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시민혁명’의 성공조건이 궁금하다

2월 16일은 김정일 생일이다. 북한의 국가명절이다. 개인의 생일을 국가명절로 지내는 나라가 아직 지구상에 존재한다.


거짓말도 오래 묵으면 참말로 변태(變態)를 하는 것인가? 김정일의 생일을 명절로 해놓은지 30년이 넘어가니까, 객관적으로 보면 도대체 말도 안되는 짓거리인데, 한국사회도 그냥 넘어간다. 신문에 ‘김정일, 우상화 생일 놀음 제발 그만해라’ 식의 사설도 보이지 않는다. 언론도 ‘세상이 다 알고 있는 거 뭐 또 새삼스럽게…’ 하면서 넘어가는 것이다.


요즘도 피그미족이나 부시맨 같은 종족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프리카 어느 추장의 생일도 아니고, 21세기 대명천지에 개인의 생일을 국가명절로 쇠면서, “보아라! 짐(朕)의 귀 빠진 날에 무릇 태양은 더욱 빛나고, 삼라만상 억조창생 저마다 흥겨워 노래하노니…” 식의 초등학교 학예회 같은 코메디가, G20 정상회의를 주최한 대한민국, G2 국가가 된 중국과 바로 이웃한, 이른바 ‘혁명의 수도’ 평양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것이 21세기 초대형 수수께끼가 아니고 무엇인가?


그래서 2월 16일, 4월 15일(김일성 생일)이 되면, 거대한 부조리 앞에 선 막막한 느낌이 된다. 정신의학자들은 이런 류의 심리장애를 무슨 ‘포비아(phobia)’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위대하신 김정일 추장님’은 도대체 무엇을 위한 ‘혁명’을 해왔나? 허구헌 날 ‘혁명’ 한답시고 인민들 굶겨죽이고, 핵무기 휘두르며 이웃나라 못살게 굴더니, 요즘은 빈 깡통 들고 “미 제국주의 모니터링도 달게 받겠으니 그저 식량만 달라”고 한다. 자기 나라 인민도 못 먹이면서 무슨 ‘혁명’을 하자는 건가? 아니, 그보다 김정일은 왜 살아가고 있을까? 누군가 김정일에게 한번 물어보면 좋겠다. “당신, 사는 목적이 뭐요?”라고.


21세기 지구촌의 초대형 수수께끼가 ‘혁명할 것이 없는 혁명의 수도 평양이 존재하는 이유’다.


김정일이 아버지 생일을 갖고 장난친 것은 1971년부터라고 한다. 김정일이 삼촌 김영주와 제2인자 권력투쟁을 벌여 승리를 거의 눈앞에 두고 있을 무렵이다. 김정일은 아버지 우상화를 위해 먼저 김일성 생일을 명절로 지정했다. 김일성 우상화의 시작이 생일잔치였다. 이어서 김일성 초상화를 가정에 걸어놓도록 했다.


1972년에는 김일성 환갑잔치를 성대히 벌였다. 자신이 후계자로 확정된 1974년 그해 4월 14일, 그러니까 김일성 생일 하루 전날 김일성 신격화 10대 계명인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이른바 ‘4월 문헌’)을 발표했고, 그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다음날인 4월 15일로 연결시켰다. 사실, 이날부터 김일성은 인간의 지위에서 ‘신의 지위’로 올랐다.


김정일의 이런 류의 프로파간다는 정말 대단하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초대형 프로파간다를 진행했다. 아버지를 위해 5천명 대합창, 2만명 매스 게임, 5대 혁명가극 같은 것으로 김일성의 뇌를 녹여놓았다. 북한 땅 전역에 8만7천개의 각종 우상화물을 세웠다. 나중에 김일성은 “정일이가 내 아들이어서가 아니라, 나는 사상적으로 최고 정점에 서있는 기쁨을 느꼈다”고 말했다.


