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핵무장 용인발언과 동북아 안보질서 새판짜기

트럼프가 공화당 경선에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미국의 모든 언론은 그를 무시했다. 지금은 차기 미 대통령이 될 50%의 확률을 갖고 있는 유력주자다. 그는 한국입장에서 대단히 유의미한 두 가지 메시지를 남겼다. 첫째, 왜 자국의 안보를 지키기 위한 독자적인 핵무장을 하지 않는가. 둘째, 주한미군 주둔비용은 한국이 100%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정통 외교 관료나 안보전문가 눈에는 국제질서에 대한 이해가 전무한 무식한 발언 정도로 치부돼도 이젠 50% 당선 가능성을 가진 후보가 한 말이니 무게감과 책임감을 다르게 평가해 줘야 한다. 한국으로선 ‘전향적인 해석’이 가능해지는 대목이다.

비유컨대, 역사상 ‘천사’(자유주의)와 ‘악마’(공산주의)가 악수하여 현재까지 유효한 유일한 사례는 핵 비확산에 관한 합의다. 핵무기의 가공할 파괴력 앞에는 ‘피아(彼我)’가 따로 없었다. 그 공통의 이해(interests)는 ‘기왕에 핵을 손에 쥔 우리’ 외에는 다른 누구도 핵무기를 갖지 못하게 하자는 약속으로 채워졌다. 핵 레짐은 태생부터 불평등하게 출범한 ‘그들만의 리그’였다. ‘핵 클럽’ 자체가 독점적이며 배타적이기에 신규 회원가입이 원천봉쇄 됐다는 구조적 특징은 북한이 아무리 핵 실험을 해도 핵 보유국 지위를 얻을 수 없는 절대적 이유이기도 하다. 국제정치사의 이면은 절반이 핵의 역사인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는 알고 그랬는지 모르고 그랬는지 – ‘후자’일 가능성이 높겠지만 – 아무렇지 않게 이 ‘틀’을 깰 수 있는 발언을 서슴지 않은 것이다. 자신의 말이 갖는 함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한 발언이라는 축소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 입장에선 일도양단(一刀兩斷)의 복안을 가질 계기가 마련됐다. ‘전향적 해석’이란 그의 발언이 한국의 독자적 핵 무장을 관철시킬 정치적 입지가 된다는 인식의 전환에서 시작된다. 핵 무장과 주한미군 주둔비용 증가 요구가 우리 입장에서는 충돌하지 않는다. 꽃놀이 패라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한국이 핵 무장의 궤도에 들어선다는 것은 전작권 반환, 주한미군 철수가 전제된 일이다. 핵 말고는 그간 한국의 안보를 위해 마련된 온갖 외부 장치가 제거되는 현장이다. 이것만은 용납 못하겠다고 한다면 그것을 주장하는 당사자가 한국의 안보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옳다.

힘겨운 세력균형이 가까스로 유지되고 있는 현재의 동북아 안보구조 안에서 통일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중국이 북한을 결사적으로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연출돼야 가까스로 한반도 통일이 동북아 안보질서를 새로 짜는 구체적 조건으로 부상할 수 있다. 그런 상황이 현재까진 가능해 보이지 않았으나 트럼프의 발언은 이를 가능케 할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 잠재된 폭발력이다.

한국의 핵 무장화는 동북아에서 한국이 핵 도미노의 ‘트리거(trigger: 격발장치)’가 되겠다는 결단인 셈이며 그 마지노선은 일본이 아니라 대만이다. 그런데 대만의 핵 무장은 중국으로선 국운을 걸고서라도 용납할 수 없는 사안이다. 1962년 촉발됐던 쿠바 미사일 위기보다 훨씬 강도가 높은 상황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요는 중국이 대만이나 북한 중 하나를 버려야 하는 긴급사태가 아니고선 현재의 동북아 안보구조가 깨지기 어렵다는 것인데 그 잠재적 빌미를 미국의 유력 대선후보가 제공했으니 상황을 ‘전향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 주장의 본질이다.

물론 미국의 조야는 트럼프의 발언에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이런 상황까지 흘러갈 가능성 자체는 희박해 보인다는 약점은 있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다면’ 어리석기만 할 따름이다. 한국은 이제 역으로 주한 미군의 주둔비용을 미국에 ‘전가’할 수 있는 정치적 카드를 쥐게 된 셈이라는 적극적인 해석도 동시에 해야 마땅하다. 그것을 가능케 할 지렛대가 독자적 핵 무장이고 그 근거는 트럼프의 발언이다. 적어도 둘 중의 하나는 얻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트럼프가 떨어지면 이 카드는 자연 소멸될 테지만. 이제 공은 그들이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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