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핵폭탄의 아버지’로 불리는 압둘 카디르 칸(72) 박사가 북한이 지난 2000년에 파키스탄으로부터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에 사용되는 ‘원심분리기’를 제공받았다고 밝혔다고 AP통신이 4일 보도했다.
칸 박사는 이날 AP통신과의 전화인터뷰에서 우라늄 농축 장비인 원심분리기가 지난 2000년 파키스탄에서 파키스탄 보안요원들의 감독하에 북한 항공기에 선적됐다고 말했다.
또한 파키스탄군이 이 원심분리기가 북한 항공기에 선적된 것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며 지난 1999년 쿠데타로 권력을 잡았던 당시 군 참모총장이었던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의 동의하에 보내졌음에 틀림없다고 밝혔다.
칸 박사는 지난 2004년 북한을 비롯해 이란, 리비아에 대한 핵기술 이전 책임은 전적으로 자신에게 있다고 ‘고백’, 파키스탄 정부나 군의 개입 의혹을 부인했었다. 하지만 칸 박사가 자신의 핵기술 이전 활동에 무샤라프 대통령도 관여돼 있음을 주장하고 나섬에 따라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파키스탄은 그동안 파키스탄군이나 정부가 북한과 이란, 리비아 등에 핵기술을 이전한 것으로 알려진 칸 박사의 핵확산 활동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주장을 계속 부인해왔다.
미국도 그동안 무샤라프 대통령에 대한 국내외의 강력한 반발과 저항에도 불구하고 테러와의 전쟁에서 동맹국으로서 핵심역할을 하고 있는 점을 의식, 무샤라프를 두둔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왔다.
그러나 칸 박사의 주장대로 무샤라프 대통령이 핵확산에 개입했거나 이를 묵인한 사실이 입증될 경우 미국 정부로선 상당히 곤혹스런 상황에 처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2004년 TV 회견에서 핵기술 확산과 관련 자신의 책임만을 주장한 데 대해 칸 박사는 당시 집권당 인사들로부터 그렇게 하는 게 국익에 부합한다고 설득당했고 그 대가로 ‘완전한 자유’를 약속받았지만 지켜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칸 박사는 이어 지난 1999년에 북한으로부터 견착식 휴대용미사일을 구매하기 위해 파키스탄 군 장성들과 함께 자신이 북한을 방문했었던 사실을 고백했다.
이처럼 거듭된 칸 박사의 북한에 대한 핵기술 및 장비 전달 주장은 북핵 문제에도 불똥이 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은 북한이 플루토늄 핵프로그램과 별개로 UEP를 통해 핵무기 개발을 추진해왔으며 북한도 지난 2002년 10월 이를 인정했었다고 주장해왔지만 북한은 그동안 공식적으로는 이를 부인해왔다.
또 미국은 북한이 완전하고 정확하게 모든 핵프로그램을 신고해야 한다며 UEP 활동도 핵신고 내용에 포함할 것을 요구해왔다. 하지만 북한이 최근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에 제출한 핵프로그램 신고서에 이를 포함시키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어 논란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미국 내에서도 의회 등을 중심으로 북한의 UEP와 핵확산 의혹을 ‘간접시인’ 방식으로 처리하기로 한 데 대해 노골적인 반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를 의식한 듯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지난 1일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진행된 특별 강연에서 “이번 신고가 최종 단계가 아니다”면서 “우리는 부분적인 비핵화에는 관심이 없고 완전한 비핵화로 나아갈 것”이라며 사태 수습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