아주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대통령 후보 선거 기간 중 잠실체육관에서 3천명 정도가 일제히 “000 대통령!!”을 30분 정도 외치면, 함성을 듣는 후보는 거의 ‘맛이 간다’고 한다. 그래서 죽어도 후보를 사퇴 안한 정치인들도 있었다. 하지만 체육관 함성 정도야 김정일이 김일성에게 해준 초대형 프로파간다에 비하면 정말 어린애 장난 수준이다.


김정일은 아버지의 뇌를 장악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김일성은 스스로 ‘위대한 인물’이라는 착각에 빠져 나중에는 김정일에게 끌려다녔다. 그렇게 해서 김정일은 권력을 쟁취했고, 그 다음 2400만 주민들의 뇌를 장악하여 김일성-김정일 외에 다른 생각을 일체 하지 못하도록 완전히 폐쇄와 고립으로 조지 오웰 식의 ‘북한판 동물농장’을 만든 것이다. 그 기간이 길게는 40년이 되었다. 그리고 1980년부터 2월 16일 자신의 생일을 명절로 만들기 시작했다. 벌써 30년이 지났다.


김정일은 아버지를 우상화하면서 북한 주민들의 의식의 프레임을 ‘전 인민의 김일성화(化)’로 새로 조립한 것이다. 이 의식화를 수십년 동안 똑같이 반복하면 주민들은 이 의식의 프레임에서 빠져 나오기 어렵다.


주민들의 의식 작용이 바뀌게 된 계기는 1994-1998년 대아사 사건으로 300만 명이 굶어죽고 난 다음이었다. 이후 인민들은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 조금씩 장마당을 개척했고, 배급제 붕괴에 떠밀린 2002년 7.1 조치로 시장이 더욱 확대된 것이다. 그리고 2009년 말의 화폐개혁 실패로 시장세력은 결정적으로 ‘루비콘 강’을 건너게 되었다.


북한주민들이 국가의 주인, 정권의 주인이 되는 길은 무엇인가? 그것은 시장화에 이어 북한주민들이 스스로 민주화에 성공하는 것이다.


최근 필자가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가까운 장래에 이집트 민주화 같은 사건이 북한에도 일어나겠느냐는 것이었다. 


이집트 민주주의 시민혁명은 무바라크 퇴진으로 성공했다. 이집트 국민들은 스스로 새로운 역사를 선택했다. 동시에 이집트 민주주의도 시험대에 올랐다. 앞으로 세계 시민들이 이집트 민주화 과정을 지켜볼 것이다.


이집트 민주주의가 성공하려면 모든 정치집단들이 먼저 절차민주주의를 존중해야 한다. 제도 민주주의가 정착되고 사회 모든 분야에서  민주주의 질적 발전을 추진하면서 서로가 인내하며 지혜를 모아야 한다.


민주주의의 발전 과정은 대체로 두 가지 방향성을 갖는다. 하나는 독재에서 민주화로 진행된다. 사회 모든 분야에서 권위주의와 특혜의 철폐가 때로는 급속히, 때로는 완만히 진행된다. 나머지 한 갈래는 질서에서 무질서로 진행된다. 이 두 가지 방향성이 마치 DNA 사슬처럼 나선형으로 서로 얽히면서 제도 민주화와 질적 민주화로 사회가 진보하게 된다.


민주화 과정에서 처음 나선형의 아래 부분은 진폭이 넓다. 시행착오가 많기 때문이다. 위부분으로 갈수록 진폭이 좁아지면서 이성(理性)주의, 합리주의에 기초한 사회적 조정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것이 사회진보의 일반적 과정이다.


한국사회는 이성주의, 합리주의의 사회적 조정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북한문제를 매개로 하여 사회 갈등이 더욱 심각해졌다. 여기에 벌써 정치 포퓰리즘과 민간분야의 군중주의(mobism)가 전면에 떠올랐다. 민주주의가 성숙 단계로 진보하기도 전에 벌써 난숙 단계로 빠지려 한다.


이집트 민주주의가 질서있게 진보하느냐, 무질서 깽판주의로 빠지느냐의 문제는 전적으로 이집트 정치인들의 수준, 언론의 수준, 국민들의 수준에 달려 있다. 정치 언론 국민이 이집트 민주주의의 운명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정치인과 언론의 책임이 막중하다.


