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서 펼쳐진 ‘열 다섯 아이들의 통일축구’

“바로 여기가 1930년대 그 유명한 경평(京平) 축구로 이름을 날리던 곳입네다.”

지난 9일 오후 평양 중심부 김일성경기장.

북에서 나온 안내원은 해방 전 평양공설운동장으로 만들어진 이 경기장이 1945년 김일성 주석의 귀환 연설 이후 김일성경기장으로 이름을 바꿨다고 설명했다.

경기장 정문 쪽으로는 개선문과 대동강변이 내려다 보이고 뒤로는 모란봉이 올려다 보인다.

1929년부터 1946년까지 경성(京城.서울)과 평양(平壤) 축구팀이 교환 경기를 치렀던 곳이기도 하다. 서울에선 첫 대회를 휘문고보 운동장에서 열고 그 다음엔 동대문운동장에 평양팀을 불러들였다.

해방 이듬해까지 열린 경평축구는 38선이 가로 놓여지면서 중단됐다.

그리고 1992년과 2002년, 2005년 남북통일축구라는 이름으로 세 차례 남북대표팀 친선경기가 치러졌다. 장소는 모두 국내였다.

이날 김일성경기장에선 ‘작지만 의미있는’ 또 하나의 남북 통일축구가 펼쳐졌다.

인천 유나이티드FC 15세이하(U-15) 청소년팀과 북한 4.25체육단 같은 또래 청소년팀의 한 판 승부.

좌석을 떼면 무려 10만명을 수용한다는 김일성경기장엔 인천시, 인천 유나이티드, 대북 인도지원사업 NGO ‘평화3000’에서 온 150명의 대표단만 앉았다.

아무런 타이틀도 걸리지 않은 연습경기였지만 그래도 승부는 불꽃을 튀겼다.

인천 대건고 입학 예정 선수들이 주축을 이룬 인천 유나이티드 U-15팀은 미처 발을 맞춰볼 시간이 적었던 탓인지 실수가 많았다.

반면 인천팀을 맞이한 4.25체육단 아이들은 홈팀의 이점을 충분히 살려 강인한 압박전을 폈다.

전반 25분 4.25체육단이 먼저 골문을 갈랐다. 초반부터 큰 스타디움의 규모에 눌려 왠지 좀 경직돼있던 인천팀 수비수들이 공격수를 놓치는 사이 로빙슛이 네트를 흔들었다.

인천팀은 후반 맹반격에 나섰지만 골 결정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0-1로 졌다.

일반 관중이 없어 고요한 경기장에선 ‘야, 올라가라우’ , ‘뭐하는 거야, 막아, 막아!” 등 남북 양측 벤치의 고함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경기장 한쪽에선 1966년 잉글랜드월드컵 8강 신화를 만들어냈던 북한 축구 영웅이자 수문장인 리창명이 남북 후배들의 플레이를 지켜봤다.

리창명은 박두익, 박승진과 함께 북한 축구를 이끌었던 명 골키퍼. 당대 세계 최고 골게터였던 포르투갈의 ‘흑표범’ 에우제비우와 맞서 빛나는 선방을 펼친 것으로 유명하고 영화 ‘천리마축구단’을 통해서도 국내에 소개됐다.

경기가 끝난 뒤 안상수 인천시장과 안종복 인천 유나이티드FC 사장은 그라운드에 내려가 남과 북 꿈나무들의 손을 잡았다.

‘실험적인 교류전’이었지만 양쪽 청소년 클럽끼리 북녘 땅에서 처음 맞대결을 벌였던 터라 의미가 남달랐다.

인천팀 주장 심규동은 “이렇게 평양에 와서 경기를 하게 되니까 너무 기쁘다. 다른 경기보다 더 열심히 뛰려고 했다”며 “북한 선수들의 기량이 뛰어났다. 스피드와 조직력도 좋았고 무엇보다 악착같이 하는 면이 놀라웠다”고 말했다.

“여기 와서 해보니까 ‘우린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는 그는 ‘작은 통일축구’를 경험한 자신이 뿌듯한 듯 했다./연합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