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무대 조용필, 북 관객 뜨거운 갈채

’오빠부대’는 없었지만 조용히 흐르는 뜨거운 눈물이 있었다. ’가왕(歌王)’ 조용필(55)이 평양 시민과 함께 한 열정의 무대는 ’남과 북은 한민족’이라는 새삼스러운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소중한 추억으로 자리매김했다.

’광복 60주년 SBS 특별기획-조용필 평양 2005’ 공연이 열린 23일 오후 6시 평양 유경 정주영 체육관. 공연 1시간 전부터 형형색색의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여성들 과 흰 셔츠에 넥타이를 맨 남성 등 총 7천여 명이 줄을 이어 공연장으로 입장했다.

2002년 이미자 이후 남한 가수의 단독 콘서트는 처음이다. 더욱이 70년대 후 반 남한에 그룹사운드를 대중화시켰던 조용필이 남한 가수로는 처음으로 강렬한 그 룹 사운드 음악을 선보이는 자리다. 그만큼 남과 북의 대중문화 차이가 확연히 드 러날 수 있는 무대라는 부담도 있었다.

그러나 공연장에 입장한 북측 관객들은 대규모 무대에 일단 놀라는 표정이었다. 제주에서 시작한 ’2005 PIL&PEACE’ 전국 투어 무대를 고스란히 옮겨놓았다. 야외 공 연장에 맞게 디자인된 너비 60여m, 높이 16m의 무대는 실내 체육관으로 옮겨지며 더욱 커 보였다.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 날개가 무대 양측을 꽉 채웠다.

공연 시작 5분 전 SBS 윤현진 아나운서가 무대에 올라 ’조용필씨가 더욱 신명날 수 있도록 호응을 해달라, 연기와 불꽃이 피어나더라도 놀라지 말라’는 안내 멘 트를 했다. 북에서는 가수가 노래하는 도중 박수를 치는 것을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해 조용히 앉아있기 때문이다.

드디어 오후 6시 정각. 우주의 탄생을 묘사한 영상과 함께 강렬한 사운드가 공 연장 전체를 뒤흔들었다. ’태양의 눈’이 첫 곡으로 선택됐다. 조용필은 두루마기를 변형한 듯한 황금색의 긴 재킷을 입고 나와 평양 관객들에게 첫선을 보였다. 이후 이어진 곡은 흥겨운 리듬의 ’단발머리’와 ’못 찾겠다 꾀꼬리.’

빠른 템포의 노래로 관객들의 시선을 순식간에 붙잡은 조용필은 비로소 인사말 을 했다. “평양시민 여러분, 북측 동포 여러분, 감사합니다”로 말문을 연 그는 “예 전부터 꼭 와보고 싶었고 공연도 꼭 해보고 싶었습니다. 음악에 있어서만은 북과 남, 남과 북이 같다는 생각에 용기를 냈습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즐겨주시기 바랍니 다”고 인사했다.

남한의 대표적인 ’국민가수’로 숱한 무대에 서봤던 조용필은 처음 만나는 평양 객석의 감정 역시 주도적으로 끌고 나갔다. ’친구여’ ’돌아와요 부산항에’ ’허공’ ’ 그 겨울의 찻집’으로 관객이 듣기에 무리없는 곡을 이어나갔던 그는 어느새 애니메 이션 영상이 무대에 펼쳐진 ’끝없는 날개짓 하늘로’를 불러 신선함을 느끼게 했다.

그는 무대 위 인터뷰에서 “37년 음악생활을 했지만 제 나이는 40입니다”고 말해 관객들의 웃음과 박수를 유도했다. 농담 한 마디에 생각보다 열띤 반응이 나오자 “ 한번 더 박수쳐달라”는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다소 느린 곡을 불렀던 그는 북한 사람들이 꽤 많이 알고 있다는 ’모나리자’를 불러 다시 한번 무대를 들뜨게 했고 이내 ’한오백년’과 ’간양록’으로 관객의 가슴 을 파고 들었다. 관객들은 무대 오른쪽에 가사를 적어 놓은 전광판을 순간 순간 들 여다 보며 노래의 의미를 음미하려했다.

그때까지 다소 풀어지지 않았던 객석은 조용필이 100여 곡의 북한노래를 듣고 선택한 ’자장가’와 ’험난한 풍파 넘어 다시 만나리’를 부르자 일순간에 감정 해제됐 다. 객석에서 드디어 리듬에 맞춘 박수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어 ’봉선화’와 ’황성옛터’를 부르자 눈물을 흘리는 관객들이 나타나기 시작했 다. 조용필은 공연 후 “’봉선화’를 부를 때부터 완전히 하나가 됐다는 느낌을 받았 다”고 말했다.

’미지의 세계’와 ’여행을 떠나요’가 흘러 나오며 분위기는 한껏 고조됐다. 조용 필은 “제 음악 인생에서 가장 값진 하루였습니다. 제 노래를 들어주신 여러분께 깊 이 깊이 감사드립니다”고 마지막 인사를 했다.

마지막곡 ’꿈의 아리랑’이 흐르며 흰색 종이가루가 객석에 뿌려졌다. 노래가 끝 나자 불이 꺼진 객석에서 이례적으로 기립박수가 터져나왔다. 무대 위에 한반도기가 올려진 가운데 앙코르곡 ’홀로 아리랑’을 관객과 함께 부르는 감동적인 순간이 연출 됐다.

공연 첫머리에 조용했던 객석은 어느새 미소를 흠뻑 머금은 채 한데 박수치고 눈물을 흘리며 노래 부르는 한마음의 자리로 변해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난 뒤 정장 차림을 한 젊은 여성 관객은 “이렇게 시끄러운 음악 은 처음 들었다”고 조심스럽게 말문을 연 뒤 “정말 좋았습니다”라며 환하게 웃었다.

남과 북의 문화 교류의 한 장이 이렇게 막을 내렸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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