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가는 별도 운임? 난 못내, 이대로 버틸거야!”

이제 이들이 평양으로 돌아가서 좋은 구두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해 줄 것을 마음속으로 빌며 또 이들이 최고의 고급 가죽구두 제조기술자로서 만족한 일을 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중국에서의 잘 먹고 잘 자고 아침마다 잠 깨워 양자강변으로 운동 가자던 나에 대한 추억은 그들 가슴속에 영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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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전성근, 오광식, 전영일이 호텔로 찾아왔다. 한국식당 고려정에서 거나하게 잘 먹고 술도 한잔씩 했다. 그동안 고생한 이야기며 대단히 고맙다는 인사도 받고 조국에서 찬구선생을 해외동포 노력영웅으로 인정하여 큰 상(?)도 있을 것이라고 괜히 추켜 올린다. 여기에 나는 넘어가지 않고 정신 바짝 차렸다.

연수생들은 내일 열차 편으로 평양으로 보내고 우리는(전성근 일행 3명) 비행기로 평양 가고 싶으니 항공요금을 달라는 거다. 전성근과 오광식은 밖에 있고 전영일이 방까지 따라 와서 마치 받을 돈 있는 것처럼 태연히 말한다. 그러면 그렇지 추켜 올리더라니… 막판에 헤어지면서까지 신세를 지려하고 기분 나쁘게 만든다. 자존심 상해 “연수생들과 같이 열차 타고 가지 뭘 비행기를 타고 가려고 하나? 나도 여비가 부족하니 그냥 가거라!”고 말했다.

그래도 가지 않고 방에 버티고 앉아 있다. 기가 막혀서– 불쌍한 생각이 들어 300달러를 주면서 “앞으로는 이러지 말아라”고 인상쓰며 퉁명스럽게 대했다. 전성근에게 여비를 못 받았다 하고 전영일이가 다 떼어먹든지, 그렇지 않으면 2백달러 받았다 하고 1백달러를 떼어먹고 상납용 선물들을 사고 열차 편으로 갈지. 아마 그 돈은 선물을 사고 열차로 갈 것 같았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10월 17일 모든 시설 선적

10월 3일 : 오늘이 단기 4330년 개천절이다. 홍익인간! 인성교육!

오랜만에 대한항공편으로 북경에서 서울로 왔다. 집에 가는 길은 항상 한강을 지나게 된다. 한강은 언제나 아름답고 화려하고 엄마의 따뜻한 가슴 같다. 한강을 지날 때마다 평양의 대동강이 떠오른다. 세계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강을 품에 안고 사는 우리는 왜? 언제나 목마른 느낌으로 살고 있는지? 누구의 책임인지? 나라를 다스리는 정치꾼들, 양심과 애국애족하는 정치가가 되기를 바래본다.

그래도 우리는 이렇게 배불리 사는데 북한은…. 참으로 안타깝다. 모처럼 푹 쉬려고 자리에 누웠지만 북경 조선대사관 공동숙소 안에 두고 온 그들의 모습이 아른거리고 평양으로 돌아가 고달프게 살아 가야할 것을 상상하니 또 서글퍼 마음속에서 지울 수가 없다.

내가 한나절 정성껏 싸준 나의 손때가 묻은 720명분의 냉면을 제대로 평양까지 가지고 가서 가족과 공장일꾼들과 조금씩이라도 나누어 먹어야 할 텐데…. 대사관에서 달라고 해도 주지 말라고 했지만 몇 박스나 제껴놓을 건지? 이런 저런 쓸데없는 걱정까지 겹친다.

이제부터 더 큰 일들이 산더미처럼 기다리고 있다. 엘칸토 평양공장 기계설비와 생산준비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기술자들의 평양방문과 공장내부 시설에 대한 지원문제가 있다. 나의 사업도 챙겨 봐야 한다.

원래의 선적계획보다 일주일 남짓 늦어졌다. 모든 기계에 부착한 한글은 전부 떼고 영문으로 부치고 취급설명서만 한글로 따로 만들었다. 동족인데 참으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10월 17일 모든 시설물 선적하여 배는 떠났다.

“조국에 가는 물건인데, 별도 운임 못내!”

그동안 엘칸토의 김용운회장, 정주권 이사, 변종호 과장(재단제화담당), 이상우 대리(제화담당), 김상오 대리(구두 밑창제조담당), 정용성 과장(기계설비 담당) 등은 수유리 통일교육원에서 북한 방문에 따른 소양교육을 받고, 방북준비에 바쁜 나날을 보냈다. 특히 김용운 회장님은 이번 평양방문기간 45년만에 이산가족을 전부 찾아 만나는 설레임도 있었다.

