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월드컵축구, 南 생중계, 北 녹화중계

북한 축구대표팀이 11일 사우디아라비아를 평양으로 불러들여 26년 2개월여 만에 제압하는 경기를 서울에선 TV를 통해 실시간으로 지켜볼 수 있었지만 정작 북한 주민들은 `시간차’ 기쁨을 누릴 수밖에 없었다.

북한이 사우디를 1대 0으로 제압한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4차전 경기를 남쪽 축구팬들은 MBC TV의 실황중계를 통해 지켜봤지만 북쪽 주민들은 김일성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람객을 제외하곤 녹화중계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조선중앙TV가 오전에 내보낸 `오늘의 방송순서’에는 경기 중계가 빠져 있었다. 그러나 중앙TV는 오후 8시45분부터 원래 예정됐던 프로그램을 취소하고 승리를 거둔 사우디전 전.후반 전 경기를 긴급히 편성해 내보냈다.

중계를 맡은 북한의 캐스터는 “오늘 이 경기가 아주 중요하고 책임적인 경기라고 말할 수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북한은 그동안 축구경기 등을 생중계한 적이 없다. 이 점에서 작년 2월 뉴욕필 교향악단의 평양공연 생중계는 대단히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북한 대표팀의 평양 경기를 서울에서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던 것은 국제축구연맹(FIFA) 산하 아시아축구연맹(AFC)의 규정 때문.

연맹은 가맹국가들에 대해 해당국에서 벌어지는 국제경기를 실시간으로 중계토록 의무화하고 있어 북한도 조선중앙TV를 통해 외부로 실시간 중계한 것이다.

중앙TV가 위성을 통해 국제신호로 쏘아주면 AFC와 계약을 맺은 방송국에서 이 경기를 방송할 수 있다.

11일 밤 한국 대표팀의 이란전을 중계할 계획인 MBC의 한 관계자는 이번 북한-사우디전 중계에 대해 “AFC의 중계권 대행을 맡은 IB스포츠사와 계약을 맺고 한국의 축구팬들에게 북한 대표팀의 경기를 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선중앙TV의 중계 화면 구성은 남한 TV방송들의 중계 화면에 비해 매우 단조로웠다.

북한 화면은 관중들의 환호와 안타까움 등 표정을 생생하게 보여줌으로써 시청자의 현장감을 더할 수 있는 근거리 장면을 단 한 차례도 보여주지 않았고, 경기장에서 뛰는 선수들의 움직임도 대부분 먼 거리에서 잡았다.

북한의 축구팬들은 대표팀 선수들의 몸동작 하나하나에 환호와 탄성을, 사우디 선수들의 움직임엔 야유를 보내면서 경기를 즐겼지만, 화면에 멀리 비친 관중석은 마치 제복차림의 군인들이 열과 행을 맞춰 부동자세로 앉아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무채색으로 일관했다.

김일성경기장에 그나마 색깔을 입힌 것은 녹색의 인조잔디 외에 삼성과 현대의 영문표기인 `SAMSUNG’, `HYUNDAI’ 광고판과 `KIRIN’, `TOYOTA’ 등 일본기업과 `ING’나 `EPSON’, 나이키 등 유명 다국적 기업의 광고판.

이들 기업은 국가대표간 경기인 A매치의 광고판 후원계약을 AFC와 맺고 있어 평양에서 열린 북한의 월드컵 예선경기에도 어김없이 등장, 북한 TV도 이들 간판을 피해 중계할 수는 없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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