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의 고구려 금동투조장식판과 비단벌레

12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막한 북한문화재 특별전에 출품된 90점 중에는 서울나들이가 낯설지 않은 몇 점이 있다.

’영강 7년’(永康七年)에 제작했다는 명문이 있는 금동광배(金銅光背. 길이 22.0㎝), 대왕과 선왕을 위해 축복과 명복을 비는 문구를 담은 금동명문판(金銅銘文板), 그리고 금동맞뚫음장식이라고도 하는 ’금동투조장식판’(金銅透彫裝飾板. 길이 42.0㎝)은 지난해 고려대박물관이 기획한 특별전에서도 모습을 드러낸 바 있다.

박물관이 이번 기획전에 즈음해 발간한 도록 ’북녘의 문화유산’에서는 다음과 같이 이 투조장식판을 소개했다.

“5-6세기 고구려시대 작품이며, 출토지는 평양시 역포구역 소재 진파리 7호분이다. 현존 길이는 22.0㎝이며 북한 국보로 지정돼 있다. 고구려 금속공예품의 대표작으로 복숭아를 절반으로 잘라 옆으로 약간 눕힌 형태를 한다.

외곽 테와 내부 문양 사이에는 뒷면에서 두드려 볼록하게 만든 원형 장식을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했다. 중앙에 마련한 두 겹 둥근 테두리 안에는 태양을 상징하는 세발까마귀(삼족오. 三足烏)를 표현했고, 그 위쪽에는 봉황을, 양 옆으로는 용을 각각 표현했다.

금동판 뒷면에는 나무판을 댔다. 금동판과 이 나무판 사이에는 비단벌레(옥충. 玉蟲)라는 곤충의 날개를 깔아 바탕을 금녹색으로 만듦으로써 금동판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게끔 했다.

애초에는 이 장식품이 피장자(묻힌 사람) 머리 부분에서 1쌍이 출토됨으로써 금동관을 구성하던 일부로 보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피장자의 베개(두침) 마구리 장식이라는 견해가 유력하다.

맞뚫음된 금동제품에 비단벌레 날개를 깔아 장식하는 예는 신라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금동제 말안장 가리개에서도 확인되는 것으로, 고구려와의 영향관계를 짐작케 한다.”

이처럼 이 고구려 금동장식판에 비단벌레 날개가 장식품으로 쓰였다는 사실이 두 번에 걸쳐 강조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나아가 비단벌레 장식물이 신라시대 고분에서 주로 출토되고 있는 점을 근거로 신라-고구려 사이의 영향관계를 언급한다.

지난해 서울전시도 그렇고, 이번 서울전시에도 모습을 드러낸 이 금동투조장식을 관찰한 많은 연구자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즉, 비단벌레를 장식했다고 했으나, 그 흔적이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흔적이 지금은 전혀 남아있지않은 비단벌레 장식이 있었다고 우리 박물관이 이번 전시도록에서 설명한 것은 북한측이 그렇게 설명해 오고 있고, 이를 최대한 존중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비단벌레 운운한 뿌리는 어디에 있을까?

우메하라 스에이지(梅原末治.1893-1983)라고 하는 일본 고고학자가 있다. 흔히 그를 두고 일본에서는 일본고고학, 특히 동양고고학의 기초를 놓은 거인이라고 평가하는데, 그런 이력은 사실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배하던 시대에 조선을 무대로 해서 구축됐다.

교토제국대학 교수를 지낸 그는 식민지 조선의 고고학 조사에 깊이 관여했다. 지금은 진파리 7호분이라고 일컫지만 식민지시대에는 진파리 1호분이라 하던 고구려시대 고분 또한 조사자는 우메하라였다.

그는 전후 조선에서의 고고학적 발굴성과를 방대한 자료집으로 집성하는데, 1964년에 같은 고고학자인 후지다 료사쿠(藤田亮策)와 함께 전 4책으로 완성한 ’조선고문화종감’(朝鮮古文化綜鑑)이 그것이다.

이 ’종감’ 제4책 23쪽에서 우메하라는 진파리 고분 출토 금동투조장식을 ’금동투조옥충시식금구’(金銅透彫玉蟲翅飾金具)라는 타이틀 아래 소개하고 있다. ’옥충시’란 옥충의 날개라는 뜻이며, ’식금구’는 장식용 금동붙이를 의미한다.

유물 이름 자체에 옥충, 즉, 비단벌레가 장식돼 있음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설명문에 의하면 이 유물은 진파리 1호분(지금의 7호분) 연도부(무덤방으로 통하는 입구)에서 1쌍이 출토됐으나 이 중 1점은 보존상태가 대단히 불량하다. 나머지 상태가 좋은 유물이 바로 서울나들이에 나선 금동투조장식이다.

우메하라는 이 글에서 옥충이 “주연(周緣. 테두리)의 주문대(珠文帶. 구슬 무늬를 넣은 띠) 아래에 붙어있”으며, 이것이 금동투조품의 “화려함을 더하고 있다”고 했다. 나아가 우메하라는 이런 비단벌레 날개를 장식품으로 활용한 사례로 남한의 고신라 금관총 출토 마구(馬具)를 거론하면서, 이는 “반도 삼국 정립 시대의 새로운 출토 사례를 더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우메하라는 유물 도면과 흑백사진을 수록하면서, 옥충 날개가 확인된 곳을 표시하기도 했다.

진파리 7호분 출토 금동투조장식판에 비단벌레 날개가 장식돼 있었다는 출처는 우메하라의 이 글에 뿌리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현존 유물 그 어디에도 비단벌레가 있었다는 흔적이 없다. 이에 더해 우메하라가 수록한 사진 또한 흑백인 데다 인쇄 상태 또한 극히 불량해 비단벌레의 흔적을 찾을 길이 없다.

그럼에도 다만 하나 분명한 것은, 비단벌레를 각종 장식품으로 활용하는 전통이 신라에서 광범위하게 유행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 이에 더해 고구려에서도 정말로 그런 전통이 있었다고 하면, 나아가 그런 문화 전통이 두 나라 사이의 영향 관계에서 나왔다면, 고구려가 신라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근거는 첫째, 진파리 7호분은 비록 이번 박물관 도록이 축조연대를 북한측 견해를 수용해 ’5-6세기’로 표기했지만, 아무리 빨라도 6세기 후반 이전으로 올라갈 수 없다는 남한 학계의 압도적인 견해로 볼 때, 비단벌레 장식품을 출토하는 황남대총을 비롯한 신라 고분들에 비해 축조연대가 무려 100년 이상 늦다는 점이다.

둘째, 비단벌레는 생태학적 특징에서 볼 때 지금의 북한 지역에서는 자생할 수 없거나, 그럴 가능성이 극히 희박한 곤충이다. 비단벌레는 한반도에서는 남부지역에서 산발적으로 보이는 것을 비롯해 열대나 아열대 기후에서 서식하는 곤충임이 이미 밝혀져 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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