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연구원, ‘대한민국 통일사관학교’로 새 출발하라

지난 7월 7일은 의미있는 날이었다. 1988년 7월 7일 정부는 ‘민족 자존과 통일 번영을 위한 특별선언’을 발표했다. 벌써 기억에도 가물가물한 ‘7. 7 선언’이다. 1988년에 이 선언이 나왔으니 올해 20주년을 맞았다.

당시 소련은 페레스트로이카(개혁), 글라스노스트(개방)가 정점을 향해 치달은 시기였으나, 이면에는 경제분야에서부터 파열의 굉음을 내고 있었다. 동유럽 민주화 운동의 물결은 89년 11월 드디어 동서냉전의 상징인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렸다. 냉전 해체가 전개되었다. 폴란드 헝가리 체코 루마니아 …. 동유럽 공산국가가 도미노처럼 무너졌다. 91년 8월 고르바초프 소련공산당 서기장은 공산당 해체를 선언했다. 9월에는 러시아 연방과 독립국가연합(CIS)이 분리되어 막강하던 소비에트 연방이 일시에 붕괴되었다. 제정 러시아 체제를 뒤엎고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한 이후 불과 70 여 년, 공산주의는 스스로 파산선고를 내렸다.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로 국제사회의 이목을 서울로 집중시켜놓은 한국정부는 세계사적 새 조류(潮流)를 타고 ‘지금부터 민족통일을 준비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었다. 자주·평화·민주·복지의 통일 원칙에 입각하여 남북간 상호 교류·개방·협조, 그리고 남북 교차승인에 대한 국제사회의 협조를 선언했다. ‘7.7 선언’은 그런 국가적 자신감이 바탕이 되어 나온 것이다.

‘7· 7 선언’이 나온 뒤 국회는 여야가 함께 통일특위를 구성하여 통일방안을 만들어냈다. 그것이 89년 9월 발표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다. 그래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 국민 대표성을 갖는다. 이어서 91년 말 남북간에 ‘남북기본합의서’가 나왔고 그 뒤를 이어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이 나왔다. 이 시기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무드는 해방 이후 가장 실감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김일성은 1978년 중국의 개혁개방에 이어 10년만에 구소련, 동유럽의 도미노 붕괴라는 세계사적 대변혁이 일어나자 이같은 변화의 흐름을 타고 한미동맹이 평양정권까지 무너뜨릴 수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화공동선언으로 ‘위장 평화 쇼’를 벌이면서 대변혁의 물결이 평양까지 밀고 들어오는 것을 급하게 막았던 것이다. 김일성은 애초부터 남북기본합의서나 비핵화 선언 따위는 지킬 생각이 없었다. 이후 북한은 전세계에서 유일한 폐쇄국가, 동북아의 ‘외딴 섬’이 되었다.

90년대 중반 북한에 300만 명이 굶어죽는 대참사가 발생했다. 하지만 김정일 정권은 핵개발로 수령독재정권을 유지하면서 한국을 비롯하여 국제사회의 경제지원을 뜯어내는 ‘양아치 생존전술’로 나서게 된다. 그리고 때마침 한국에 등장한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을 역이용하면서 10년간 핵을 매개로 한반도에 긴장과 이완을 되풀이하다 끝내 2006년 10월 핵실험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동북아 안보질서를 크게 헝클어놓았다.

이홍구 전 총리는 중앙일보 칼럼(7일자)을 통해 “7. 7 선언으로부터 20년이 지난 오늘, 통일로 향했던 그때의 희망과 흥분은 맥없이 사그라졌으며 불투명해진 남북관계의 앞날에 대한 걱정만이 더욱 짙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개탄했다. 이 전 총리의 개탄을 마치 ‘확인’이라도 해주듯 11일 김정일 정권은 아무 죄없는 50대 여성 관광객을 몸을 숨길 곳도 없는 백사장에서, 그것도 등 뒤에서 총으로 쏴죽였다. 그러고도 오히려 북한이 먼저 매를 드는 것이 오늘날 남북관계의 현실이다.

