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의 4.11 비례대표 경선 부정선거 파장이 지도부 및 당선자 사퇴로 옮겨 가면서 당분간 당권파인 민족해방(NL) 계열의 입지는 상당히 좁아질 것으로 보인다. 당 안팎에서는 이번 부정의 책임이 당권파에 있다는 시각이 대부분이다. 여기에 당권파에 속하는 이정희 대표와 비례대표의 줄사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당권파의 눈앞에 놓인 과제는 비례대표 2, 3번 이석기·김재연 당선자를 지켜내는 것이다. 비례대표 1번인 윤금순 당선자가 이번 사건의 책임을 지고 4일 전격 사퇴하면서 두 당선자의 동반 사퇴를 요구해 버티기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런 와중에 이 당선자는 경선조작 발표 전날 유시민 공동대표에게 당권을 주고 당권파의 지분을 보장받는 거래를 제안했다는 ‘뒷거래’ 의혹까지 불거졌다. 진보당은 4일 공식논평을 통해 “사실무근”이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이석기가 경기동부연합 실세라는 논란만 커졌다.
진보당은 이날 오후 전국운영위를 열고 부정선거 파문에 대한 당 차원의 수습방안을 모색한다. 운영위의 주된 의제는 이번 부정선거 파문 수습이다. 운영위는 50여의 대표자로 구성되어 있지만, 당권파가 수적 우세를 보이고 있어 비당권파의 요구가 수용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김 버티기 통하나?=이 당선자는 당권파의 핵심이다. 그는 민족민주혁명당 경기남부위원장으로 조직이 해산된 이후에도 총책 하영옥과 함께 재건 활동을 했다. 1999년 민혁당 사건이 발생해 수배 생활을 하다 2002년 구속 수감됐다. 비례대표 3번 김재연 당선자 역시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 집행위원장 출신으로 경기동부연합의 직계로 알려져 있다.
당권파는 진상조사위의 조사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특위 구성을 통해 전면적인 재조사를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이·김 당선자를 지키겠다는 의도다. 무엇보다 경기동부연합의 핵심 인사인 이석기를 지켜내는 것이 당권파의 임무인 셈이다.
민노당 창당의 산파 역할을 했던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대표는 “아마도 견디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고 허현준 남북청년행동 사무처장 역시 “이석기를 중심으로 한 당권파 핵심들의 집단적이고 조직적인 선거개입이라는 것이 드러난 것”이라며 “비례 3번까지는 견디지 못할 것”이라며 사퇴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비례 1번 윤금순 당선자의 사퇴 발표와 진보당 최대 조직기반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이 조직적 탈퇴 가능성을 시사한 점도 부담이다. 반면 일각에서는 당권파가 배후 핵심을 지켜내기 위해 ‘분당(分黨) 배수진’을 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당권파 향후 행보는?=이번 사건으로 진보당의 국민적 신뢰가 상당부분 허물어졌다. 비례대표 당선자를 잃을 수도 있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 당권파의 영향력은 점차 복원될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당 지분의 55~60% 가까이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일시적 후퇴가 있더라도 당내 역학 구도는 큰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당권파가 평당원의 탈당을 막고 내부 수습에 성공한다면 홀로서기를 선택할 가능성도 있다.
주 대표는 당권파들이 생존전략을 잘 구사해왔던 만큼 비당권파와의 타협을 통해 현실적 문제를 타파할 가능성이 높다고 관측했다. 그는 “당권파 내에서 이번을 계기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NL계열이 꼬리 자르기식으로 나올 수 있다”면서 “당대표를 넘겨주고, 당분간 목소리를 낮추는 형식으로 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사건으로 2008년 분당(分黨) 사태가 재연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올해 말 대선을 앞두고 민주통합당과의 야권단일화를 이뤄 연립정부를 구성해야 하는 프로세스를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분당은 곧 자멸이라는 인식 때문에 가능성이 낮다는 관측이 우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