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월, 김정은이 백마를 타고 백두산 정상에 올랐다. 김정은과 백두산은 백두혈통을 넘어 혼연일체이다. 김정은은 작년 8월에 김정숙(조모)을 제치고 ‘백두산 3대장군’으로 등극하였다. 2014년에 국가목표를 ‘백두산 대국’으로 천명한 김정은에게 있어서 백두산 3대장군 지도자상(象)은 필수 불가결이었다. 인민군대를 ‘백두산혁명강군’으로 부르며 백두산 대국 진입을 위한 선봉대로 내세우고 있는 김정은은 2015년에는 백두산에 올라 핵무력을 북한의 가장 귀중한 ‘정신적 양식’이라고 제시하였다. ‘백두산 대국’ 진입을 위해서 핵무력이 절대 요소라는 의미이다. 2016년 1월, 북한이 첫 수소탄시험을 성공할 때 김정은은 핵무장만이 북한체제를 유지하는 확실한 담보라고 강조하였다. 김정은이 백두산 3대장군 반열에 오른 지 3개월 뒤, 11월에 북한은 화성-15호를 발사하면서 핵무력이 완성단계에 이르렀다고 발표하였다. 이처럼, 북한에서 김정은-백두산-핵무력, 이 셋은 하나의 완전체라는 것을 우리는 명심할 필요가 있다.
올해 2월, 제2차 북미정상회담에서의 합의문이 결렬된 가운데, 미북정상은 다시금 6월에 판문점에서 깜짝 회동을 가졌다. 두 정상의 만남은 10월 5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북미실무협상으로 이어졌지만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고 제3차 북미정상회담 개최 합의도 이끌어내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은 미국에게 올 연말까지 새로운 계산법을 제시하고 촉구하면서 ‘대북적대 정책’을 철회라고 강력주문하고 있다. 하지만 대북특별대표인 비건은 북한이 비핵화를 선택했다는 구체적인 증거가 아직은 없다고 우려를 나타내고 있는 현 상황이다.

최근 북한의 외교 행태에서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엿볼 수 있는가. 북한은 2017년 11월, ‘핵무력 완성단계시기’를 선언한 후, 2018년 4월에 ‘경제건설 총력집중시기’로 돌입하였다. 이때 김정은은 광폭의 경제부문 현지시찰을 하면서 ‘낙원으로 이끄는 지도자’라는 지도자상을 얻었다. 2019년 2월, 미북 정상 합의문이 불발된 후 김정은이 핵문제를 지난하게 끌어오면서 계속되는 대북경제조치로 인해 북한의 경제상황은 계속 곤두박질치고 있다. 김정은은 여전히 자력갱생, 자력자강을 외치며 강력 대응하는 모양새다. 이로 인해, 현재 북한에서 김정은의 가장 대표적인 지도자 이미지는 ‘견인불발(堅忍不拔)의 지도자’이다. 굳세게 참고 견디어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것, 아무리 어려운 상황을 맞아도 참고 견디어 마음이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가리키는 사자성어다. 이 용어가 노동신문의 기사, 사설 등 11월 한 달에 실린 것만 29차례나 된다. 최근 김정은은 시찰하는 현장마다 ‘견인불발’을 부르짖는다.
김정은의 의중을 알 수 있는 실효적 방법 중 하나는 김정은의 위대성을 알리는 ‘수령형상작품’을 검토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합리적이며 어느 정도의 신빙성도 있다. 왜냐하면, 이 작품들의 저자들은 김정은(당)의 직접적인 지시를 받는 1호 작가이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자신의 의중을 인민대중들에게 전달하고자 할 때 이러한 방법을 동원한다. 따라서, 이 작품들은 매우 정치적이며 김정은과 인민대중의 가교역할을 한다. 수령형상(단편)소설은 더더욱 그렇다. 김정은이 소설의 주인공으로 직접 등장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올 하반기에 대대적으로 선전하는 ‘김정은 수령형상단편소설’은 <소나무>(주설웅)이다. 이 소설에는 매우 충격적인 내용이 나온다. 전에는 북한이 그렇게도 숨겨왔던 매우 열악한 경제상황을 고스란히 노출시킨다. 그 원인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유엔의 대북 경제조치라고 하면서 말이다. 아래 문장은 소설 속 관련 내용들이다.
