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부대 정찰병, 경무원(헌병) 두들겨 패다

▲북한군 저격 경보병(특수부대)들의 야외훈련

나에게는 지금도 있지 못할 추억의 군 생활이 있다. 대한민국에 입국한 지도 10여 년이 되지만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

때는 1992년 여름, 전방 군단내의 각 정찰부대(특수부대)들이 활발하게 여름 야외훈련을 할 때였다.

우리부대는 정찰조의 장거리 무전통신 훈련을 위해 멀리 강원도 옥평(문천시와 함남 고원 사이)의 한 야산 기슭에 반(半)토굴 분대용 병실(내무반)을 구축했다. 그곳에서 본부와 교신훈련을 하고 있었다.

전방에만 있다가 모처럼 후방에 진지를 구축한 우리는 주변의 옥평이며 문천, 고원 시내에 툭 하면 놀러 다니기 일쑤였다. 강원도 심심산골에서 매일 황량한 산봉우리만 쳐다보던 우리에게 그곳은 평양 부럽지 않은 도시 같았다.

나는 주말이면 외출허가를 받아 고원에 놀러 다녔다. 그런데 당시 고원 기차역 옆에는 108 훈련소 제1여단 보위소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이들의 주 임무는 평양-무산행∙무산-평양행∙평양-혜산행∙혜산-평양행 등의 열차에 승차하여 출장 중인 군인, 안전원(경찰)들에 대한 신분조사 검열을 실시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연히 만나 알게 된 보위소대(국군의 기무사 군인에 해당) 친구들의 간단한 부탁을 들어주면서 나는 그 친구들과 아주 친한 관계를 갖게 되었다.

보위소대 친구들이 나에게 한 부탁은, 우리가 교방(남조선군으로 위장한 침투) 훈련을 할 때 사용하는 ‘국군 군화'(워커) 세 컬레를 구해 달라는 거였다. 외부활동을 많이 하는 보위소대 군인들은 반짝반짝 빛나고 폼 나는 남조선 워커를 가지고 싶어 한다. 북한군 군화보다 질도 좋고 발도 편해, 제대 군인들이나 일반 군인들이 꼭 갖고 싶어하는 것이 워커다.

뭐, 우리야 부대 특성상 국군장비로 완전 무장하니까, 창고에 있는 워커쯤이야 아주 가까운 친구에게는 줄 수 있는 물건이었다. 그 덕분에 툭하면 보위소대에 가서 술도 얻어 마시고 융숭한 대접을 받곤 했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 저녁, 그날도 일찍 보위소대에 놀러가 술이 서너 순배쯤 돌았을 때였다. 보위소대 친구들이 아주 심각한 인상으로 부탁이 또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부탁인즉 고원에 주둔한 경무부(국군의 헌병대) 녀석들이 미워 죽을 지경이니 손 한번 봐달라는 제의였다. 이유인즉 북한군 어디에서나 흔히 그렇듯이 보위소대와 경무부 간에 미묘한 라이벌 의식이 강해 마찰이 끊이지 않고 자존심을 건 기 싸움이 상당하다는 것이었다. 본격적인 물리적 충돌까지는 없었지만 하여간 서로 개와 고양이 관계라는 것이다.

원래 보위소대와 경무부 애들이 북한군에서 가장 껄끄러운 녀석들임이 틀림없지만 일단 술 마신 놈의 배짱답게 “알았다, 낼 손봐줄게” 하고 한마디로 승락해 버렸다. 그 덕에 보위소대 애들이 내준 108훈련소 보위부장의 군용 지프까지 얻어 타고 훈련지로 돌아왔다.

또 빽(힘) 좋은 보위소대 애들이 챙겨주는 술과 군짓거리(군것질)를 한 보따리 가지고 돌아오는 재미도 짭짤했다. 그러면 집 떠나 훈련장에서 목구멍에 털 날 지경이라는 지휘관들도 여간 좋아하지 않는다.

다음날 소대에서 펀치력 좋고 배짱 두둑한 함경남도 홍원 출신의 변00중사, 자강도 중강 출신의 군단 유도선수 출신의 동00 중사, 그리고 항시 내 옆에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일명 돌석이 조00 하사, 이렇게 세 명을 선발하여 고원으로 들어갔다.

고원역전은 북한 동해지구의 중요한 철도, 도로 등 교통의 분기점이라 항시 열차를 갈아타는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곳이다. 또한 주변의 여러 군부대들이 밀집되어 있어 군인들도 상당히 많은 곳이다.