10월 17일. 김용운 회장 외에 5명과 그리고 나 김찬구 고문 총 7명은 여러 가지 의미의 부푼 가슴을 안고 북경에 도착했다. 리재철이 북경공항에 마중 나오겠다고 큰 소리 치더니 공항에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김용운 회장과 공항에서 반가운 만남의 시간을 갖지 못해 나를 다소 실망시켰다. 대사관 벤츠를 가지고 오느라고 좀 늦었다고 한다. 나는 신경질을 냈다. 좀더 일찍 서둘러 마중 나오면 안 돼나? 하고….

우리 일행은 힐턴호텔에 들었다. 김회장의 친척인 재미교포 John Lee회장과 광명성 북경대표부의 리재철과 우리일행은 서라벌 식당 별실에서 거나하게 한잔씩 하면서 앞으로의 사업계획에 대하여 또 한번의 다짐과 성공을 빌었다.

10월 18일. 우리일행 7명은 평양에 가기 위해 북경 수도공항으로 나갔다. 선물 보따리의 무게가 초과하였다. 무려 200kg나 초과했다. 별도의 운임을 내라고 하여 나는 카운터 앞에 서서 버티었다. 조국을 위해 가지고 가는 물건이고 또 이산가족에게 줄 물건인데 꼭 초과 운임을 받아야만 되겠나? 동무 나 알지? 재미교포 김찬구. 그냥 통과 안 시켜 주면 뒷사람도 수속을 못하게 이 자리에 계속 서있겠다. 농담 아니야!

입다물고 서 있으니 뒷사람이 카운터 여성동무에게 “아, 거 다 조국으로 들어가는 물건인데 뭐 그러나? 빨리빨리 하라! 그냥 통과 시켜라, 야!” 했다. 여성동무는 “이번만 봐주는데 다음에는 안 됩니다” 한다. 그냥 통과했다. 불쾌하면서도 마음이 홀가분하고 좋다.

북경시간 11시 40분(평양시간 12시 40분) 출발,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하니 15시다. 광명성경제연합회 부회장(박길남), 대외사업처장, 오광식, 김상호가 마중 나와 VIP실로 안내되어 싱거운 커피 한잔씩 마시고 ‘서재골’이라는 호화 초대소로 안내되어 김회장, 정이사, 나 3사람은 24동에 방 하나씩 차지하고 기술진 4명은 18동에 여정을 풀었다.

서재골 초대소는 지하철 △△역에서 약 3분 거리에 있는 호화 숙소로서 주로 개발도상국이나 석유 산유국 수상이나 왕자들의 체류숙소로 사용하는 곳이다. 당시 ‘금강산국제그룹’의 재미교포 박경윤 회장의 별장도 아늑하고 조용한 자리인 여기에 있었다.

별도의 담장으로 둘러져 있어 안전하고, 정문에는 현역 군인이 24시간 경비를 하는데 아침에 산보하려고 밖으로 나가려면 나가지 못하게 한다. 아침에 나갔다가 일단 이곳에 들어오면 밖으로 나가질 못하지만 공식 행사나 안내원의 도움을 받으면 나갈 수 있다. 그런데 일단 들어오면 나갈 일이 별로 없다.

일부러 큰 목소리로 기도

10월 19일. 일요일 아침 9시에 김일성 생가인 ‘고향집’ 방문과 모란봉 일대를 관광하고 10시에 봉수교회에 도착했다. 100여명 남짓한 교인(?)들은 미리 와 있었고, 해외에서 오는 손님들을 위해 특별히 마련한 자리에 우리일행 7명은 나란히 앉아 감사기도 하고 예배를 봤다.

나는 예배 보는 동안 안밖으로, 2층으로 다니면서 기념 비디오를 부지런히 찍었다. 김회장은 여의도 순복음교회의 원로 장로님이시라 초대소 식당에서 식사 때마다 기도를 하시는데, 평양이라는 곳을 의식하시고 작은 소리나 묵념식 기도를 해도 될텐데 언제나 큰소리로 기도했다.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지금 분단의 서러움을 안고 45년만에 우리의 땅 이곳 평양에 와 있습니다. 오늘은 봉수교회를 다녀온 후 45년만에 우리 가족들을 만나기로 했지만 믿을 수가 없습니다. 평양에 온 지 이틀이 됐는데도 아무런 말이 없어 언제나 만날 수 있을지 가슴 답답합니다. 오늘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꼭 만날 수 있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중략) 주 예수이름으로 감사기도 하옵나이다. 아-멘’.

우리가 머무는 초대소에는 요리사 등 7명을 특별히 파견하여 끼니마다 색다른 음식으로 우리를 접대하기로 계획됐고, 세탁과 청소도 그분들이 봉사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듣든말든 관계없이 큰 소리로 기도를 할 때마다 우리들은 다소 고역이었다. 교회에서 오는 길에 만경대. 구두공장을 방문하여 시설관련을 점검하고 초대소로 돌아와 이산가족들을 기다렸다.

이제부터는 엘칸토의 앞날을 위해 기도할 차례였다.(엘칸토 평양진출 秘話-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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