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 직통전화는 남북대화의 역사

북한이 단절을 일방선언한 판문점의 남북간 직통전화엔 남북관계의 굴곡과 남북대화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직통전화는 동족상잔의 전쟁을 겪고 20년만에 비로소 시작됐던 남북대화와 함께 탄생해 지난 37년간 남북간을 상시연결하는 채널로 역할했다.

남북관계의 골이 깊어지는 상황이 와도 이 직통전화의 존재는 박정희 대통령 때인 1971년 시작된 남북대화의 지속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남북간 직통전화를 운영하는 것은 당국간 대화나 이산가족 문제 차원에서 남북이 서로 연결돼 있다는 안도감의 표현”이라는 김영철 한적 사무총장의 말은 이러한 상징성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1971년 8월 당시 대한적십자사 최두선 총재가 남북적십자회담을 제의해 9월20일 열린 제1차 남북적십자 예비회담에서 의사소통로 필요성에 공감한 남북 양측은 이틀 뒤 판문점 남측 ‘자유의 집’과 북측 ‘판문각’ 사이에 2회선을 개설해 첫 통화를 시작했다.

직통전화 개설 이후 적십자 회담이 본격화되면서 남북 적십자는 판문점에 대표부를 설치하고 본격적인 남북대화 시대를 열었다.

그 이후 남북 양측은 정치, 군사 등 각종 당국간 문제로 상호 연락을 취할 때도 판문점에 설치된 직통전화 2회선을 주로 이용했다.

김연철 전 남북연락사무소장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북쪽의 김영주 조직지도부장 사이에 체결된 7.4남북공동성명도 결국 이 직통전화를 통해 방문일정을 조정해 만남이 이뤄지면서 가능했었다”고 말했다.

남북 직통전화는 1976년 8월18일 도끼 만행사건 직후 등 남북관계가 매우 악화됐을 때 몇 차례 두절된 적은 있으나 이번처럼 어느 한쪽이 단절을 언명한 적은 없다.

통일부 관계자는 “직통전화 두절이라는 것은 매일 아침 점검할 때 우리가 전화를 걸어도 북측이 안 받는 경우를 말한다”며 “전화선을 완전히 철수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일방이 받지 않으면 두절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판문점 적십자 직통전화는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에 의해 당국간 연락사무소가 운영됨에 따라 당국간 연락채널로도 혼용돼 왔고 당국에서 파견된 연락관이 적십자 연락관도 겸했다.

그동안 남북 적십자간 주고받은 이산가족 명단 등도 사실은 당국의 연락관이 받아서 적십자사에 전달해 왔다는 점에서, 북한의 판문점 적십자 대표부 폐쇄 및 직통전화 단절은 사실상 당국간 채널의 소멸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손인교 전 남북회담사무국장은 “과거 직통전화 두절 국면은 북쪽 연락관들이 연락사무소에 있으면서도 전화를 받지 않았던 것이어서 경색국면이 풀리면 자연스럽게 통화도 다시 이뤄졌는데 이번 같은 경우는 처음”이라며 “김대중 정부 시절 중국에서 남북대화를 ‘만들어’ 국내로 가지고 올 수 있었던 것도 이 전화라인이 있어 남북간 상시 의사소통이 가능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남북관계가 사실상 끊겼던 김영삼 정부 시절에도 직통전화와 판문점 연락대표부가 가동되지는 않았지만 살아있었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 직통전화는 자연스럽게 남북간 소통로 역할을 하게 됐다.

북한의 김경필 서기관 미국 망명사건이 발생한 뒤 북한 림동옥(사망) 통일전선부장은 1999년 1월 ‘뜬금없이’ 임동원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에게 이 직통전화를 통해 항의서한을 보내오기도 했다. 두 사람은 그 이전 남북 고위급 회담을 통해 안면을 익힌 사이.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 앞서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베를린 선언’을 발표했을 때 우리 정부는 선언 내용을 판문점 대표부를 통해 사전에 북측에 전달하기도 했다.

남북한 사이에는 판문점 직통전화 이외에도 ▲서울-평양(회담지원용, 경제회담용, 적십자)간 ▲대구관제소-평양관제소간 ▲남북 해사 당국간 ▲남북 군사당국간 ▲금강산 관광지원용 ▲대북 경수로 사업용 등의 직통전화가 있거나 있었다.

서울-평양간 직통전화는 7.4남북공동성명에 따른 조절위원회와 경제회담 등을 위해 개설됐지만 현재 사용되지 않고 있고, 남북 군사당국간 라인을 제외하고 여타의 남북간 전화선은 제한된 기능적인 목적에서 개설된 것들이다.

남북 군사당국간 전화선은 북한 군부의 강경한 입장을 전달하는 일방적 소통로 역할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주목되는 대목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 합의에 따라 개설된 남북간 핫라인의 작동 여부.

핫라인은 박정희 대통령 때 이후락 부장과 북쪽의 김영주 부장 사이에 연결됐었고, 전두환 대통령 때인 1986년 3월 장세동 안기부장 및 박철언 안기부장 특보와 북측의 허담 대남비서와 한시해 통일전선부 부부장 사이에 이른바 ’88라인’이 운용된 적이 있다.

이 핫라인은 노태우 정부 때까지 가동되면서 노태우 대통령의 ‘북방정책’을 뒷받침하다 1990년 고위급회담으로 남북간 공식 대화채널이 열리면서 핫라인으로서 기능과 역할을 상실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중 대통령때 연결된 핫라인은 2002년 제2차 연평해전 등 위기상황에서 남북간 갈등을 완충하는 역할을 했고, 노무현 대통령 때는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 참가를 위해 북측을 설득하는 창구로 활용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한 대북 전문가는 “판문점 대표부와 직통전화의 폐쇄와 단절은 남북간 정치적 관계가 사실상 박정희 대통령 이전 시기로 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남북 지도부의 의지 없이는 핫라인의 가동이 어려운 만큼 남북간 정치적 연락채널 복구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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