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은 이미 시작됐습니다

1990년대 중반, 두만강 겨울밤. 북한군 감시병의 눈에도 어둠이 내리고, 강은 얼어붙었습니다. 온 종일 눈 쌓인 언덕에 옹송그리고 있던 아주머니는 강물 위를 차갑게 뒤덮고 있던 검은 얼음판 위로 몸을 던졌습니다. 쿵쾅 쿵쾅, 돌덩이처럼 얼어붙은 맨발바닥이 얼음판에 부딪히는 소리가 겨울 강변의 고요를 깼습니다. 아주머니의 심장도 발걸음에 박자를 맞춘 듯 쿵쾅거렸습니다. 죽을힘을 다해 달렸지만, 20일 동안 옥수수 깡탱이(찌꺼기)와 눈뭉치로 하루하루를 버텨왔던 아주머니의 뜀박질은 한낱 비틀거림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열댓걸음 남짓 달렸을 때, 등 뒤 초소 쪽에서 감시원의 목소리가 총알처럼 쏟아졌습니다.


“서라. 움직이면 쏜다.”


다행이었습니다. 소리를 듣는 것도, 겁을 먹는 것도 기력이 있어야 할 수 일인가 봅니다. 사경을 헤매듯이 비척비척 걷던 아주머니는 경비대의 경고를 듣는 데 필요한, 또는 그것에 겁먹는 데 필요한 기력조차 없었습니다. 아주머니는 자신의 몸에 남아 있는 마지막 힘을 쏟아 두만강 얼음판 위를 걷고 또 걸었습니다. 50미터도 채 안되는 중국 땅까지의 거리가 자신이 살아온 50년 인생보다 더 길게 느껴졌습니다. 드디어, 스무걸음만 더 걸으면 중국 땅을 밝을 수 있을 듯한 강 중간 어디쯤에 다다랐습니다.


그 때, 아주머니는 얼어붙은 발에 힘이 빠지며 얼음판 위에 쓰러졌습니다. 강 건너 중국 쪽 민가의 불빛이 가물가물 흐려졌습니다. 집에 두고 온 열 두 살짜리 딸아이가 떠올랐지만, 흐르는 눈물이 딸아이의 얼굴을 일렁이게 했습니다. 굼뱅이처럼 온 몸을 비틀어 일어서려고 버둥거렸지만, 그럴수록 몸에 남아 있던 힘이 줄었고, 자꾸만 더 일어설 수 없게 되었습니다. 중국에 가서 옥수수 한 되라도 구해오겠다는 아주머니의 ‘약속’은 그렇게 조용하게 숨이 끊어지고 있었습니다.


20세기 중후반 북한에서 벌어진 식량난으로 적게는 100만에서 많게는 350만명이 굶어죽었습니다. 5천년 우리 민족의 역사 가운데 가장 고통스럽고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 사건을 거치며, 북한은 배급이 끊겼습니다. 북한 인민 대다수는 장마당에 의존해 살게 됐습니다. 병원에는 약이 사라졌습니다. 사회주의에 대한 신념과 의지를 가진 인민이 사라졌습니다. 북한의 최고 지도자는 인민을 감시하고 처형하며, 핵과 미사일로 주변국을 위협하는 방식으로 정권을 유지하는 데 급급합니다. 사회주의에 대한 신념과 의지를 가졌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수령과 혁명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던 북한 인민들은 돈과 외부 문화에 중독되고 있습니다. 이런 사회를 어떻게 사회주의 사회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지난 70년 동안 남과 북은 이념과 체제를 놓고 경쟁해왔습니다. 그것 때문에 총칼로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을 하기도 했습니다. 1990년 중반 이후 북한 사회주의가 사실상 무너졌다면, 그것은 수십년간 이어온 남과 북의 체제와 이념 전쟁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곧 통일의 완성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그 순간 이미 통일은 시작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제 남은 것은 20세기 말 북한사회주의 붕괴와 함께 시작된 통일을 완성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이 있을 것입니다. 시민사회가 해야 할 일이 있을 것입니다. 국제사회와 한반도 주변국의 도움도 필요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전 국민이 한반도에 통일시대가 이미 시작됐음을 알고,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국민통일방송은 북한주민에게 방송을 통해 정보와 교육을 제공함으로써 남과 북의 정보와 문화 격차를 줄이고, 북한주민과 함께 통일시대를 준비하는 역할을 떠맡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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