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시민 가슴에 제대로 꽂힌 ‘뉴욕필’

북한의 수도 평양에서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미국의 국가(國歌) ‘별이 빛나는 깃발(Star-Spangled Banner)’이 울려 퍼졌다.

로린 마젤이 이끄는 뉴욕필은 26일 오후 6시6분 북한의 국가인 ‘애국가(1947년 김원균 작곡)’ 연주하며 평양 동평양대극장에서 TV를 통해 전 세계로 생중계 되는 역사적인 ‘2008 평양 공연’을 시작했다.

동평양대극장 무대 양쪽에는 인공기와 성조기가 나란히 게양됐고, 1천500여 객석을 가득채운 내빈과 평양시민들은 기립한 채 긴장된 표정으로 세계 최정상의 연주자들이 뿜어내는 양국 국가 연주를 지켜봤다.

본 공연 첫 작품으로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 3막 서곡이 연주됐고, 이어 마젤의 곡 설명 후 드보르작의 ‘신세계 교향곡’이 이어졌다. 지휘자 마젤은 신세계 교향곡을 설명하면서 우리말로 “좋은 시간 되세요”라고 말해 잔뜩 긴장해 있던 평양시민들의 마음의 문을 열었다.

뉴욕필은 이어 거슈윈의 ‘파리의 미국인’을 연주했으며, 마젤은 곡 설명에서 “언젠가 ‘평양의 미국인’이 나올지도 모른다”며 관객들의 웃음을 유발하는 재치를 발휘했다. 마젤은 또 평양시민들을 의식한 듯 “즐겁게, 즐겁게 감상하세요”라는 우리말을 선보여 공연장의 분위기를 한껏 부드럽게 만들었다.

본 공연 후 뉴욕필은 앙코르를 요청하는 관객들을 향해 비제의 ‘아를르의 여인’ 중 파랑들레를 선사했으며, 두 번째 앙코르 곡이었던 번스타인의 오페라 캔디드 서곡의 연주까지 끝나자 관객들은 기립박수로 호응했다.

이날 공연의 절정은 세 번째 앙코르 곡 ‘아리랑’으로 꽃을 피웠다. 뉴욕 필이 북한 작곡가 최성한이 작곡한 아리랑을 연주하자 공연 내내 긴장하고 있던 평양시민들의 얼굴이 완전히 밝아졌다. 일부 관객은 흐느끼거나 눈물을 닦는 관람객들도 보였다.

평양시민들은 아리랑 연주가 끝나자 무려 5분 동안 기립박수를 화답했고, 일부에서는 ‘브라보’를 외치며 퇴장하는 연주자들에게 손을 흔들기도 했다. 뉴욕필 단원들은 환호하는 평양시민들에게 일일이 손을 흔들며 퇴장 발걸음을 늦췄고, 마젤은 세 번이나 무대에 다시 오르며 관객들의 환호에 예의를 갖췄다.

그러나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김정일의 ‘깜짝 등장’은 끝내 이루어 지지 않았다.

이와 함께 이번 뉴욕필 평양공연을 생중계 했던 MBC카메라에는 다양한 화면들이 잡혀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었다.

객석에는 대학생을 상징하는 하얀 셔츠에 붉은 계통의 넥타이를 맨 양복 차림의 청년들이 대거 자리를 차지했다. 남성 관객들이 모두 양복 정장 차림을 하고 있어 군부인사와 당 간부들은 배제하고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이나 근로단체에서 참석자를 선발한 것으로 보였다.

특히 북한은 뉴욕필 공연을 통해 군사적 대립이 아닌 문화 이벤트를 통해 미북간 화해 제스처를 보여주려는 고민의 흔적들이 역력했다.

여성들의 경우 한복과 서양식 정장 차림이 다양하게 섞여 ‘조선민주여성동맹’이나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예술단체 관계자들이 자리를 차지한 것으로 추측된다. 북한은 전세계 이목을 의식한 듯 객석의 여성들은 대부분 짙은 화장에 목걸이, 귀걸이, 머리끈 등 화려한 장신구로 치장하고 있었다.

뉴욕필 공연을 평양 현장에서 생중계했던 MBC 신동호 아나운서는 공연이 끝나고 밖으로 나오는 시민들과 직접 인터뷰를 통해 소감을 묻기도 했다.

즉석에서 인터뷰에 응한 만수대예술단 작곡가 한성희 씨는 공연감상 소감을 묻는 질문에 “드보르작 교향곡 ‘신세계’ 연주가 인상적”이라며 “(미국에 박해 받던) 인디언들에 대한 동정심, 조국에 대한 그리움을 잘 연주했다”고 다소 엉뚱한 대답을 내놨다.

한 씨는 또 신 아나운서를 향해 “우리가 이렇게 만나게 된 것은 6.15공동선언 합의에 의해 상봉마당이 생겼기 때문”이라며 “앞으로 방송활동 할 때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쳐 민족공조를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해 순간 진행자들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한편, 북한은 이번 공연을 통해 미북간 관계개선의 시금석을 다졌다는 평가다. 또한 뉴욕필 공연이 전 세계로 생중계되면서 그동안 ‘핵실험’을 통해 ‘불량국가’‘테러국가’라고 이미지가 덧씌워진 부정적 이미지를 한껏 털어냈다는 평가가 제기되고 있다.

지난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김정일이 전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자신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씻어 냈듯이 이번에는 뉴욕필 공연을 통해 ‘북한’이라는 국가의 이미지를 한층 업그레이드 시켰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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