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시민 “4.15는 민족 최대의 짜증절”

조선에서 4월 15일은 최대의 경사스러운 날이라고 선전한다. 1998년부터는 민족의 태양이 솟아오른 날이라고 하여 ‘태양절’이라고 부르고 있다.

조선에서는 김일성을 ‘사회주의 조선의 시조’로 칭송한다. 한마디로 4월 15일에 김일성이 태어나지 않았다면 오늘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만약 김일성이 태어나지 않았다면 조선민족이 지금처럼 남의 나라의 원조를 구걸하며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전편으로 바로가기

그렇다면 김일성 생일이 왜 하필 ‘태양절’로 불리게 된 것일까?
1912년 4월 15일 김일성이 태어난 날에 대서양 바다에서 당시 최대 여객선이었던 타이타닉호가 침몰했다. 조선의 혁명역사는 타이타닉 침몰과 김일성 출생을 동서양의 운명이 뒤바뀌는 상징으로 해석한다. 타이타닉의 침몰은 서방세력의 몰락을 알리는 흉조이며, 김일성의 출생은 동방세력의 부상을 알리는 길조라고 떠든다. 동방세계의 운명을 바꾸는 태양이 떠올랐다며 ‘태양절’로 부르는 것이다.

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식량난으로 대아사 기간)은 김일성 생일에 대한 조선인민들의 생각과 태도도 바꾸어 놓았다. 공짜 선물이 차려지는 공휴일로 온 백성이 기다렸던 김일성 생일은 이제 백성들의 짜증이 극에 달하는 우울한 날로 취급된다. 특히 평양시민들이 받는 압박감은 더욱 심하다.

4월이 되면 평양시 전체는 4.15 명절 준비에 돌입한다. 5년, 10년 단위로 돌아오는 정주년(일명 ‘꺾어지는 해’)에는 특히나 행사가 더욱 늘어난다. 기본적으로 열병식,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군중시위, 횃불행진, 경축무도회 등 국가적인 큰 행사가 벌어지게 된다. 열병식과 집단체조 훈련은 그 준비기간만 1년이며, 군중시위, 횃불행진, 경축무도회 등은 3~4달 전부터 준비훈련이 시작된다.

평양을 중심으로 김일성 생일과 관련해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간단히 적어본다.

♦충성 결의 정치행사

중앙당 조직에서부터 ‘높은 정치적 열의와 빛나는 노력의 성과로 4.15를 뜻 깊게 맞이할 데에 대한’ 각종 총회들과 정치강연회가 벌어진다. 노동당,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직맹, 농근맹, 여맹 등의 초급단체 뿐만 아니라 소년단 분단 총회에서도 4.15 행사에 대한 목표를 세워야 한다.

이때 각급 단위는 4.15 직전에 새로 건설하는 혁명역사 기념관을 완공하겠다, 군 부대에 새로 김일성화 김정일화 온실을 건설하겠다, 좋은 일 하기 목표를 완성하겠다, 충성의 415문제풀이를 하겠다는 식의 목표를 제시해야 한다. ‘충성의 415문제 풀이’란 소학교, 중학교 학생들이 김일성 생일까지 415개의 수학문제를 틀리지 않고 풀도록 하는 것이다. 김일성 생일이 돌아오면 소학교 학생들도 괴로워진다.

♦‘꾸리기 사업’과 ‘분위기 고취 사업’

4월이 되면 온 나라 백성들이 달라붙어 겨울 흔적을 모두 없애고 전국을 새롭게 단장하는 ‘꾸리기 사업’이 진행된다. 새벽 5시가 되면 인민반장들이 집집마다 문을 두드려 사람들을 모두 불러 모은다. 주민들은 삽자루나 양동이를 손에 들고 자기 마을, 자기 아파트, 자기 구역에 대한 정리와 청소를 벌여야 한다.