새 통일연구원장, ‘실패한 대북정책’ 관련인물은 곤란

우리나라에는 통일문제에 관한 한 ‘사관학교’와 같은 곳이 있다. 국무총리실 산하 ‘통일연구원’이다. 통일연구원은 20년 전 ‘7.7 선언’의 자신감을 바탕으로 1991년 정식 출범하였다. ‘민족공동체의 실현을 위한 국민적 역량을 축적하고, 통일환경 변화에 적극적 주도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통일문제에 관한 제반 사항을 전문적, 체계적으로 연구 분석하여, 국가의 통일정책 수립 지원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설립된 국책 연구기관이다. 국방안보 전문의 국방연구원(국방부), 외교안보연구원(외교부), 국가안보전략연구소(국정원) 등 정부 산하 여러 국책연구기관이 있지만 통일연구원은 북한문제, 통일문제에 관한 한 이들 연구기관의 ‘맏형’ 노릇을 해왔다. 통일연구원은 한마디로 ‘북한연구 사관학교’와 같은 역할을 해왔고, 이곳에서 실력있는 전문가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91년 ‘민족통일연구원’이라는 이름으로 남산 기슭에서 출범할 당시 우리나라는 시대적 상승 기류를 타고 있었다. 1987년 개헌으로 제도적 민주화가 시작되었고, 소련, 동유럽, 중국과의 관계개선으로 우리는 정부수립 이후 처음으로 한국 주도의 능동형 북방개척에 성공하고 있었다. 통일연구원은 이같은 시대적 축복 속에 태어난 것이다.

통일연구원이 출범할 당시 우리사회는 적어도 통일문제, 대북정책에 관한 한 정파를 초월한다는 공동의 인식이 있었다. 이같은 공동의 인식을 바탕으로 국회에서 여야가 함께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합의와 국민적 공감대가 흐트러지게 된 계기가 98년 시작된 햇볕정책이다. 물론 당시 김대중 정부가 북한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햇볕정책을 추진한 것은 틀림없었고, 또 일부에서 주장하듯 햇볕정책의 의도 자체가 불순했다고 믿기는 어렵다. 그러나 햇볕정책의 배경에는, 우리가 북한을 도와주면 김정일도 개혁개방으로 나올 것이라는 결정적인 판단 오류가 있었다.

지난 10년간의 결과로써 확인되었지만 김정일 정권은 햇볕정책을 역이용하면서 달러를 비롯한 남한의 경제지원을 수령독재정권 유지비용으로 확보했고, 지금은 핵보유국 전략으로 가고 있다. 또 지난 10년간 북한 내부가 바뀐 것은 맞지만, 80% 정도가 북한 내부 요인에서 기인한 변화였다. 따라서 햇볕정책은 ‘한반도 평화-북한주민들의 삶과 인권 개선-평화통일 기여’에는 접근하지 못하고 끝내 실패한 정책이 되었다.

더욱 문제가 된 것은 대북정책을 둘러싸고 남남갈등과 정파적 분열을 결정적으로 키워놓았다. 햇볕정책을 지지하면 ‘진보’, 반대하면 ‘보수’라는 해괴한 정치 이분법이 등장했다. 대북정책은 ‘한반도 평화구축-북한주민들의 삶과 인권의 실질적 향상(개혁개방)-점진적 평화통일’이라는 3대 목표에 부합해야 한다. 대북정책은 이 목적에 부합하느냐 아니냐, 즉 정확한 정책이냐, 부정확한 정책이냐가 중요한 것이지 보수-진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햇볕정책은 그 목적에 부합하지 못했다. 북한은 핵보유국이 되었고, 10년이 지난 지금도 식량위기와 인권탄압은 계속되고 있으며, 평화통일로 가는 의미있는 경로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따라서 햇볕정책은 그냥 ‘부정확한 정책’, 즉 잘못된 정책이었을 뿐이지 ‘대한민국 진보’와는 관련성이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햇볕정책은 지난 10년간 남한 내부를 잘못된 이분법으로 갈라놓는 해악을 끼쳤고, 더욱이 남북관계에서 북한에 주도권을 넘겨주는 결정적인 오류를 범했다. 지난 10년간 김정일 정권은 ‘남한 너희들은 우리에게 그냥 돈과 물자를 착실히 갖다 바치면 된다’라는 인식을 갖도록 만들었다. 지난 10년간 습득된 이같은 ‘남한 경시 사상’에 바탕하여 여성 관광객 사살 사건 같은 말도 안되는 행동이 나오는 것이다.