이집트 민주주의가 성공해야 중동의 민주화가 성공할 수 있다. 그 다음은 아시아 민주주의와 아프리카, 남미가 남는다. 중동 민주화는 그래서 세계 민주화로 가는 중요한 길목에 위치해 있다. 따라서 유럽. 미국 등은 석유수송이 문제가 아니라 진심으로 이집트 민주화를 도와주어야 한다.


북한은 조선조 멸망, 일제 식민지를 거쳐 계급독재에 이은 수령독재로 100년 동안 민주주의를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다. 북한주민들에게 ‘민주주의’란 용어는 관념에 머물러 있다. 수령제, 계급성분, 연좌제, 각종 수용소, 10대원칙이 폐기되어야 하고, 수령에게 주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선거로서 2400만 주민이 주권을 찾아야 한다. 이것이 북한 민주화의 관건이다. 그리고 북한 민주화는 남북이 평화통일로 가는 첫번째 관문이다.


현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북한 민주화를 위한 인프라이다. 그것은 북한의 정보 자유화이다. 정보 자유화는 3가지 단계가 있다.


첫째, 북한 주민들에게 한국 등 외부세계의 정보를 공급하는 것이다.


둘째, 북한 내부 정보가 지속적으로 외부세계에 알려지는 것이다.


셋째, 북한 내부에서 주민들 사이에 정보가 공유되는 것이다.


첫째, 둘째는 북한인권 단체들의 자기희생으로 이제 초기단계를 넘어서고 있다. 중요한 것은 셋째 단계이다.


북한 주민들 사이의 정보 공유가 매우 중요하다. 조선중앙방송은 일방적으로 내려먹이는 매체다. 조선중앙방송은 북한 내부의 뉴스를 알려주지 않는다. 함경북도에서 일어난 열차 사고, 시장의 변화를 황해도에서 알기 어렵다. 따라서 주민들간의 횡적 정보공유가 민주화 운동을 만들어내는 인프라이다. 쉽게 말해 소셜 네트워킹이다.


이 네트워킹을 북한 주민들 스스로 하기 어렵다. 내부에 민간방송을 세울 수도 없고, 민주신문을 발행할 수도 없다. 그래서 이 역할을 한국이 해주어야 한다. 북한 내부에서 일어나는 뉴스들을 한국의 대북 민간방송이 대행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민간 대북방송은 회령에서 일어나는 일을 평양주민에게 알리고, 사리원 주민이 청진 소식을 들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지금 단계에서 북한의 민주화 전망을 하기는 쉽지 않다. 북한의 일반 주민들은  1789년 프랑스 혁명 후 근대 자연법 사상, 예컨대 인간의 자연적 권리(자유, 소유권, 억압에의 저항 등)조차 알지 못한다.


그러나 지금 북한주민 모두가 변화를 강력히 원하고 있다. 비록 민주화라는 용어가 일반화되어 있지 않지만 변화에 대한 강렬한 갈망이 있다. 그것이 지식보다 더 중요하다. 모든 역사적 변화에는 지식보다 욕망이 우위에 있다. 이번 이집트 민주화 소식은 북한주민들에게 변화에 대한 욕망을 더 키워줄 것이다.


북한 내부에서는 이집트 민주화에 대한 당 차원의 ‘교양’을 집중적으로 하겠지만 이미 외부 소식에 의식화되기 시작한 주민들의 욕망을 오랫동안 제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른바 ‘혁명의 수도 평양’은 ‘혁명의 대상’일 뿐이지, 혁명의 주체가 아니다. 지금 평양정권이 혁명할 대상은 세상에 없다. 갑을관계에서 보아도 김정일정권은 갑이 아니라 을이다. 하지만 김정일은 끝까지 자신을 갑이라고 우길 것이다. 그래서 더욱 ‘시민 혁명’ 외에 달리 풀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의 역할이다. 시민단체, 언론, 정부는 북한주민들이 스스로 주권을 찾을 수 있도록 북한 정보자유화를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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