건물을 새롭게 색칠하고 꽃밭을 정리하고 꽃모종을 새로 떠 옮긴다. 이때 옮긴 꽃모종은 어김없이 4월 15일에 활짝 꽃이 펴야 한다. 도로 포장과 정리사업도 진행된다.

출근과 등교 후에서는 소속 학교, 기업소에 대한 담당구역 꾸리기 사업에 참가해야 한다. 특히 평양시민들은 지방 사람들에 비해 곱절로 들볶이게 된다. 4월에는 평양을 찾는 외국인들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꾸리기 사업’과 함께 ‘분위기 조성 사업’도 벌어지는데 대표적인 것이 ‘직관호 전시 사업’이다. 직관호(직관판이라고 부르기도 함)란 나무 판자나 플라스틱 판 위에 김일성에 대한 충성을 형상화하는 그림, 선전구호 등으로 장식해서 전시하는 것이다. 이 직관호는 단위별로 등수를 매기는 경쟁 활동이므로 좀더 화려하고, 좀더 멋지게 꾸미기 위해 각 단위별로 돈을 모아 미술가를 초빙하는 일도 흔하다. 대학에서도 학부별로 직관호를 만들어 전시한다.

뿐만 아니라 각종 선전 포스터들이 거리 곳곳에 붙으며, 공화국 깃발과 입체 장식물들도 등장한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문구가 적혀 있는 영생탑에 대한 도색작업도 해야 하며, 영생탑 주변 화단을 정리하는 일도 있다.

이때에 단위별, 지역별로 전국 각지에서 희귀한 나무나 꽃, 심지어 은방울 뿌리들을 캐서 금수산기념궁전 수목원에 심어야 한다. 평양시에서는 야경 장식물 설치사업도 진행되는데 만수대 동상 주변, 인민문화궁전 앞, 봉화산 여관 앞의 가로수에는 줄 전등 장식물이 설치된다. 줄 전등 장식물이 설치되면 대학생들을 동원되어 경비를 서는데, 줄전등 장식을 훔쳐가는 사람들을 막기 위해서이다.

분위기 조성사업에는 사람도 포함된다. 평양의 여성들은 반드시 화려한 조선식 치마저고리를 입고 다녀야 하며 직장여성들은 단정한 양복치마를 입어야 한다. 할머니부터 유치원 꼬마들까지 예외는 없다. 대학생 처녀들은 대학생 치마저고리를 입지 않으면 대학 정문에 발을 들여 놓지 못한다. 남자들은 4.15에 맞춰 모두 이발을 해야 하고 셔츠에 넥타이를 맨 양복차림을 해야 한다. 남자 대학생들은 색깔이 너무 어둡거나 격자 무늬의 셔츠를 입어서도 안된다.

♦규찰대 활동

4월이 되면 규찰대 확동이 보다 강화된다. 불과 몇 미터를 사이에 두고 대학생 규찰대가 서게 되며 그 사이에 여맹 규찰대도 자리를 잡는다. 대학생 규찰대와 여맹 규찰대는 경쟁적으로 주민들의 복장이나 행동을 단속해서 검열에 걸린 사람의 소속직장이나 단위에 이를 통보한다. 때때로 조선 라디오 방송에 단속에 걸린 사람의 이름과 소속단위가 발표되기도 한다. 이럴 경우 그 사람의 소속단위 간부들까지 곤욕을 치루게 된다. 4.15를 앞두고 있는 평양시에서는 사소한 것 하나라도 ‘정치적 성격’을 띠게 됨으로 평양시민들은 큰 압박감을 느끼게 된다.

♦만경대 고향집 찾기

평양시민들은 4월이 되면 의무적으로 만경대 견학에 참여해야 한다. 지방 사람들은 해당 지역 김일성 동상 찾기에 동원된다. 각급 기관기업소 별로 날짜를 잡아 만경대 고향집 찾기 행사를 벌이는데 평양시 모든 단위에서 모두 참여하니 아무리 날짜를 잘 잡아도 ‘사람사태’를 피할 수 없다. 다른 단위 사람들에 파묻혀 자기가 소속된 단위의 행렬을 놓치게 되면 총화 때 욕을 먹는 경우도 있다.

