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니지 중부에 위치한 도시 시디 부 지드. 인구 4만여 명의 작은 도시인 이곳에서 작은 사건이 벌어진 것은 지난해 12월 17일이다. 시청 앞 도로에서 한 청년이 자신의 몸에 휘발유를 붓고 불을 붙였다.
화염에 휩싸인 채 쓰러진 청년은 즉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생명은 장담할 수 없었다. 이 사건을 지켜보는 시민들의 눈에는 슬픔과 분노가 가득했다.
▲부아지지의 병실에 방문한 벤 알리 전 튀니지 대통령(좌측에서 두 번째)ⓒ연합 |
이 청년의 이름은 모하메드 부아지지(26). 대학을 졸업했지만 취업에 실패, 마땅한 생계수단이 없어 거리에서 무허가로 청과물 노점상을 하던 ‘고학력 실업자’였다. 경찰에 단속돼 청과물을 모두 빼앗기자 분신을 기도한 것.
부아지지는 병원에서 18일간 사경을 헤매다 2011년 1월 5일 결국 사망했다. 그의 죽음은 인터넷을 통해 일파만파로 퍼졌고, 분노한 튀니지 국민들은 8일 대통령 퇴임을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이에 벤 알리 튀니지 대통령은 30만개의 일자리 창출을 공언하고 내각 해산 뒤 조기총선을 실시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국민들의 시위는 더욱 거세졌고, 결국 24년간 집권해오던 벤 알리 대통령은 14일 밤에 몰래 사우디로 출국했다. 한 청년의 죽음이 튀니지 혁명의 기폭제가 된 것이다. 해외 언론들은 이 혁명을 일컬어 ‘재스민 혁명’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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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훼손된 채 방치되고 있는 벤 알리 전 대통령의 사진. ⓒ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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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튀니지 국민은 30%의 만성적인 실업률과 높은 물가에 시달리고 있었다.
해마다 배출되는 8만 명의 대졸자들을 받아주기에 경제는 취약했고, 한국과 비슷한 생활물가에도 불구하고 월급은 한화로 6~70만원에 그쳤다. 게다가 벤 알리 대통령은 유튜브와 플리커 등 해외 주요 사이트를 차단해 국경 없는 기자회가 꼽은 ‘세계 40대 미디어 살육자’ 중 한명으로 지목됐다.
튀니지 혁명은 인터넷이 만들어냈다. 소셜 네트워크의 대표격인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들이 거대한 네트워크를 형성한 것이다. 이 네트워크를 통해 대통령의 부패와 언론탄압의 실체가 공개되었고, 시위 현장의 사진과 동영상도 널리 퍼져나갔다.
세계 각국의 소셜 네트워크 사용자 통계를 알려주는 ‘소셜베이커스’에 따르면, 튀니지의 페이스북 이용률은 한국의 두배가 넘는 19%다.
튀니지 혁명은 군부세력이나 외부의 강대국이 아닌, 국민들이 스스로 들고 일어나 독재자를 쓰러트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는 북한에도 고스란히 적용할 수 있는 모델이다. 북한도 튀니지와 마찬가지로 경제는 파탄 지경에 이르렀고, 국민들은 오랜 독재에 지쳐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 주민들이 혁명을 일으키기엔 어려움이 따르는 것이 사실이다. 연좌제로 대표되는 북한의 처벌은 너무나 가혹하다. 여기에 강력한 통제정치로 북한 내부의 소식은 철저히 차단된다. 외부의 소식 역시 탈북자 등을 통해 유입이 증가되고 있지만 부족한 현실이다.
하지만 북한 주민들에게 조금씩 변화의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하태경 열린북한방송 대표는 “주민들의 사회정치의식이 과거에 비해 많이 향상됐다”며 “반김정일 정도는 아니지만 주민들이 보안원에게 불만을 표출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하 대표는 “대북 전문매체의 역할이 강화돼 북한의 정보가 실시간으로 외부에 알려지면 국제 사회의 압력이 강해져 북한 정부도 폭압을 약화할 수밖에 없다”며 “여기에 김정일이 죽고 통제력이 약해진다면 혁명도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전문가들은 북한 주민들이 스스로 일어나게 하기 위해서는 대북 민간단체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분석한다. 민간단체가 앞장서 북한 내부의 소식을 외부로 전하고 삐라와 대북 라디오 방송 등을 통해 한국과 국제사회의 발전상을 북한 내부에 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북한의 정보 통제력 약화가 혁명의 초석이 된다는 것이다.
튀니지 혁명의 여파는 주변 국가로 빠르게 퍼지고 있다. 이집트 국민들은 30년간 집권해온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예멘에서도 압둘라 살레 대통령이 영구집권을 노린 개헌안을 통과시키자 이에 분노한 수만명의 시위대가 수도 사나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반독재, 반세습, 민주화의 요구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요구이자 대세다. 김정일의 집무실에도 TV가 있다. 그는 성난 국민들의 단결력을 보며 두려워하고 있을 것이다. 튀니지의 독재가 한 청년의 작은 희생으로 무너졌듯이, 김정일의 철옹성도 작은 균열 하나로 무너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