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공동취재단 현장취재 통제 `극심’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간 ‘2007 남북정상회담’은 포괄적 의제들을 놓고 예상보다 구체적인 합의사항을 도출, 성과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지만 북측의 엄격한 현장취재 통제로 인해 평양 공동취재단의 실시간 뉴스 전달이 여의치 않아 많은 곤란을 겪었다.

특히 3일 남북정상회담을 비롯, 김정일 위원장의 동선에 대한 근접 취재는 사실상 거의 불가능했고, 예측 불가능한 일정 변경에다 약속했던 풀(pool) 기자의 취재도 이행되지 않는 사례들도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번 회담의 하이라이트인 노 대통령과 김 위원장간의 정상회담에서 주고 받은 대화에 대한 취재가 여의치 않은 점이었다.

지난 2000년에는 회담 첫날 백화원 영빈관에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간의 정상환담이 27분 동안 이뤄졌는데, 이중 20여 분이 기자들에게 공개됐다.

당시 언론은 이 정상환담을 사실상의 ‘1차 정상회담’이라고 표현하며, 북한이 과거와 달리 정상회담을 파격적으로 거의 다 공개했다고 평가했었다. 때문에 두 정상간의 상당 분량 대화록을 평양 공동취재단은 보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지난번과는 확연히 달랐다. 평양 방문 둘째날 오전 이뤄진 첫 정상회담에는 취재기자의 풀 취재가 일체 불허됐다. 청와대 전속 영상팀의 촬영만 허용됐을 뿐이었다. 현장에는 공동취재단 기자가 없었던 것이다.

남측은 공동취재단 기자의 현장 취재를 계속 요청했지만, 북측이 거부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일 위원장이 이날 오전 9시27분께 백화원 영빈관에 도착했고, 34분께 공식회담에 들어갔다는 소식도 회담 개시 이후에 공동취재단에 알려졌다.

그때까지 고려호텔 프레스센터에는 ‘회담이 언제쯤 열릴 것’이라는 일체의 정보도 제공되지 않았다. 대략 오전 10시께 열릴 것으로 짐작들을 하고 있었지만, 백화원 영빈관에 대기하던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으로부터 전화를 통해 오전 9시40분께 ’정상회담 개시’ 사실을 전격적으로 전달받고 서울 프레스센터로 1보를 날릴 수 있었다.

고려호텔 프레스센터에서는 정상회담장에 공동취재단 취재가 허용되지 않은데 대한 문제제기가 이뤄졌고, 청와대 내부적으로도 문제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오전 회담이 끝난 후 염상국 경호실장이 직접 나서 북측 호위총국 책임자와 협상을 벌여 강력히 요청해 ’오후 정상회담시 공동취재단 기자의 취재’를 합의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공동취재단 기자가 명목상 기자가 아닌 청와대 전속팀 요원의 ’모자’를 쓰는 방식이었다. 이같은 우여곡절끝에 오후 회담에는 공동취재단 풀 취재기자 1명이 두 정상의 영접 장면과 회담 모두발언을 취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북측 호위총국 경호요원들의 엄격한 취재통제는 여전했다.

양 정상이 회담장에 들어선 후 북측 경호요원들이 붉은 색의 굵은 밧줄로 취재 통제선을 쳤고, 공동취재단 기자는 김정일 위원장과 10m 가량 먼 거리를 둔 상태에서 두 정상의 대화에 귀를 쫑긋 세울 수 밖에 없었다. 그 조차도 2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만 공개를 했을 뿐이다.

그나마 공교롭게도 이때 취재기자가 있는 가운데서 김 위원장은 전격적으로 노 대통령에게 평양 일정을 하루 연장해달라는 요청을 했다. 이 때문에 이 같은 사실은 평양 프레스센터에 알려졌고 서울로 긴급 기사로 타전될 수 있었다.

공동취재단의 취재 어려움은 남북정상선언 발표 때까지도 이어졌다. 공동취재단은 내부적으로 2명의 현장 풀 기자를 정해뒀고, 정상선언 서명식 시간에 맞춰 백화원 영빈관으로 이동할 채비를 했다. 그러나 또 다시 갑자기 북측으로부터 서명식장에 공동취재단 기자취재를 불허한다는 입장이 알려져왔다.

청와대 상황실과 공동취재단은 북측에 강력히 현장 취재를 요청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할 수 없이 공동취재단은 청와대와 협의를 거쳐 그 시간 노 대통령의 서해갑문, 평화자동차 현장 취재를 떠났던 기자들 중 1명이 역시 청와대 전속팀 요원으로 명찰을 바꿔달고, 본대 경호팀과 함께 백화원 영빈관으로 들어가 정상선언 서명식 현장을 취재하는 ’편법’을 써야 했다.

공동취재단의 취재 차질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노 대통령의 공식환송식은 TV 생중계가 계획돼 있었고, 이 방송은 공동취재단 방송기자 2명이 평양 시내 환송식장 현장에서 육성으로 전달될 예정이었다. 이는 남북 양측간의 합의사항이었다.

그러나 이 방송기자들은 생방송 준비를 바치고 환송식장에 도착했지만 “기자들은 일체 차밖으로 내려서는 안된다. 차창밖으로 환송식을 지켜보라”는 북측 관계자의 예상치 못한 제지로 차에서도 내릴 수 없었고, 결국 현장 방송기자의 리포트가 없는 상태에서 영상만이 서울로 송출됐다.

이와 함께 평양 프레스센터에서의 정상회담 진행상황 브리핑도 청와대 대변인에 대한 원활한 차량 지원이 제공되지 않아 제때 이뤄지지 않았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회담 첫날 노 대통령이 숙소인 백화원 영빈관에 도착한 후, 노 대통령의 평양 도착 첫날 표정을 전하기 위해 고려호텔로 이동하려 했지만, 차량이 배치되지 않아 한참 동안 발이 묶여 전화로 상황을 전달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번 회담 기간 천 대변인의 공식 브리핑은 첫째날 심야와 둘째날 정상회담이 끝난 후 두 차례 이뤄졌다./연합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