일요일 오전 고원역 광장에 가니 여느 때와 다름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다. 열차 타러 개찰구로 나가는 사람들, 새로 도착한 열차에서 내려 꾸역꾸역 광장으로 나오는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나는 일단 신고 간 워커를 광장 옆의 구두 닦는 아저씨 앞에 들이대고 구두 광을 내고 있었다. 이때 함남 ‘홍원참새’ 변중사가 갑자기 광장 가운데 우뚝 서서 그 좋은 목소리로 아주 구성지게 북한민요를 불러댔다.

일요일 아침부터 이게 웬 구경거리? 지나가던 많은 사람들이 멈춰 서서 정신이 이상해 보이는 군인의 노래 부르는 모양을 지켜본다. 나머지 동중사와 조하사도 공연히 여기저기 쑤시고 다녔다.

물론 경무부 녀석들을 자극하기 위하여 사전에 약속한대로 삐딱한 군모에 풀어헤친 군복차림이었다. 또 일부러 모두 군사칭호(계급장)를 상등병(일병) 계급장을 달았지만, 얼굴 척 보면 짬밥이 넘쳐나는 고참병들인 것을 누가 봐도 대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잠시 후 사람들 사이로 헤집고 들어온 경무원들. 얼씨구나 무려 7명이나 되었다. 거기에 경무관 상위(헌병대 대위)까지 끼어 있다. 경무원들은 금방 노래 한가락 뽑아놓고 주변의 구경꾼 아줌마, 아가씨들에게 수작을 걸어대는 변중사의 뒷덜미를 움켜쥐고 광장 맞은편 아파트 모퉁이로 끌고 갔다. 나와 우리 일행도 모두 같은 일행이라고 그곳에 끌려 갔다.

우리를 빙 둘러싼 경무원들, 그 중 경무관(장교)이 우리 일행을 쓰윽 훑어 보더니, 키가 크고 고참처럼 보이는 나에게 “너희들 소속이 어디야?”하고 물어왔다. 나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대답도 하지 않았다.

갑자기 ‘짝’ 하는 소리와 함께 두 눈에 번갯불이 번쩍이고 귓구멍에 고압전류가 흐르는 소리가 웅~웅, 엄청 아팠다. 생김새는 어떻든 상등병 계급장을 단 녀석이 북한군 모두가 공손해지는 경무관 앞에서 건방을 떠는 모습에 한방 날린 것이다.

곁에 서있던 조하사가 그 모습을 보고 경무관에게 따지려다 뒤에 있던 경무원에게 뒷덜미가 잡혔다. 그러나 조하사는 날쌔기로 군단 정찰관하에서 소문난 녀석. 돌아서서 머리 받기 한방으로 뒤에 있던 경무원을 눕히고, 나 역시 마주선 경무관의 경동맥 부위(목 옆 부위)를 기습적으로 손 칼타격(손 날)했고 재차 주먹으로 안면을 강타했다.

순식간에 우리 일행은 기습공격으로 경무원 7명을 반항할 사이도 없이 때려 눕혔다. 그리고는 코 쥐고 얼굴 싸 쥐고 자빠지거나 주저앉은 경무원들을 밟아주고 걷어차고 “뛰자” 하고는 정신 없이 고원 시내의 골목골목을 빠져 나와 약 5km를 뛰었다.

고원시내를 멀리하고 원산쪽 방향의 언덕길을 넘어갈 때 숨을 돌리며 보니 조하사가 그 북새통에서도 경무원의 가죽벨트를 뽑아내 자신의 벨트와 바꾸어 차면서 만족해 하는 것이 보였다. 더욱 놀란 것은 동중사는 경무원의 탄창 1개까지 손에 들고 있었다.

“야, 너 탄창은 왜 가져왔어?” 하고 물어보니 “혹시 뒤에서 총 쏠 까봐 빼왔는데 오면서 보니 탄알도 없고 버릴 수도 없고 해서 그냥 들고 왔다”고 하는 것이었다. 아무튼 그곳에서 오늘 일은 일체 부대에 들어가 발설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하고 훈련장에 귀환했다.

그날 저녁 고원 역 보위소대 친구들이 여단 보위부장 지프를 타고 우리 훈련장에 찾아왔는데 지프에는 10리터들이 술통 1개와 냉동돼지 약 80kg짜리 한 마리가 있었다. 우리에게 “수고했다”며 가지고 온 것이었다. 보위소대 녀석들은 그날 현장에서 우리의 격투 장면을 고소하게 지켜보았는데 3 년 앓던 이빨을 뽑아낸 기분이었단다.

소대원들이 돼지고기 뼈다귀까지 푸짐히 우려먹고. 대략 3일쯤 지나서였다.

