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 한총련 제물삼아 회담이나 구걸하나?

“이 사람, 최선생 맞지요?” (-나는 침묵했다-)
“아.. 최선생 우리 깔끔하게 합시다. 최선생 맞잖아요!”
“네! 접니다”

95년 5월의 일이었다. 신혼여행을 다녀오자마자 장안동 대공분실팀에 연행된 필자는 꽃다운 신부와 정담을 나누지 못한 채 밤과 낮을 이어가며 조사를 받았다.

대공분실팀은 나에게 사진 몇 장을 들이밀며 연신 추궁했다. 그 사진은 93년도 필자가 한총련 1기 조국통일위원회 정책실장을 하던 당시 5월의 사진이었다. 그때 한총련은 고려대학교에서 출범식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학생들이 민주광장에 모였고, 조통위는 바빠졌다. 범청학련 의장단 회의 때문이었다. 남,북,해외 청년학생 대표자들이 한자리에 모일 수 없으니, 전화회담을 하기로 한 것이었다. 조선학생위원회 위원장 일행은 이를 위해 베이징에 나와 있었다.

이 회담을 학생들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진행하고자 야외에서 스피커를 연결하여 진행한 까닭에 그 행사를 준비하는 필자의 모습이 누군가의 카메라에 담겨 장안동 대공분실까지 간 것이었다.

진보인가, 퇴보인가

격세지감이다. 당시 전화회담 때문에 신혼의 몇 달을 격리되기도 하였는데, 지금 한총련 의장은 금강산에서 조선학생위원회 위원장을 만난다. 임수경, 박성희, 성용승, 최정남… 등등 방북으로 감옥이나 타향살이에 20대 청춘을 보내야 했던 것과 비교해도 경천동지할 변화다.

모든 존재는 변화한다. 그러나 모든 변화가 진보인 것은 아니다. 한 사람의 경우에도 변화가 진보일 수도 있거니와 퇴보로 될 수도 있다. 사물에게도 변화는 장성, 발전일 수 있지만 반대로 소멸일 수도 있다. 한 사회도 이와 같다. 수많은 인류사의 명멸은 모든 변화가 반드시 진보인 것은 아니라는 반증을 제공한다.

한총련 의장의 방북이라는 격세지감, 경천동지의 변화는 진보인가? 현행법과의 충돌을 무릅쓰고, 법무부의 반대를 넘어 통일부가 방북을 승인한 것은 역사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것인가?

‘개인적 만남’이 말 되나?

설사 옳지 않은 법이라도 지켜야 하기는 하지만 장차 그 법을 바꾸기 위해서는 부딪히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운동을 업으로 삼아온 필자로서 법의 준수만을 들이대며 이 상황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 방북과 방북의 승인이라는 그 행동이 현행법의 준수에 문제를 제기할 만큼 옳고 정당한 것인가, 과연 그런가. 필자는 이것을 생각한다.

‘송씨는 한총련 의장이 아닌 개인 자격으로 방문하는 것’이고 ‘송씨가 행사에 참가하기는 했지만 전면에 나서지는 않고 있다’는 통일부 홍보관리관 김홍재 씨의 정치논리는 참으로 빈약하기 이를 데 없다.

‘6.15 공동선언 실천과 반전평화, 민족공조 실현을 위한 남북 대학생 상봉 모임’은 한총련이 주도해서 만든 것이기에 한총련 의장 송00은 이미 개인이 아니다. 조선학생위원회 엄정철 위원장과의 만남이 개인적인 것이라는 말이 논리적으로 성립될 수 있을까!

한치도 진보 못한 한총련 후배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한총련과 조선학생위원회의 생각에 93년과는 다른 변화가 있는가이다. ‘5월 항쟁 정신을 계승하여 대학생들의 과감한 반미행동으로 미군철수의 투쟁의 포문을 열자’는 2005년 4월 25일 한총련 결성기념 기자회견문을 보면 아직도 이들의 생각에는 어떠한 변화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땅을 비법적으로 강점하여 분열시키고 전쟁의 위험지대로 화하게 한 미군’이라는 13기 한총련 결성 기자회견의 발표는 80년대의 생각에서 한치도 진화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은 미 제국주의의 식민지이며, 이들에 의해 식민과 분단, 대북위협이 자행되고, 이로 인해 전쟁위험이 고조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한총련은 김정일의 핵보유를 막아서고 있는 중국이나 러시아까지 미제에 투항한 세력으로 몰아붙이지 않을까.

어둠의 편에 선 사람들, 末路 보인다

광주의 눈물 때문에 한국을 미국의 식민지로 생각했던 80년대의 극단이야 그럴 수 있다고 치자. 87년 이후에만도 4차례나 국민의 손으로 정부를 구성한 대한민국을 아직도 미제의 식민지로 인식하는 한총련에게 386 선배들과 통일부가 해주어야 할 것은 애정과 준엄함의 비판이지, 떼쓰는 것을 들어주어 그게 옳은가보다 하는 환상을 심어주는 것이 아니다.

우리 민족을 파괴하고 있는 자가 김정일임을 알려주는 것이지, 그들의 선전대로 후배들이 전락하게 눈감아 주는 것이 아니다. 히틀러의 게르만주의보다 더 야만적인 김정일의 ‘민족공조론’에 왜 우리 청년학생들의 숭고한 나라사랑이 악용당해야 하는가.

그러고 보면 한총련과 조선학생위원회는 변화하지 않았는데 변화한 것이 하나 보인다. 통일부다. 어떻게든 김정일의 환심을 사서 회담을 유지해 보려는 그들의 변화가 분노스럽기보다 측은하다. 독재자에게 회담을 구걸하고자 아까운 청년들을 제물로 바치다니…

‘햇볕’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파괴적일 수 있는지 새삼 깨닫는다. 나는 어둠과 어둠의 편에 선 사람들의 말로를 보고 있다. 갈 테면 너희나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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