만경대 고향집에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소속 단위별로 줄을 지어 참관을 시작하는데 수많은 인파 속에서 걷고 또 걸어야 한다. 평양 시민들은 유치원 때부터 시작해서 해마다 4월이면 빠짐없이 이곳을 찾기 때문에 이 골목 뒤에는 무엇이 있고, 어느 길을 지나면 만경봉이 있다는 식으로 그 곳 지리를 훤히 꿰뚫고 있다.

우선 만경대에 꾸려진 김보현․리보익(김정일의 증조부모) 묘지와 김형직․강반석(김정일의 조부모) 묘지에 꽃다발을 올려 놓고 인사를 한다. 다음으로 만경대혁명사적관을 돌아보고 만경대 생가를 거쳐 만경봉에 올라갔다 내려오는 것이 이날 정해진 코스다.

이 과정에서 학습터(김일성이 독립운동을 계획하며 학습했다는 곳), 군함바위(김일성이 “일본놈을 쳐부수자”고 외치며 아이들과 미끄럼을 타고 놀았다는 군함 모양의 바위), 샘물터 등을 거치게 된다. 이 코스를 마무리 하려면 보통 2~3시간을 걸어야 하는데 만경봉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려면 적지 않게 피곤하다.

만경대 고향집 찾기는 시장의 장사꾼들로 날짜를 정해 조직적으로 참관해야 하므로 그날은 시장이 문을 닫게 된다. 통일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금수산기념궁전 참관

금수산 기념궁전 참관은 한 단위에서도 특별히 선별된 사람들만 참여할 수 있다. 지방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올라온다. 참관 대상자로 결정되면 일주일 전에 행사 명단을 작성하고, 평양시민증(공민증)과 대조해 신원조회를 마친다. 참석자들은 참관 당일 전에 다시 모여 해당 당위원회에 출두해서 다시 신원조회를 받아야 한다.

참관 당일에는 최고로 화려한 옷을 입고 아침 7시에 집합장소에 나가야 한다. 7시부터 모여서 인원확인을 하고 마지막 신원조회를 받는다. 신원조회까지 마치면 입장 시간까지 그 자리에서 대기해야 하는데 여기서도 ‘맹랑한 일’이 펼쳐진다.

만약 A단위에 허락된 참관 인원이 30명이라고 하면, A단위에서는 35명을 집합시킨다. 이중 5명은 ‘참관 후보’다. 후보 5명은 참관 당일 예기치 못한 사고가 생겨 결원이 생길 경우를 대비해서 선발된 사람들이다. 만약 정해진 인원이 아무 사고 없이 참석하게 되면 후보 5명은 참관도 못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아침 7시까지 도착하기 위해 궤도전차가 다니지도 않은 새벽부터 2~3시간을 걸어서 집합장소에 모였던 후보들은 맥없이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 얼마나 맹랑한 일인가?

오전 8시부터 단위별로 금수산기념궁전으로 입장한다. 입장 전에 평양시민증(공민증)과 옷차림에 대한 검열이 이루어진다. 수염을 제대로 깎지 않았거나 두발 상태가 불량한 사람들은 물론 구두에 먼지가 묻은 사람들도 입장에서 제외된다. 뿐만 아니라 금속제품(허리띠의 버클조차 금지됨)을 소지하는 것도 금지되며, 손수건도 통제 품목이다.

이날 지각하거나 입장 단속에 걸린 사람들은 수령님을 만나 뵙는 ‘1호 행사’를 파탄시켰다는 이유로 ‘정치적’으로 제기된다. 이들은 이후 몇 개월 동안 ‘자기비판’과 ‘사상총화’에 시달려야 한다.

