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성 확보되면 식량지원 망설일 필요 없다

유럽연합(EU)이 3년 만에 대북식량지원을 재개키로 결정하자 눈길이 자연스럽게 한미로 향하고 있다.


EU의 지원은 북한 북부와 동부지역 65만 명을 대상으로 한 1천만 유로(약 155억원) 규모로 이뤄진다. EU는 지원식량이 북한 주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한국어 구사 감시 요원 50명을 현장에 배치한다고 한다.


또 어린이 보호시설과 병원, 식량배급소와 시장, 일반 가정 등 400여 곳을 사전통보 없이 방문할 수 있도록 북한 당국과 조율을 마친 상태라고 한다. 이 같은 합의가 깨지면 언제든지 식량지원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북한 당국이 지난해 국제사회에 지원을 호소한 이후 국가 단위와 모니터링 세부내용을 합의하고 수만 톤 규모의 식량을 지원 받은 것은 이 번이 처음이다. 따라서 북한의 합의 내용과 함께 약속이 철저하게 이행될 수 있을지 여부도 관심이다.


EU의 식량 지원이 결정 되면서 앞서 대북 식량실태조사를 마친 미 행정부의 행보가 주목된다. 미국은 북한에 대한 식량지원을 결정하기 앞서 대외적으로 ‘2009년 대북식량지원 잔여분 2만t 문제 선(先) 해결’ ‘실제 지원이 필요한 사람에게 전달될 수 있는 모니터링 강화’ ‘전용을 막기 위한 소규모 형태로 쌀이 아닌 영양식 제공’ 등을 요구하고 있다. 


미 국무부 눌런드 대변인이 이달 7일 “엉뚱한 사람들을 지원해 미국 납세자들의 세금을 낭비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매우 강하다”며 대북 식량지원에서 모니터링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한 바 있다. 여기에 천안함 폭침 사태 이후 5.24 대북조치를 유지하고 있는 한국 정부의 입장도 고려되지 않을 수 없다.


일단 EU가 대북 식량지원을 앞서 결정하면서 미국도 인도주의적 고려라는 압력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다만, 대북 인도지원 결정이 내려진다 해도 모니터링에 대한 의혹이 여전하기 때문에, 로버트 킹 인권특사가 밝힌 것처럼 쌀을 제외한 영양분을 상당 기간에 걸쳐 소규모 단위로 지원할 가능성이 크다.


식량지원 문제가 정치와 무관할 수는 없지만 본질은 인도주의다. 언제까지 우리 정부가 식량 지원에 소극적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투명성만 보장 된다면 쌀이 문제가 될 이유도 없다. 핵심은 투명성이다. 과거 15년 넘게 이뤄져 온 인도적 지원사업에서 우리가 확인한 것은 분배의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은 지원은 오히려 약(藥)이 아닌 독(毒)이 된다는 점이다.


올해 3월 북한에서 나와 현재 하나원 교육을 받고 있는 40대 중반의 한 여성의 증언은 우리가 깊이 새겨야 대목이다. 이 여성은 “유엔에서 (분배감시단이) 나와 탁아소를 돌아 보는데, 이들이 돌아가면 다시 간부들이 가져간다. 가져간 쌀은 당 간부나 군부에게 돌아가 결국 백성들에게 전혀 돌아오지 않는다”면서 “지금도 북한에 부모 형제가 있지만 식량이 주민들에게 돌아가지 않기 때문에 북한에 식량을 지원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만약 투명성 문제가 해소된다면 우리 정부도 5.24 대북조치에 연연해 식량지원을 정치화 시킨다는 오해를 살 필요는 없을 것이다. 북한이 납득할만한 투명성 조치를 취한다면 우리도 적극적으로 식량지원에 나설 필요가 있다. EU와 미국이 하니까 따라서 하겠다는 자세로는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유지하기도 어렵다.


북한 당국이 식량을 전용하려는 의지를 여전히 가지고 있다면 100% 투명성 보장은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다. 그러나 이에 근접한 활동은 가능하다. 미국과 EU를 뛰어 넘는 수준의 모니터링을 요구하면서 과감한 식량지원을 제안할 필요가 있다. 대규모 감시요원 파견, 불시 방문 보장, 장기간 거주하며 회수 여부 확인, 식량 이동 확인 식별장치 부착 등을 강력하게 요구해야 한다.


북한이 남한 정부를 고립시킬 목적으로 우리의 지원 의사를 묵살할 경우, 그 자체가 비인도적인 처사로 비난 받게 될 것이다. 인도주의 사안에 대한 우리 정부의 공세적 대응은 ‘무조건 지원’만을 외치고 있는 야당과 대북지원단체들의 생리(生理)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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