현재 동북아 정세는 ‘7.7 선언’이 나온 20년 전과는 너무나 많이 바뀌었다. 갑작스런 체제전환을 겪은 러시아는 상당한 우여곡절을 겪으며 민족주의를 국민통합으로 이용하면서 지금은 에너지를 무기로 빠르게 재기하고 있다. 중국은 개혁개방 30년만에 명실상부 미국의 최대 라이벌로 화평굴기 했다. 북한의 수령독재-핵개발, 선군주의-식량난-인권탄압은 10년 전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외환위기를 겪은 한국만 유독 잃어버린 10년에 얻어터진 10년을 보냈던 것이다. 20년 전 우리에게 유리했던 대외환경은 더욱 좁게 움츠러 들었다. 주어진 절호의 기회를 놓치면 그 다음엔 두 배로 힘이 더 드는 것일까. 지난 10년간 잘못된 남북관계를 정상화하려면 더욱 어려운 조건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국가가 발전하려면 ‘대한민국 선진화’와 같은 국가 비전이 먼저 설정되어야 한다. 대북정책도 마찬가지다. 한반도의 미래상(통일 비전)이 먼저 나오고, 그 비전에 접근하는 정책들이 나와야 하며, 그 정책들을 성공시킬 각종 전략전술이 나와야 하는 것이다. ‘통일연구원’이 할 일이 바로 이것이다. 한반도의 비전-대북정책-전략전술을 창조적으로 만들어내는 산실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통일연구원은 모든 정파를 초월한 ‘대한민국 통일사관학교’로서 제 자리를 찾아야 한다.

지난 20년동안 한반도의 내외적 환경과 조건이 다 바뀌었다. 그러나 적어도 통일연구원의 정신만큼은 ‘7. 7 선언’의 그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던 모습으로, 설립 취지에 맞게 ‘처음처럼’ 돌아가야 한다. 그래서 북한의 뒷통수나 쳐서 뭔가 도모해보려는 꼼수적 발상에서 벗어나 대한민국 자체의 힘과 한미동맹의 힘, 일본, 중국, 러시아, 유럽 등 주변국 협조의 힘을 바탕으로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몰아가면서, 북한의 민주화, 근대화를 능동적으로 추동해 가야 할 것이다. 모든 건축물에는 설계도가 필요하듯이 통일연구원이 그 설계도를 정확하게 그려야 할 것이다.

통일연구원은 이제 햇볕정책을 머리 속에서 지워버려야 한다. 햇볕정책을 염두에 두고 反햇볕, 親햇볕 식으로 사고할 필요가 없다. ‘햇볕’에서도 물론 떠나고 햇볕이 가져온 ‘그늘’에서도 다 떠나야 한다. 이제부터는 무엇이 올바르고 정확하며 시간-노력-돈 대비 가장 효율적이냐를 기준으로 새롭고 창조적인 정책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앞으로 두번 다시 오류가 발생하지 않도록 적극적인 문제해결 능력과 튼튼한 내구력을 갖춘 대북정책을 창조해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국민들은 그런 비전을 제시해주는 통일연구원을 보고 싶은 것이다.

통일연구원이 이명박 정부 첫 통일연구원장 공모에 들어갔다고 한다.

통일연구원을 새로 이끌어갈 인물은 구시대적이어서는 안될 것이다. 다시 말해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 실패한 대북정책 수립과 지원에 앞장섰던 인물은 배제해야 마땅할 것이다. 또 정부가 바뀔 때마다 시류에 영합해온 정파적 인물도 곤란하다. 인문사회과학 분야 연구자는 과학기술 분야처럼 ‘기술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나름의 철학과 원칙을 견지해온 인물이어야 한다. 아울러 변화된 국제정세와 북한 내부를 정확히 읽고 능동적인 국제공조를 통해 북한의 개방화를 강력하게 추동할 수 있는 시대적 통찰력을 가진 인물이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어렵고 까다로운 조건을 달아보는 이유는 대북정책, 통일정책에서 갖는 통일연구원의 위상과 국민들의 기대치가 그만큼 높기 때문이다. 필자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또 북한 연구자의 한 사람으로서 훌륭한 새 통일연구원장이 나오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