 긴장감을 불어넣기 위함이다. 위기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것만이 차질을 빚고 있는 김정은 우상화를 만회시키는 유일한 대안이기 때문이리라. 과연 내년에도 이 버팀목으로만 김정은 정권이 지탱할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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