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영예(상이)군인 김씨가 국수를 파는 사연

▲ 황해북도 송림의 의족공장

평양에 사는 ‘김 씨’는 군대에서 사고로 발 하나를 잃었다. 제대 이후, 그는 당국이 지급하는 배급과 연금으로 생활하는 1류 영예군인이 되었다. 북한의 경제사정이 악화되기 전까지 김씨와 가족들은 배급과 연금만으로 생활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경제사정이 나빠진 이후에는 심각한 생활난에 빠졌다.

요즘, 김 씨는 남은 한쪽 발을 이끌고 매일 아침 일찍 집을 나선다. 영예군인들에게 국정가격 230원에 국수를 파는 ‘선교각’에서 국수를 사야하기 때문이다. 1류 영예군인인 김 씨는 한 번에 국수 두 그릇씩을 살 수 있다.

횟수에 제한은 없어 마음만 먹으면 여러 그릇을 살 수 있다. 그러나 선교각에서 국수를 사다 되팔아 생활하는 영예군인이 늘어나면서 김 씨가 하루 종일 줄을 서서 살 수 있는 국수는 고작 네 그릇뿐이다. 그래도 230원에 산 국수 한 그릇을 1,000원에 되팔 수 있으니, 네 그릇을 사서 되팔면 3천원 남짓한 돈을 손에 쥘 수 있다.

매달 국가로부터 김 씨가 받는 영예군인 연금이 3천원이다. 하루에 백원꼴이다. 선교각 국수 한 그릇값도 안 된다. 네 가족 한 달 생활비가 보통 10만원이니, 한 달을 살기에 턱없이 적다. 국수를 되팔아 한 달 연금을 하루에 벌 수 있다면, 고생스러워도 어쩔 수 없다. 목발을 짚고 하루 종일 줄을 서야 하는 것이다.

북한은 그 동안 영예군인에 대한 지원에 각별히 신경써왔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만경대 영예군인 만년필 공장, 사리원 영예군인 재봉사공장, 함흥영예군인수지일용품공장 등을 세우고 영예군인의 취업을 보장해왔고, 노동능력을 상실한 영예군인에게는 배급과 연금을 지급해왔다. 또 영예군인들에 대한 지원을 ‘공민의 의무’로 선전하며 주민들의 지원을 촉구 해왔다.

그러나 최근, 북한 소식통에 따르면, 선교각에 오는 손님 중 약 절반은 이렇게 국수를 되팔아 생활하는 영예군인들이라고 한다. 영예군인들도 배급과 연금만으로는 더 이상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식량난 이후, 북한에는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당국의 배급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30% 정도로 줄었고, 그들마저도 당국이 제공하는 배급과 월급, 연금만으로는 생존이 불가능한 상황에 놓였다. 한 달에 10만원은 있어야 생활이 가능할 텐데, 당국이 그들에게 줄 수 있는 월급과 연금은 불과 몇천원에 불과하다. 당국의 각별한 배려와 지원을 받아 왔던 영예군인들마저 무엇이든 팔아야 생존할 수 있는 사회가 된 것이다.

국수 네 그릇을 사기 위해 하루 종일 목발을 짚고 서 있는 영예군인 김 씨의 모습은, 북한 주민의 생존을 좌우하던 북한의 경제시스템이 식량난을 기점으로 사실상 무너졌고, 그나마 남아 있는 통제력마저 급격하게 약화되고 있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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