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진 이정희 ‘종북 규정은 명예훼손’ 판결 시사점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가 오랜만에 ‘종북’ 논쟁으로 웃음기를 띠게 됐다. 이 대표는 남편 심재환 변호사와 함께 ‘종북’ ‘주사파’ 규정으로 ‘인격권을 침해당했다’며 보수 논객 변희재 씨와 조선일보, 인터넷 매체 뉴데일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이 사건 1심 재판부는 변 씨 등이 400~1500만 원의 배상금을 지급하고, 피고 입장에 선 언론들은 정정보도를 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종북이나 주사파 등() 표현은 반사회 세력을 지칭하는 뜻”이라며 “트위터 게시글이나 기사내용을 진실로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또한 이 대표 부부가 국가보안법으로 수사나 기소를 당한 사실이 없고 피고들이 구체적인 뚜렷한 정황 사실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과거 친일파나 빨갱이라는 용어를 근거 없이 사용할 경우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는 증거주의와 인격권 존중에 입각한 판결이지만, 역사논쟁이 아닌 우리 사회에 현실적 위협인 종북주의 대처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해석이 있어 우려도 적지 않다.


위키백과는 종북주의(從北主義)를 ‘북한의 집권 정당인 조선로동당과 그 지도자인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등을 추종하는 경향’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과거에는 ‘무비판적‘ 이라는 수식어가 들어가 있었지만 현재는 빠져있다.


종북주의는 1990년대 후반 들어 단순한 친북주의(親北主義)와 구별하기 위해 사용했지만, 2012년 통진당 부정선거와 폭력 사태 이후 종북에 대한 경계심이 커지면서 북한 정권이나 정책을 지지하는 포괄적인 용어로 친북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종북은 친북보다 그 맹목성과 부정성이 훨씬 강해진 용어로 우리 사회의 위기감이 반영된 현상으로 봐야 할 것이다.


철권통치와 극단적인 인권유린으로 상징되는 북한 정권을 추종하는 용어인 ‘종북’이라는 표현은 반사회적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반인륜적인 체제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한국사회를 비판하고 북한 중심의 통일을 목표로 활동한다면 결코 용납되기 어렵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종북이라는 용어는 또한 매우 제한되게 사용될 필요성도 제기된다. 법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종북 개념의 확장성을 고려할 때 엄격한 기준이 없는 종북 딱지는 특정인의 인격을 훼손할 여지도 있다. 종북 범위를 무분별하게 확대할 경우 ‘진성’ 종북세력을 고립·타격하기 어려워지고, 색깔론이라는 변명에 정당성을 부여할 여지가 생긴다. 또한 국가보안법만 반대해도 종북으로 몰아갈 경우 ‘자기와 생각이 다르면 다 종북이냐?’는 여론의 역풍을 불러올 수 있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종북세력의 실체와 위험성에 대한 인식은 각자마다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사법부라고 해도 예외가 아님을 이번 판결은 보여주고 있다. 피고인들이 종북 연관성을 구체적으로 규명하지 못한 문제점도 있지만, 언론에 공개된 판결문만 보면 재판부가 종북주의 역사적 맥락이나 위험도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낮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마 지금처럼 발전한 대한민국이 몰락 직전의 북한을 추종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는 논리적 의문만 키우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는 생각도 갖게 된다. 종북세력과 특정인의 연관성은 법적으로 규명되지 않으면 그 실체를 파악하기 어렵다. 그러나 재판부가 지난해 출판돼 종북의 뿌리를 파헤쳤던 한기홍 씨의 ‘진보의 그늘’이라는 책만 읽었어도 이번 사건을 다른 시각으로 볼 여지가 충분했을 것이라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이번 판결을 접하면서 우리 사회가 두 가지를 분명히 할 필요성을 느낀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박원순 서울시장도 종북’이라는 말처럼 종북 몰이를 하듯 북한과 유사한 주장을 한는 사람은 모두 종북이라는 낙인식 접근은 삼가해야 한다. 이번 판결로 특정인을 종북이라고 할 때는 그에 합당한 근거를 제시할 의무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종북주의에 맞서 우리 사회를 지키는 활동이 위축될 필요는 없다.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였던 강종헌 재일동포 간첩단 사건 연루자가 최근 재판부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당시 함께 수감생활을 하면서 그가 북한과 연계된 활동을 했다고 증언한 부산미문화원 방화를 배후조종한 김현장 씨의 용기는 퇴색되지 않는다. 법리적 해석이 역사적 진실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때문에 종북주의를 법적으로 대응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법의 빈틈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세력을 법망을 촘촘히 짜는 것만으로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종북주의는 사상과 여론의 시장으로 끌어내 국민들로부터 심판받게 하는 것이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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