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 주류는 舊민혁당 관련 세력”

통합진보당 이정희 공동대표의 후보 사퇴 문제로 불거진 진보당 주류의 배후세력 논란과 관련해 그 실체가 ‘경기동부연합’이 아닌 구(舊) 민족민주혁명당(이하 민혁당) 사건 관련 세력인 것으로 데일리NK 취재 결과 드러났다.


새누리당이 소위 ‘경기동부연합’ 출신으로 지적하고 있는 진보당 비례대표 2번인 이석기 후보는 구 민혁당 하부의 경기남부위원장 출신이다. 그는 민혁당 사건이 발표되자 3년간 도피생활을 하다가 2002년 5월 검거돼 구속된 전력이 있다. 


이번 4.11 총선에서 민주당-진보당 공동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은 이의엽 진보당 정책위의장도 민혁당 간부 출신이다. 민혁당 부산지역위원장으로 2000년 9월 말 검거되어 법원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 받은 전력이 있다.


지난 26일 ‘진보의 그늘'(부제: 남한의 지하혁명조직과 북한)을 출판한 한기홍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대표는 “‘경기동부’는 원래 90년대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에서 경기 동부지역 학생운동을 지칭할 때 쓰던 말로 이후 전국연합 활동을 진행하면서 성남 등 주변 지역의 재야운동까지를 포괄해서 사용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기동부연합은 현재 뚜렷한 실체가 없는 용어이고, 오히려 현재의 통합진보당 당권파들의 실체를 가리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면서 “이들을 구 민혁당 관련 세력으로 부르는 게 정확하다”고 말했다.


4.11총선을 앞둔 현재 진보당 당권파와 후보들 상당수는 경기동부 지역 이외 출신들로 나타났다. 이정희 대표는 서울 지역에서 활동했고, 장원섭 당 사무총장도 지역 연고는 광주광역시로 이번 총선에서 광주 광산갑에 출마했다. 경기동부 지역에 연고가 있는 핵심 당직자는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성남지부장을 지낸 우위영 대변인이 거의 유일하다.  


2008년 분당 사태 당시 당내 다수파인 자주파(NL계열)를 대변했던 김창현 전 민노당 사무총장도 1998년 적발된 영남위원회 사건으로 이적단체 가입 혐의가 인정돼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그는 4.11 총선에서 울산 북구 야권연대 후보로 당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박경순 통합진보당 산하 진보연구원 부원장도 김 후보와 함께 영남위원회 사건으로 구속돼 실형을 선고 받았다. 박 부원장도 이적단체 구성혐의로 7년형을 선고 받았다. 훗날 민혁당 사건이 발표되면서 영남위원회가 민혁당 산하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민족민주혁명당은 서울대 법대 출신의 김영환, 하영옥 등이 1992년 3월 창당했다. 1989년 결성된 반제청년동맹이 모태가 됐다. 당시 법원은 민혁당을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하는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혁명(NL노선)을 달성하기 위한 노동자, 농민의 지하 전위당으로 국가 존립을 위협하는 반국가단체’로 규정했다.


민혁당은 총책 김영환이 북한에 대해 비판적 태도로 돌아선 이후 1997년 7월 해체 선언을 하면서 분수령을 맞았으나 하영옥 등이 조직을 장악해 활동을 지속했다.


과거 민노당에서 이들과 함께 활동한 경험이 있는 한 인사는 “진보당 내 주류가 과거 전국연합 산하 경기동부연합이라고 하는데 이는 껍데기에 불과한 말”이라며 “정세가 변화했지만 이들은 (북한에 대한) 입장 변화를 말하면 조직이 깨질 것이라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다른 문제는 가만히 있으면서 북한에 대한 공격만 하면 들고 일어나는 집단 현상을 보인다”라고 말했다.


한 대표는 “이들의 문제는 과거 전력이 아니라 현재 공당의 주요 간부나 국회의원 선거에 도전하고 있는 데 과거의 종북 이념이나 활동에 대해서 현재는 어떻게 바뀌었는지에 대한 입장 표명이 전혀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제청년동맹, 민혁당=반제청년동맹은 김일성이 항일투쟁 시기에 만들었다는 조직 이름이다. 1991년 북한을 비밀리에 방문해 김일성과 면담하고 돌아온 김영환은 1992년 민혁당을 창당하지만, 이후 북한 체제에 회의를 느끼고 사상을 전환하여 1997년에 민혁당을 해산하였다.                   


그러나 하영옥 등은 이 결정에 불복해 자신이 관할하던 영남위원회와 경기남부위원회를 수습 하는 한편 남파간첩 원진우와 접선하여 북으로부터 대호명 ‘광명성’을 부여받는 등 지하당 활동을 계속하였다. 그러다 1998년 12월, 북으로 복귀하던 원진우가 탄 잠수정이 우리 해군에 의해 격침되었고 다음해 3월에 인양된 잠수정에서 나온 단서로 인해 하영옥의 활동이 국정원에 포착되었다. 하영옥은 1999년 민혁당 사건 당시 8년형을 선고받았으나 2003년 4월에 특별사면으로 석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