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밖 북한] 김정은의 건축 미학

북한 김정은이 금강산 남측 시설에 대해 “보기만 해도 기분 나쁘다며 싹 들어내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건축물이 민족성이라는 것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건축 미학적으로 심히 낙후하다”고 언급했다. 그렇다면 김정은이 말하는 건축 미학이란 대체 무엇일까?

북중 국경지역에서 바라 본 북한 공사 현장. /사진=강동완 동아대 교수 제공

문득 지난달 북중 접경에서 바라본 북한의 한 공사장이 떠오른다. 공사 중인 건물을 지탱하는 받침대가 철제빔이 아닌 나무 기둥이었다. 건물을 지을 때 사용하는 ‘서포트’라 부르는 이 장비는, 콘크리트 상부의 무게를 지탱하는 철조구조물이다. 바로 그 철제빔이 없어서 나무 기둥으로 건물을 받치고 있는 것이다. 비단 이 건물뿐만 아니라 북중 접경에서 보이는 대부분의 공사장에서는 나무 기둥을 사용한다.

속도전을 강조하며 지은 아파트는 창문에 유리 대신 비닐을 겨우 씌웠다. 그나마 비닐마저 없는 집은 두만강 칼바람을 고스란히 맞으며 온 집안을 냉기로 채운다. 대체 무엇이 건축 미학일까? 주민들은 뼛속을 에이는 바람 한 점 이겨낼 창문도 없이 겨울을 날 터인데, 김정은은 건축 미학 운운하며 자력갱생을 강요한다.

북중 국경지역에서 바라 본 북한 살림집. 창문에 비닐을 덧댄 모습이 눈에 띈다. /사진=강동완 동아대 교수 제공

더욱 가관인 건 통일부 장관의 언급이다. 그는 마치 북한의 대변인이라도 된 듯 “금강산 우리 시설이 많이 낡은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북한체제 특성상 최고지도자의 교시는 그 어떤 것보다 우선한다. 이미 김정은이 직접 시설 철거와 서면으로 협의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면 실무접촉 선에서 이를 뒤집기는 어렵다. 그런데도 통일부는 한가로이 대화와 협상 원칙을 운운하며 북한 당국에 실무접촉을 제안했다가 하루 만에 퇴짜를 맞았다.

현 상황에서 남북한의 협상은 이미 끝났다. 북한이 무엇을 요구해도, 어떤 도발을 해도 우리 당국은 무조건 수용하는 분위기다. 협상의 전략은 당연히 밀고 당기기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이 쓴 <협상의 전략>이라는 책을 보면, 이미 그가 북한과의 협상에서 어떤 가치를 우선할지 잘 보여준다. 그는 책에서 “인내, 인정, 양보, 화해의 기술”을 언급한다. 북한에 대해 무조건 인내하고 정권을 인정하며, 어떤 걸 요구해도 양보하면서 화해를 이루는 건 구걸이지 결코 협상이라 할 수 없다.

소 떼 1,000마리를 보내고 약속받은 50년 계약도 하루아침에 어깃장을 놓는 독재정권을 향해 여전히 정상집단인양 평화경제를 외쳐댄다.

이쯤 되면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을까? 이 정부에게 보다 종합적인 대북 전략 구축을 기대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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