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20일(현지시간, 한국시간 21일 새벽 2시) 취임식을 통해 본격 새 행정부를 이끌어나가게 된다. 우리에겐 트럼프식(式) 대북정책 향방이 중요한 대목이지만, 아직까지 아무것도 단언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 및 외교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취임이 하루도 안 남은 시점이지만, 트럼프 행정부에게서 확실히 예측할 수 있는 건 ‘불확실성’뿐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
일찍이 트럼프 당선인을 비롯해 주요 직책 내정자들이 북한 문제에 관해 돌발 발언을 쏟아냈지만, 화제성만 있었을 뿐 정작 ‘알맹이’는 빠져있다는 지적도 있다. 또한 현재 언론에 공공연히 노출된 장관 및 장관급 내정자가 20여 명에 달하나, 이 중 단 한 명도 상원 인준을 통과하지 못한 상태다.
주요직 내정자들 이외에도 행정부 교체로 채워 넣어야 할 자리는 4000여 개에 달한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적합한 인물을 선별하더라도 이들이 인준까지 통과하는 데는 빨라야 5개월은 족히 걸릴 것이라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한반도 정책 전문가 인선도 안개 속이다.
이런 가운데 미국 백악관 측은 19일(현지시간) 트럼프 당선인이 약 50명의 오바마 행정부 고위 관료들에게 ‘정부 연속성’을 명목으로 잔류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 중에는 국방 분야 및 대북정책 담당 관료들이 포함돼 있어 당분간은 미국 새 행정부도 이전 정부의 대북 기조를 유지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20일 데일리NK에 “인준 통과까지 수개월이 걸릴 텐데, 그 사이 공백은 결국 이전 행정부 관료들이 잔류해 메워야 하지 않겠나”라면서 “이 말인즉 트럼프 행정부만의 대북정책이 수립되는 데도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각수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국제법센터 소장(前 외교통상부 차관)도 “트럼프 행정부에게서 가장 예측하기 쉬운 건 ‘불가측성’뿐”이라면서 “현재 내각만 구성됐지 한반도 문제를 담당할 전문가들로 누가 임명될지 아무도 모르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대북협상’과 ‘선제타격’이라는 양극단의 움직임 가능성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은 ‘속단 금물’을 주문했다. 아무리 트럼프라도 현 시점에서 북한과 대화에 나설 가능성도 만무할뿐더러, 역으로 선제타격 옵션 역시 사실상 ‘전쟁’을 시사하는 만큼 섣불리 선택하지는 못할 것이란 설명이다.
외교 소식통은 “트럼프 당선 직후 북미 대화 가능성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많았지만, 트럼프가 과거에 썼던 책들을 보면 그는 힘의 우위에 있는 상태가 아니면 결코 협상하려 들지 않는다”면서 “트럼프는 이란 핵 협상을 두고도 ‘재앙’이라 표현하면서 이란을 완전히 피폐하게 만든 후 핵을 빼앗았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그런 사람이 빠른 시일 내에 북한과 협상에 나설 가능성은 극히 적다”고 관측했다.
그는 이어 “선제타격 주장 역시 군사적인 옵션을 제기하는 차원에서 모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겠다는 뜻일 뿐, 실제 당장 추진할 만한 시나리오로 내놓긴 어려울 것”이라면서 “물론 북한이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을 코앞에서 위협한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겠지만, 트럼프가 그런 최악의 상황이 올 때까지 손을 놓고 있다가 선제타격 카드부터 꺼내진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 소장도 “트럼프는 김정은과 햄버거를 먹으며 대화하겠다고 했다가,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ICBM 카드를 꺼내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강경한 입장을 보이지 않았나”라면서 “대통령 당선인마저도 아직 상반된 레토릭(정치적 수사)을 구사하고 있는 만큼 (대북정책과 관련해) 결정된 건 없다고 본다. 어느 방향으로 갈지 짐작해 단언하기 보단 두 가지 가능성을 다 염두에 둬야 할 것”이라고 피력했다.
이처럼 트럼프 행정부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이를 우리 외교의 ‘난제’로 해석하는 목소리도 나오지만, 되레 전문가들은 지금과 같은 혼돈상태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현 시점을 일종의 ‘골든타임’으로 두고, 트럼프 행정부가 대북정책 방향을 설정하는 데 있어 우리의 입장이 최대한 반영될 수 있도록 주력해야 한다는 것.
특히 미국 시스템상 대통령이 의회나 기존 외교관계와 완전히 동떨어진 정책을 추진하진 못하는 만큼, 신 행정부는 물론 의회나 재야를 겨냥한 아웃리치 활동을 강화해야 한다는 제언이 많다.
정부 관계자는 “현재의 대북제재 및 압박, 한미동맹 등이 한미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점을 적극 피력하면서, 동시에 트럼프 행정부도 이를 ‘성과’로 내세울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면서 “기존 대북기조가 당장 어떤 결과나 효과를 내오지 않더라도, 그것이 가질 수 있는 영향력을 분명히 전달해야 한국 입장에서도 유리한 대북정책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또 다른 외교 관계자도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확실히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북한이 도발이든 혹은 다른 어떤 형태로든 움직임을 취하게 되면 혼선이 생길 수 있다”면서 “그 때를 대비해 한미공조를 강화하는 아웃리치 활동에 주력해야 한다. 오바마 행정부 관료들에게도 대북기조 유지를 위한 인수인계를 잘 하도록 협조를 구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신 소장은 “우리 입장에서는 북한을 비핵화 노선으로 복귀하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한 외교 목표가 아닌가. 이를 위해선 미국 행정부와 끊임없이 접촉해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대북정책을 이끌어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이 과정에서 우리가 대북정책 포지셔닝(위치잡기)을 확실히 정할 필요가 있다. 북한 비핵화를 어떤 단계를 거쳐 달성할 것인지부터 평화체제, 북미관계 등은 어떻게 다룰 것인지 원칙을 바로 세워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