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방미인이 경영하는 北구두공장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 인터넷판은 24일 평양발 기사로 조선기자동맹과 조선미술가동맹 맹원(회원)이자 평양구두공장 지배인으로 근무하는 리동찬(55)씨를 소개했다.

리씨는 지난해 독일에서 개최된 국제미술전람회에 소묘 작품을 출품한 화가이면서 1970년대부터 노동신문 등 각종 출판물에 생산현장의 소식을 전하는 ‘노동통신원’으로 활약해왔다.

그가 평양구두공장 지배인으로 부임하게 된 것은 ’고난의 행군’ 시기로 불리던 1997년. 이 공장은 1970년 서독에서 최신 설비를 도입, 연간 150만켤레의 생산 능력을 갖춘 공장이었지만 그가 부임할 당시는 전력난과 자재난으로 제대로 공장이 돌아가지 않았던 때였다.

리씨는 “당시만 해도 서독 설비로 생산공정을 꾸렸다는 게 대단한 일이었지만 30여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설비의 정밀도도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회고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그는 2003년 연 100만 켤레를 생산할 수 있는 대만산 설비의 도입을 결단했다. 리씨는 이를 ‘현대적인 구두공업의 창설’로까지 평가했다.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 조치를 실시, 개별 공장.기업소에서도 무역거래를 할 수 있도록 허용됨에 따라 외국에서 임가공 주문을 받아 도입 자금을 충당하는 방식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리씨는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구두공업 부문은 임가공을 통해 출로를 찾아야 한다”며 “국가적 견지에서 봐도 새로운 투자를 하지 않아도 생산 증대의 조건을 갖춰나갈 수 있는 방도가 바로 임가공”이라고 강조했다.

평양구두공장은 7.1 조치로 종합시장이 생기면서 소비자들의 기호에 맞춰 품질 및 디자인 개선에 힘을 기울였다. 이전에는 20여 종의 구두를 생산하는 데 그쳤지만 그가 지배인으로 부임한 이후에는 109종에 달하는 구두를 생산했다.

그 역시 화가로서의 재능을 살려 구두 디자인에 참여하기도 했으며 기자로 활동한 경력을 살려 생산 속보를 제작해 종업원들의 생산 의욕도 고취시켰다.

중국산보다 가격은 훨씬 싸면서도 품질은 뒤지지 않는 구두를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생산에 매진한 결과 지금 시장에서는 중국산 구두를 제치고 이 공장에서 만든 ‘평양구두’가 인기를 끌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공장은 얼마 전 노동당 창건 60돌(10.10)을 맞아 ’생산 전투’에 돌입해 ‘명절공급’용으로 1만5천 켤레의 여자 대학생용 구두를 생산, 시장가격보다 싼 국정가격으로 공급했다.

그 결과 34년 경력을 가진 종업원 리용순씨는 북한돈으로 5만원을 성과급으로 받았다. 북한의 보통 노동자 평균 월급이 북한돈으로 월 2천∼3천원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엄청나게 높은 보수인 셈이다.

리씨는 “우리 인민들이 다른 나라에서 만든 구두를 신고 다닐 필요는 없습니다.우리가 만든 ‘평양구두’는 막강한 경쟁력을 지니고 다른 제품을 밀어낼 것입니다”라며 자신감을 나타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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