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의 `산모택시 운전사’ 서지철씨

‘산모(産母) 택시 운전사’, ‘산모들의 친정 아버지’ 평양시 대동강구역에 자리잡고 있는 평양승용차사업소 내 ‘산원(産院)지구대’ 택시운전사 가운데 서지철(60)씨는 동료는 물론 시민들로부터 이렇게 불린다.

25일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총련)에서 발행하는 월간 ‘조국’ 7월호는 산모들을 위해 낮이나 밤이나 정성을 다하고 있는 서씨의 사연을 소개했다.

잡지에 따르면 21세 때부터 택시를 몰기 시작한 서씨는 1980년 북한 최대의 산부인과 병원인 평양산원이 개원되고 그가 속한 평양승용차사업소에 임산부들을 위한 산원지구대라는 택시사업소가 설립되면서 25년 동안 줄곧 ‘산모택시 운전사’로 일하고 있다.

산원지구대는 평양산원을 오가는 여성과 면회자들을 대상으로 사업하고 있다.

산원지구대 정강준 반장은 “우리 사업소의 택시 운전사들은 물론 시 안의 많은 손님들이 서지철 동무를 가리켜 ‘산모 택시 운전사’, ‘산모들의 친정아버지’라고 부르고 있다”며 “그 친절한 부름 속에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오로지 산모들을 위해 아낌없는 정성을 다 바쳐가고 있는 서지철 동무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담겨져 있다”고 말했다.

산원지구대 택시운전사들의 인건비는 도급제이다.

북한에서 임산부에 대한 택시비는 일반 손님들에 비해 저렴하게 책정돼 있어 자연히 수입이 감소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사업소 일꾼들은 다른 사람과 교대해 일반 손님을 위한 택시를 몰 것을 권유하고 있으며, 아내조차도 처음에는 월급은 적은 데다 일은 바쁜 관계로 탐탁치 않게 여겼다.

그러나 그는 “나는 산모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더 기쁘고 보람찬 일이다”며 “나는 한 생을 이렇게 살고 싶다”며 웃음을 짓곤 한다.

그가 이처럼 임산부를 위해 온갖 정성을 다하며 이를 기쁨으로 여기는 데는 특별한 사연이 깃들여 있다.

서씨를 임신한 그의 어머니는 해방되고 한 달 후 아이를 낳으려고 이웃집 여인과 집을 나섰다.

해방 직후인 터라 의료시설이 열악했던 그 당시 서씨의 어머니는 마을로부터 20여㎞ 떨어진 병원으로 걸어 가던 중 그만 의식을 잃고 길에 쓰러지고 말았다.

시간을 지체하면 산모와 태아의 생명이 위태로운 급박한 상황이었다.

그 때 화물 자동차 한 대가 달려와 이웃집 여인이 사정 이야기를 하자 많은 물건을 싣고 가던 그 운전사는 산모를 태우고 오던 길을 되돌아 갔으며 중간에 차가 고장나자 산모를 업고 병원에 달려가 서씨가 무사히 세상에 태어나도록 했다.

그의 어머니는 산후탈로 20여 년 전 세상을 떴다.

이런 사연을 어려서부터 어머니로부터 전해 들은 서씨는 자신도 크면 꼭 운전사로 일할 것을 결심했고, 1967년 무렵 북한에서 최초로 택시사업소가 설립되자 운전사양성소에 들어갔다.

그후 산원지구대가 창설되자 누구보다 먼저 자원해 이곳으로 옮겼다.

‘평양-40-939’ 번호를 단 산모택시를 몰고 있는 서씨는 오늘도 풋풋한 인정미에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임산부들을 위해 핸들을 잡고 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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