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리 프로세스는 우라늄 핵개발 대응책”

미국의 클린턴 행정부가 대북정책의 근본적 재검토와 전환을 위한 이른바 ‘페리 프로세스’에 착수했던 것은 북한의 우라늄농축 프로그램의 존재를 알게 된 때문이었다고 클린턴 행정부 때 고위관계자와 민간 전문가가 말했다.

지금까지는, 북한의 1998년 8월말 대포동 미사일 시험발사(광명성1호)와 2차 발사 준비, 금창리 지하 핵의혹 시설, 이들 문제로 인한 미 의회 공화당측의 대북 강경론 무마 등이 페리 프로세스의 배경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북.미 제네바합의 때 미국측 수석대표였던 로버트 갈루치 조지타운대 에드먼드 월시 국제대학장은 지난 22일 한미연구소(ICAS) 세미나에서 “최소한 내가 알기로는,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이 원심분리기 부품을 파키스탄으로부터 도입한 게 제네바합의와 어긋나며, 속인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었다”고 말했다.

갈루치 학장은 “북한이 원심분리기를 몰래 수입한 것은 (우리를) 속인 것이며, 그에 대한 클린턴 행정부의 대응이 새로운 협상을 계획(plan)하는 것, 즉 페리 프로세스였다”고 말했다.

그는 또 페리 프로세스는 “한마디로, (북한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받아내기 위해 더 많은 것을 주는 것이었다”며 “새로운 대북 딜(deal)은 첫번째(제네바합의) 것보다 투명성을 높이고 북한의 기만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목표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부시 행정부가 2001년 출범했을 때, “북한의 기만행위가 공개적으로 알려졌던 것은 아니나 부시 행정부는 알고 있었다”며 “부시 행정부의 이념은 이러한 북한과 협상은 부도덕하고 비효과적이라는 것”이라고 이후 부시 행정부의 대북 직접 협상 거부를 설명했다.

이와 관련, 25일 미 하원 청문회에서 만난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 소장도 클린턴 행정부가 북한의 우라늄농축 계획의 존재를 알고 있었을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문제는 클린턴 행정부가 얼마나 알고 있었느냐”라는 것이라고 말하고 “부시 행정부가 놀란 것은 북한이 원심분리기를 수천기 구입하려는 것을 알고서였다”며 “그 이후 상황이 질적으로 바뀌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두 사람 말과 달리 클린턴 행정부 때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샌디 버거는 지난 2004년9월 매일경제신문 등이 공동주최한 포럼에서 클린턴 행정부 시절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 핵개발 사실을 알았었느냐는 질문에 “당시는 정보가 없었다”고 말했었다.

버거 전 보좌관은 “나중에 콘돌리자 라이스 국가안보보좌관(2004년 당시)에게 이 문제에 관해 물어보니 ‘당신들(클린턴 행정부)은 알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거듭 몰랐던 사실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한달 뒤인 10월 마크 커크 하원의원(공화)은 “클린턴 행정부 시절인 1999년부터 북한의 우라늄 핵개발 정보가 수집되기 시작, 당시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도 알고 있었다”고 버거 전 보좌관의 주장을 반박했었다.

커크 의원은 “부시 행정부는 그러나 처음엔 이 정보를 비밀로 해두고 한반도 에너지개발기구(KEDO)에 대한 지원을 계속하다가, 2002년 10월 특사로 방북한 제임스 켈리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에게 북한이 우라늄 핵개발을 시인해” 지원을 중단하게 됐다고 말했다./워싱턴=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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