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청년과 김일성대

▲ 이른 아침 대동강에서 물고기를 잡는 노인들(89년 평양)

1989년 7월 아침 평양 대동강 주변에 홀로 산책을 나섰다. 안내원은 따돌린 상태였다. 아무나 와도 만나서 이야기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마침 한 학생이 구석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뭔가를 중얼중얼 외우고 있다. 조심스럽게 가까이 갔다.

“동무 안녕하십니까? 나는 재미동포인데요. 아침 산보 나왔습니다. 무슨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하고 있나요?”

누렁종이에 깨알글씨다. 내 눈에는 안 보인다. 물어보니 작은 종이에 많은 내용을 쓰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내용은 ‘수령님 혁명사’. 다른 과목은 90점 이상이면 되지만 혁명사는 무조건 100점을 맞아야 당원이 될 수 있고 또 졸업 후 좋은 직장에 배치되어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혁명사업에 동참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

우리는 친구처럼 나란히 앉았다. 그 청년은 김영식. 나이는 스물 여덟이고 고향은 평성이라고 했다. 김일성대학교 물리학부 졸업반이다. “장래 희망이 물리학자가 되는 것이냐”고 물었다. 지체 없이 나오는 대답이 소름끼쳤다. 아니 어쩌면 당연한 대답일 수도 있다. “미국놈과 싸우려면 힘을 길러야지요!”

남한 청년학생들의 데모를 같은 학생의 입장에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또 조국통일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역시 답변은 “미국 놈들을 남조선에서 좇아내야지요!” 했다.

그런데 만약 이 학생을 그대로 서울로 데려갔다고 가상했을 때, 과연 1%라도 남한에 어울리는 애국청년으로 성장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이 없다. 수령과 당의 총폭탄(총과 폭탄)으로 키워진 청년이 자유로운 남한 사회에 적응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안내원 없이 외출하면, 체포당해”

식사 후 방에서 대기하라는 안내원의 전달을 받았다. 대동강변에서 찍은 비디오를 보고 있는데 ‘김두칠’ 해외동포원호위원회 서기장 대리(차관급)가 앞장 서서 방으로 들어온다. 뒤따라 안내원 동무 김현철씨가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들어온다.

직감에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동강변 산보사건이 벌어졌구나. 잠시 침묵이 흘렀다. 서기장 대리 동지가 낮은 목소리로 말문을 연다. “찬구 선생!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오해 없이 잘 들으십시오.” 일장 연설이 이어졌다.

“어제, 오늘 새벽에 대동강으로 산보를 가시는데, 왜 안내원 동무와 같이 가지 않고 혼자 가십니까? 우리 공화국에서는 지금 세계적인 큰 행사(89 평축)를 하고 있습니다. 당은 물론 평양시민들은 공화국에 오신 손님들의 신변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만일에 조국에 오셨다가 무슨 사고라도 당하면 큰일이지 않습니까? 특히 미주동포에 대한 신변보호는 친애하는 김정일 동지께서도 아무런 사고 없도록 하라는 지시까지 계시었습니다.”

훈시가 계속 이어졌다. “마음대로 다니지 말라는 뜻이 아니고 혼자 나가시면 첫째, 인민이 수상히 여겨 안전부(인민보안성)로 잡혀 갈 수도 있고, 둘째, 보위원(국가보위부)이 잡아 갈 수도 있으며, 셋째는 군인이 잡아 갈 수도 있습니다.”

“현철 동무!”
“네!”
“동무는 특별히 사장선생을 안전하게 잘 보호하기요! 알았소?”

“교포총국 지도원과 인연, 자본주의 관심 보여”

평양시 대성구역 용남동에 위치한 김일성종합대학을 찾았다. 대학 안내원이 김일성대의 역사와 발전상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학생 선발은 전국 각 지방에서 1차로 추천을 받아 추천된 학생들 중에서도 다시 중앙당에서 선발하여 경쟁율이 5대1 정도 되도록 조정하여 엄격한 시험에 의해 선발됩니다. 필답시험이 6개 과목이고 면접시험과 신체검사를 거쳐 최종선발 하게 됩니다. 기숙사는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만 기숙을 시키고 평양시내의 학생은 통학하게 합니다.”

이어 “1946년 10월 1일 문을 연 김일성대는 현재 15개 학부와 8개의 연구소, 박사원과 준박사원이 있고, 교원은 1,200여 명, 그 외 관련직원이 2,800여 명이 됩니다. 그리고 학생은 16,000여 명으로 학제는 4년반과 5년반이 있습니다”며 총명하게 말했다.

안내원의 설명이 끝나자 질문을 했다.
“대학을 졸업하면 학사칭호를 주는데 여기에서는 어떻게 합니까?””

“네, 우리 대학에서는 학사라는 칭호는 없고 전문가 자격을 줍니다. 그리고 대학졸업 전에 훌륭한 논문을 발표하여 그 논문이 인정받았을 때는 “후보 준(準)박사”라는 칭호를 줍니다. 그리고 ‘준 박사’-‘박사’로 됩니다.”

해외 유학생은 매년 늘어나 약 150여명 된다고 한다. 준박사 과정은 3년 반이고 박사과정은 2년이다. 해외유학에서 받은 학위는 국내에서 인정해준다고 한다.

안내원은 “김일성대 졸업생들은 ‘새 조국 건설’과 나라의 부강 발전에 커다란 공헌을 하였으며 당, 국가 기관, 경제, 문화 기관들과 여러 분야의 중요한 위치에서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투쟁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결국 수령에 충실하고 당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엘리트 그룹을 양성하는 대학이라고 이해하면 될 듯 싶다.

<필자약력> -경남 진주사범학교 졸업 -국립 부산수산대학교 졸업, -LA 동국로얄 한의과대학졸업, 미국침구한의사, 중국 국제침구의사. 원양어선 선장 -1976년 미국 이민, 재미교포 선장 1호 -(주) 엘칸토 북한담당 고문 -평양 순평완구회사 회장-평양 광명성 농산물식품회사 회장 -(사) 민간남북경협교류협의회 정책분과위원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경남대 북한대학원 졸업-북한학 석사. -세계화랑검도 총연맹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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