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15일(현지시간) 중대 발표는 2주간의 아시아 순방에서 확인한 대북 공조와 공정하고 호혜적인 무역, 자유로운 인도·태평양지역 등 세 가지 분야에서의 성과 보고가 주된 내용이었다.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북한의 테러지원국 재지정 여부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
아시아 순방 일정을 마친 뒤 전날 귀국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후 백악관에서 한 대국민 보고에서 “순방의 첫 번째 핵심 목표는 북한의 핵 위협에 맞서 세계를 단결시키는 것”이라면서 “이를 계속 추진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과거에 지속적으로 실패했던 것들과 같은 이른바 ‘쌍중단(freeze for freeze·雙中斷)’ 합의는 수용할 수 없다는 점에 동의했다”면서 “시 주석이 핵을 보유한 북한은 중국에 중대한 위협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고 밝혔다.
‘쌍중단’은 미국과 북한 간의 긴장을 해소하고 대화 국면으로 전환하기 위해 북한 핵·미사일 도발과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동시에 중단하자는 구상으로, 중국과 러시아가 지속 피력해오고 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 중 열린 미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중국이 쌍중단 구상을 기존 북핵 해법에서 철회할지는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시 주석이 북한에 대한 유엔 제재를 충실히 이행할 것과 한반도 비핵화라는 우리의 공통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북한 정권에 대해 그의 거대한 경제적 지렛대를 사용할 것을 약속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는 (북핵 위기 해결을 위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분명히 했다”며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남아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트럼프 대통령은 방한 결과를 밝히며 “한국 방문 시 캠프 험프리스에서 미군, 한국군 수뇌부와 함께 군사옵션 및 북한의 도발이나 공격적 행위에 대응하는 태세를 논의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북한의 뒤틀린 독재자가 전 세계를 포로로 잡고 핵 공갈을 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한국이 북한의 핵과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에 자금을 대는 불량 행위자들에 대한 유엔 제재와 미국의 추가제재에 동참해줄 것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중국과 러시아를 포함한 모든 국가가 단합해 북한 정권이 위험한 도발을 멈출 때까지 고립시켜야 한다”면서 “실패한 전략적 인내는 끝났다. 그 결과 유엔 안보리의 새 제재를 포함한 중요한 진전을 보았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과 나는 한국에 대한 우리의 무역적자를 줄이려는 미국의 노력에 대해 논의했다”면서 “현재 한국과 재앙적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재협상을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대국민 발표는 귀국 후 북한과 무역에 관한 ‘중대 발표’를 하겠다고 예고했던 데 다소 김빠진 분위기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방한 중 국회 연설에서 북한 김정은 정권을 강도 높게 비판했던 바 있어, 귀국 후 북한 정권을 겨냥한 메시지를 내놓을 가능성이 점쳐진 바 있다.
특히 이목을 끌었던 건 북한의 테러지원국 재지정 여부였다. 앞서 외신 등은 트럼프 대통령이 아시아 순방을 끝낸 후 곧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재지정 여부에 대한 결론을 내리겠다고 밝혔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백악관도 “트럼프 대통령이 순방 말미 (북한의 테러지원국 재지정에 대한) 결정을 할 것”이라고 밝혀왔다.
이번 대국민 발표에서 북한의 테러지원국 재지정 여부가 일절 언급되지 않은 것을 두고 일각에선 미북 간 대화를 염두에 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미중 간에 ‘쌍중단’ 구상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함으로써 중국을 지렛대로 삼은 대북압박을 강화하겠다는 뜻도 나타냈지만,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는 결정만은 미루면서 미북 간 대화 가능성 또한 완전히 차단하지는 않으려 했다는 풀이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까지 북한과의 대화를 두고 ‘시간 낭비’라고 지적했던 데 비해, 아시아 순방 중에는 “그(김정은)의 친구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언젠가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밝히는 등 다소 누그러진 태도를 보인 바 있다.
북한에 대한 자극을 줄인 채 미북 간 대화 가능성을 탐색하려는 기류는 미국 행정부 내에서도 이미 감지돼 왔다. 앞서 워싱턴포스트(WP)는 9일(현지시간) 조셉 윤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지난달 30일 미국외교협의회 강연에서 북한이 핵·미사일 실험을 60일간 중단하면 미국은 이를 직접 대화를 위한 신호로 간주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통일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중대 발표에 북한의 테러지원국 재지정 등이 빠진 데 대해 “미국이 판단할 사항”이라면서 “한미 간 그 어느 때보다 긴밀하게 공조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