◆충성의 노래모임

<햇빛같은 미소 그립습니다> <영생의 모습> <수령님 계시는 만수대> <그리움의 대하> <우리민족 태양절> 등의 노래에 맞춰 춤과 시낭송으로 엮어진 노래모임이 단위별로 진행된다. 당선된 작품들은 4월 15일 단위별 행사 때 다시 연출된다.

◆꽃바구니 증정식

4월 15일 아침 단위별로 준비한 생화 바구니를 해당 지역에 위치한 동상, 유화작품 앞에 올려놓고 인사한다. 생화는 충성심이 우러나는 개인들이 나름대로 준비해서 바친다. 이때 간부들은 꽃바구니 하나에 자신의 이름을 적어 붙이기도 한다. 꽃바구니가 크고 화려하면 표창장을 받을 수도 있다.

◆그외 행사들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이라는 행사도 벌어지는데 김일성의 출생과 혁명활동 업적을 묘사하는 공연들이 이어진다. 각 단위별로 지정된 극장에 가서 공연을 관람하고 감상문을 적어내야 한다.

-‘김일성 노작 연구 토론회’가 열리는데 이것 역시 평양시민들과 대학생들이 참여해야 하는 행사 중에 하나다.

-단위별로 모여 앉아 4월 15일에 TV에서 방송되는 ‘4.15경축 중앙보고대회’를 시청하고 이에 대한 소감과 결의를 발표해야 한다.

-평양에서는 탁아소, 유치원, 소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선물 증정식’이 열리게 된다. 김일성이 살아 있을 때는 교복, 책가방, 학습장, 필기도구들이 선물로 내려왔지만 오늘날에는 보통 당과류 1kg이 고작이다.

-4월 14일부터 4월 18일까지는 ‘특별경비주간’이 선포된다. 김일성의 생일을 맞아 반동분자들이 책동이 있을 수 있다는 이유로 당일꾼을 비롯한 각급 일꾼들이 경비책임자가 되어 유동 인구를 검열, 통제하는 것이다.

-‘김일성화, 김정일화 축전’이 열리게 된다. 평양을 비롯한 전국의 김일성화 김정일화 온실에 대한 참관 활동이 벌어진다.

-‘4.15경축 야외무도회’가 열린다. 평양에서는 김일성 광장에서 대학생들의 야외무도회가 열린다. 이 무도회도 3~4개월 전부터 선발되어 훈련을 마친 대학생들이 벌이는 공연이다.

-김일성 생일을 맞아 전국 도, 시, 군별로 소년단 입단식 행사가 열리게 된다.

-4월 17일에는 ‘충성의 선서모임’이 진행된다. 아침 일찍 단위별로 모여서 당비서의 선창에 따라 김정일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선서를 외쳐야 한다.

아들의 선전도구로 전락한 김일성의 운명

개인이건 국가건 죽은 사람의 출생일에 맞추어 이처럼 광범위한 소동을 펼치는 곳은 아마도 조선밖에 없을 것이다. 어릴 적 나는 김일성을 직접 만나보는 것이 일생일대의 꿈이었다. 그러나 그 꿈은 결국 개꿈으로 머물렀다. 금수산기념궁전에 조용히 누워있는 김일성을 먼발치에서 슬쩍 바라보는 것으로 끝났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미묘한 심정에 빠졌던 것 같다. 그 껍데기는 더 이상 위대한 수령님이 아니었으니까.

2006년 4월 내가 마지막으로 김일성 시체를 구경했을 때 나는 한 가지 다짐을 하게 됐다. 나중에 자식을 낳게 되면 정말 제대로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나를 낳고 지금까지 이렇게 키워준 우리 부모님께 진심으로 감사하게 되었다.

김일성은 제 자식을 잘못 키운 죄로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 영원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인간의 운명에서 제외되고 말았다. 자식 하나 잘못 키운 죄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가혹한 대가로 생각되기도 한다. 하지만 나의 해석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제 아버지의 시신조차 권력의 선전도구로 이용하는 사악한 아들에게 나라를 물려준 것은 김일성 자신이니까 말이다.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