갑자기 우리 훈련장에 5톤 러시아제 지르 군용트럭이 들이닥치고 살기등등한 중좌(중령)를 선두로 약 25명의 경무원들이 들이 닥쳤다.

곧바로 전 훈련장에 집합 명령이 떨어지고 우리는 대열을 맞추어 대기했다. 그리고는 그날 나에게 선방을 맞은 경무관 상위와 두 명의 경무원이 대열을 돌면서 한 명씩 얼굴을 살펴본다. 분명 우리를 찾으려고 온 것이었다.

바로 그들 뒤에서는 얼굴 사납게 생긴 경무관 중좌가 나머지 20여명의 경무원들과 따라다닌다. “이 새끼다” 하면 당장이라도 집단 구타를 할 표정이었다. 다행이라면 그날 오전 변중사는 주변 옥평 인민병원에 무좀치료 받으러 외출했고, 동중사와 조하사는 문천에 있는 해상저격여단의 친구에게 휘발유 구하러 나가고 없다는 것이었다.

점점 내 차례는 다가오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도망칠 수도 없고, 일단 군모를 눈썹까지 푹 내려쓰고, 이를 꽉 물고 두 눈에 독을 잔뜩 품고 쏘아보는 수밖에.

내 앞에 온 경무원 녀석 얼굴 보니 광대뼈가 부어 오른 자리에 아직도 진물이 흐른다. 다른 경무원 녀석은 귀밑이 찢어졌는지 요란하게 반창고를 붙였다.

잠시 후 그 녀석 눈깔의 흰자위가 금방 커진다. 그리고는 경무관 상위를 바라보며 “이 놈입니다” 하는 표정이었다. 경무관 상위 역시 인상을 보니 두툼하게 부어 오른 입술이 아직도 퍼렇게 부어있었다. 나는 될대로 되라 하고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잡아먹을 듯 나를 쏘아보던 경무관 상위가 이를 악물고 돌아서더니 “비슷하긴 한데 찬찬히 보니 아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여기 없습니다. 중좌 동지” 하고 말했다. 광대뼈가 부어 오른 경무원 녀석이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나와 자신의 상관을 번갈아 보는데 “뭐해? 가자” 하고 경무원 상위가 재촉한다.

그 상위가 분명 날 알아보았는데 왜 아니라고 돌아섰을까? 지금도 아리송하기만 하고 이해 할 수가 없다. 만약 그날 내가 적발되었다면 나를 체포하려는 경무부와 우리대원들 사이에 험악한 사건이 터졌을 법도 했는데,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잠시 후 경무원들은 모두 다른 부대로 갔다.

모두 해산하고 훈련장 넓은 마당에 나 혼자 멍하니 서 있었다. 등에서는 땀이 비오듯 하고 온몸이 젖었다. 그런데 훈련을 마치고 부대로 귀환한 후 강연회 시간에 북한군의 군사규율 위반사례 등 엄중한 사건을 이야기 하는데, 그 강연자료에 내가 저지른 고원 역 사건이 나오는 게 아닌가.

그 강연자료 마지막엔 ‘군사규율을 단속하는 경무원들을 구타한 자들은 군법에 의해 처리되었다’고 나오는 것이었다. 처벌은 뭔 말라빠진 처벌, 우리는 부대에 버젓이 살아있는데… 나는 속으로 피씩 웃었다. 강연자료는 인민군 총정치국에서 작성하여 북한군 전군에 동시에 진행하는 자료이다.

훗날 고원 보위소대 친구들을 만나니, 그 사건 이후 고원주재 경무부 녀석들이 매일매일 담장 안에서 악을 써대며 격술 훈련을 빡 세게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는 고원에서 얼쩡거리는 북한군들을 제멋대로 잡아가는 바람에 여간 골치 아프지 않았다고 한다. 망신을 당할대로 당한 경무부 애들이 괜히 애꿎은 사람들에게 화풀이를 한 것이었다.

아무튼 나는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도 그때 그 경무관 상위가 나를 잡아가지 않고 왜 살려줬을까가 여전히 의문이다. 굳이 상상해 본다면 정작 마주서니 고참계급에 이제 군복무 말년쯤 되어 보이니까, 거기서 지정하면 앞길이 구만리 같은 젊은이의 인생이 쫑날 것 같아서 자존심 접고 한번 용서해 주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만약 그때 경무관 상위 한마디에 잡혀갔으면 난 어떻게 되었을까? 또 지금 어떤 모습으로 있을까 궁금해진다. 그리고 늘 그 상위에게 감사한다.

이정연/ ‘북한군에는 건빵이 없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