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6·15공동선언 등 정치공학으로 이룰 수 없어”

“6·15 공동선언은 우리 헌법이 담고 있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와 같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가치를 담고 있지 못하다. 통일이란 도그마에 얽매여 그런 가치들을 등한시해서는 안된다.”

이영훈 서울대 교수는 지난 12일 경기도북부상공회의소 연수원에서 열린 ‘건국 60주년 대학생 캠프’에서 “6·15 공동선언은 위헌적 요소가 다분하다”며 이와 같이 말했다.

이 교수는 “통일은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북한이 문화적․사상적으로 자유화가 될 때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라며 “통일은 6·15 공동선언이나 10·4 합의처럼 정치 공학적으로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대한민국 통일은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체제’라는 기준으로 이끌어나가야 한다”며 “두 가지 원리를 포기하고 통일을 말한다면 큰 혼란을 가져 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대한민국 건국 과정과 관련, “오늘날 대한민국의 경제적 번영은 최초로 근대적 재산권을 규정한 1912년 ‘조선민사령’에 기초한 것”이라며 “그것을 통해 일본의 민법이 조선에 이식됐고, 그에 따라 근대적 재산제도가 유무형의 재산에 걸쳐 포괄적으로 성립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시 조선식민지인 에게는 일본인과는 달리 ‘과세동의권’이 주어지지 않은 불완전한 법이라는 한계가 있으나, 해방 이후 대한민국은 그 근대성을 제헌과정에서 계승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또 “일본 민법도 프랑스의 ‘나폴레옹법전’에 일본의 전통적요소를 가미해서 만든 것”이라며 “일본이 한 것이라고 배척할 것이 아니라, 당대 선진문명인 서구문명이 일본을 통해 한반도에 도입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그는 “이 근대화의 과정의 전제로서 우리 전통 사회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 결코 적지 않았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며 “비록 자립적 근대화는 이룩하지 못했지만 조선시대에 근대에 준하는 여러 요소들이 사회에 산재해 있었기에 우리는 근대 문명을 의용(依用)할 수 있었고, 이후 대한민국의 비약적인 성취가 가능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끝으로 “북한은 단지 일본이 만들었다는 이유로 일제시대의 모든 것을 철저히 부정했다”며 “그 결과 식민지기에 성립한 근대적인 재산제도를 폐기하는 등 북한은 문명의 막다른 골목으로 들어서고 말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