“인쇄기 몇 대와 물감…이전 같으면 큰 문제가 아닌 설비들이였다. 허나 지금은 달랐다. 가증되는 적대세력들의 초강도 봉쇄책동으로 하여 기계설비는 말할 것도 없고 일상생활용품과 심지어는 아이들의 놀이감마저도 들여오는 것이 차단된 형편에서 인쇄설비수입이 가능하겠는지 우려하고 있다는 것을 시당 책임일군(일꾼)도 알고 있었다.”
“김정은 동지께서는 그들의 놀라움을 충분히 리해하고 계시였다. 지금 얼마나 어려운 속에서 우리 혁명이 전지하고 있는가. 상상을 초월하는 고강도 제재, 압박 속에서 난관과 시련을 정신력으로 타개해나가며 우리 조국이 전진하고 있었다.”
아래는 김정은의 독백으로 유엔 대북 경제제재로 인해 당하는 북한의 경제적 고통을 가장 극단적으로 표현한 문장이다.
“지금도 어렵다. 어렵다는 말로써는 다 표현할 수 없으리만치 어렵다. 시련과 난관을 뚫고 헤친 우리 혁명의 전 로정을 살펴보아도 지금처럼 어려웠던 적은 드물었다.”
이 소설은 동시에 미국에 대한 적대감, 반미감정도 고스란히 표출하면서 민족주의적 사고를 강하게 고무시키고 있다.
“수도의 거리와 현지지도의 길에서 외국 그림이나 글자가 붙어있는 가방을 지고 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실 때마다 그이(김정은)께서는 심각해지는 마음을 금할 수 없으시였다.”
“민족적 자존심에도 어긋나는 것이지만 그 애들의 의식 속에 혹시라도 남의 것을 부러워하는 나쁜 싹이 돋게 할 수 있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인공지구위성을 쏘아올리는 일도 중요한 일이지만 우리 아이들에게 자기의 것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안겨주는 것이 더 선차적인 사업이였기에 이렇게 현지지도의 길을 멈추시고 평양시의 책임일군들을 부르신 거였다.”

특이점은, 김정은 정권이 표방하고 있는 핵·경제병진 노선이 작품 속에 잘 녹아 있다는 것이다. 핵·미사일개발과 경제발전, 두 가지 모두를 작품 배경으로 하고 있다. 경제부문으로는 ‘학생가방공장건설’을 소재로 하고 있고 핵관련해서는 북한이 2016년 2월, <광명성-4호>를 발사했던 서해위성발사장 관련내용이 나온다.
이 작품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김정은의 지도자상은 ‘자력자강으로 이끄는 지도자’이다. 자력자강은 글자 그대로 스스로 힘을 키워 강해진다는 의미이다. 작품 속에서도 “다른 나라의 기계설비로 만든 것을 완벽한 우리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라며 김정은이 자체적으로 기계설비를 제작(인쇄기 및 레이저 제단기 등)할 것을 독려하고 있는 장면이 여러 차례 반복된다.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북제재로 인해 어떠한 기계설비도 수입할 수 없는 상황에 따른 고육지책임에도 불구하고 소설은 민족주의, 애국주의를 고취시키며 자력자강으로 경제적 난관을 돌파하려는 김정은을 가열차게 선전한다. 소설의 작가는 김정은의 이 같은 의지를 ‘견인불발’로 묘사하였던 것이다. 여기에서 대북경제제재에 대한 김정은의 자세 및 그 결의를 확인하게 된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북핵고수라는 그의 의지로도 연결된다.
우리는 2019년 북한에서 김정은의 대표적인 지도자상으로 내세워지고 있는 ‘견인불발의 지도자’에 주목해야한다. 이 사자성어는 유엔대북경제제재에 강력하게 맞서는 김정은의 의지를 시사해줄 뿐만 아니라 동시에 핵무력에 대한 그의 집념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이 지난달 23일 금강산을 둘러보면서 과거 대남사업에 대해 ‘선임자들의 잘못된 정책’, ‘선임자들의 의존정책이라고 강하게 비판했었다. 선대 유훈을 최고통치방식으로 받아들이는 북한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필자는 김정은의 이 선대에 대한 도전적 언사를 단지 무모함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거기에는 자신만만한 김정은, 당당한 김정은이 묻어있다. 그도 그럴것이 2019년 4월, 8월 두 차례의 개정헌법을 통해 김정은의 헌법적 권위는 김정일(국방위원장)을 넘어 김일성(주석)에게 도달했다. 아니 넘어서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드높아진 위상을 뽐내고 있는 김정은은 견인불발을 내세우며 ‘핵무력 완료’라는 도장을 찍을 날을 헤아리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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